[가리사니] ‘2등 의사’ 우려도 뚫어낸 의대 광풍

일본 사례보면 전망 어두워
이번엔 제대로된 대책이길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의사들도 자녀 의대 입시를 위해 목숨 걸고 뛴다”며 “의사만큼 자기 직업을 대물림하려는 집단을 본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문과 최고 전문직군으로 꼽히는 검사, 변호사도 이 정도는 아니라며 “그만큼 의사라는 직업이 좋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했다. 생각해보면 법대 교수인 조국도 딸은 의대를 보냈다. 현시점 기준 최고의 전문직이다.
의사들이 누리는 사회·경제적 이득을 보면 이해될 법도 하다. 누가 뭐래도 고소득 직종이고 대접받는 삶이다. 이런 의사의 지위는 문재인·윤석열 두 정권에 맞서 의대 증원을 막아내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법조계도 로스쿨 변호사 양산은 막지 못했다. 의·정 갈등을 취재할 때 “우리와 얘기하려면 장차관이 오라”던 새파랗게 어린 전공의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의대 입시판에 지역의사제라는 한 줄기 빛이 더해졌다. 지난 10일 보건복지부는 의대 증원을 확정하면서 늘어나는 인원을 모두 지역의사에 투입하기로 했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목적인데 뜻대로 될진 잘 모르겠다. 입시판에선 의대 입학 통로가 한 개 더 생겼다는 정도다. “입학 점수가 낮아질 것이다” “‘2등 의사’ 취급을 받을 것이다” 등 온갖 악담이 나오지만 ‘일단 되고 보자’는 쪽이 더 강하다.
정부는 지역의사제가 ‘의대 입시 꼼수’로 변질되는 걸 막기 위해 갖가지 장치를 뒀지만 의사를 향한 열망은 이마저도 뚫어내고 있다.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면 의무복무 10년의 절반은 지나가니 지역에서 5년만 버티고 서울로 가자는 식이다. 비필수의료 과목을 수련하면 복무기간의 절반만 쳐주겠다고 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의무복무를 몇 년 더 하더라도 서울에서 개원만 하면 본전은 친다는 계산이다.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역의사제를 하려는 건 개중에 남는 인력이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1학년 들어갈 때부터 이 지역에서 의료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좀 갖지 않겠냐”고 했다. 정부가 모티브로 삼는 건 일본 지역정원제도다. 2023년 복지부는 후생노동성 자료를 인용해 지역정원 의대생이 졸업 후 대학 소재 지역에서 근무한 비율이 2017~2019년 87.8%라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얘기는 다르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는 지난해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공청회’에 출석해 “일본 내 논의 결과를 보면 의사를 늘려도 의사 쏠림 현상은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 지역정원제도 효과는 크지 않았다”며 “지역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신기술을 배우지 못해 실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였다”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일본 지역정원제도의 개요 및 현황’도 비슷하다. 연구원은 지역정원 의사들의 90.5%가 졸업 후 대학병원 및 중심병원에서 근무하고, 의사 부족지역에서 근무하는 비율은 24.1%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지역정원제를 통해 배출된 의사들이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로 빨려 들어간다고도 했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려보겠다는 정부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낼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지역의사를 대거 양산해놓고 나중에 책임지지 못할 상황이 생겨선 안 된다. 특히 지역의사가 진짜 ‘2등 의사’로 전락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정부가 수련병원 소재지에서 서울을 제외한 것을 두고 벌써부터 수련의 질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주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노력도 효과를 내야 한다. 의무복무 이후 베테랑 전문의들의 수도권행이 지속되면 지역에는 인턴, 레지던트 내지 저연차 전문의만 남게 될 것이고, 이러면 지역 주민들이 서울 대형병원을 찾아가는 일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부터 힘 빠지는 말들을 늘어놨지만 아무쪼록 지역 의료난을 해소하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김영선 사회부 차장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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