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른가 했더니, 권력이 바뀔 때마다 손을 댄 성곽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막혔던 백악이 스르르 열렸다. 그랬어도 자연스럽진 못했다. 동쪽은 말바위 안내소, 서쪽은 창의문 부근에서 신분증 제시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했다. 완전한 개방은 아니었다. 오래 닫혔던 길엔 그런 절차가 잔재처럼 남았었다. 군사 시설로 막힌 기억이 온전히 지워지지 않았었다. 지금은 비로소 다 열렸다.
휘어 굽은 성곽이 숲과 어우러져 절묘한 풍경을 선사한다. 고즈넉하다는 건 이런 풍경과 분위기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게 실감 난다. 숙정문에 오르는 동안 성 돌 사이로 여러 시대의 흔적이 겹쳐 보인다. 태조의 성과 세종의 성, 숙종의 성 돌이 모양과 크기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깎인 성 돌 하나에도 각 시대의 기술과 자본, 노동 숙련도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도성을 쌓고, 고치고, 다시 수리한 각 왕의 시대는 안정된 치세에 모든 게 풍성했다고 추정된다. 옛말로 태평성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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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정문 무지개 모양 문은 왕조시대 내내 닫혀 있었다. 1.21(1968) 후인 1976년 성벽 위에 벽돌로 여장을 쌓고, 문루를 앉혔다. 현판은 그때 쓰였다. 사진 오른 쪽으로 쌓은 모양이 다른, 각 시대의 성벽이 보인다. 사진은 2월 초의 전경. |
| ⓒ 이영천 |
성곽은 이처럼 한 번 쌓고 만 구조물이 아니라, 권력이 바뀔 때마다 다시 손을 덧댄 장소였다. 촛대바위 옆에 박혔었다는 일제의 쇠말뚝도 마찬가지다. 땅의 기운을 끊겠다는 말이 미신처럼 들리지만, 이 땅의 기운과 산이 품은 질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만은 분명히 읽히고도 남음이 있다. 닫히고, 덧씌워지고, 다시 열리는 시간이 이 짧은 구간에 포개져 있다.
성은 남고, 사람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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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하부전도(城下負錢圖) 단원 김홍도의 그림. 각기 다른 시대에 쌓인 성벽을 배경으로, 길을 가는 보부상으로 추정되는 인물들 모습이 그려져 있다. |
| ⓒ 한국테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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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악산 백악 곡장에서 바라 본 백악산. 도성 법궁인 경복궁의 뒤를 지키는 산이다. 한양도성 성벽이 길게 뻗어 백악 마루로 향하고, 너머로 인왕산에도 성벽이 아스라하다. 왼쪽으로 어렴풋이 남산과 관악산이 보인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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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운대 백악 마루로 오르는 중간 지점에서 일종의 쉼터다. 사진 오른쪽으로 경복궁과 육조거리, 남산이 또렷하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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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 소나무 1968년 01월 21일, 무장한 북한군이 침투해 교전을 벌일 당시 소나무에 총탄이 박혔다. 그 흔적을 남겨 표징으로 삼고 있다. |
| ⓒ 이영천 |
위에서 본 도성의 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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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과 육조거리 촛대바위에서 바라 본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 관악산을 향한 근정전-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건축선이 명확하며, 육조거리였던 광화문 광장과 틀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
| ⓒ 이영천 |
이 높이에서 궁궐의 축선과 마당, 담장의 질서가 한눈에 들어온다. 왕조는 이처럼 드러내는 방식으로 권력을 작동시켰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 오른쪽으로 옮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청와대가 앉은 곳이다. 건물군은 숲과 지형 안에 숨어있다. 윤곽조차 또렷이 잡히지 않는다. 조선 총독의 관사를 그대로 이어받아, 최고 권력자 집무실로 삼은 부끄러움을 감추려 의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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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암동 백악 마루 부근에서 바라 본 부암동. 인왕산 자락이 둘러 분지를 이룬 모습이, 무척 아늑해 보인다. |
| ⓒ 이영천 |
남겨진 이름, 이어지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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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 한양도성 백악에서 바라 본 북한산 비봉능선. 왼쪽 족두리봉에서 오른쪽 보현봉까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보현봉이 안평대군의 꿈 '몽유도원도'의 현시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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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파정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알려진 석파정. 인왕산 아래 아름다운 작은 계곡에 앉았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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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의문 북소문인 창의문. 자하문이라고도 부른다. 왕조는 여러 이유로 이 문을 늘 경계로 삼았다. 세검정과 이 문이, 인조반정의 무대이기도 하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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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 순직 경찰 동상 1.21 당시 침투한 북한군과 교전을 벌이다 순직한 두 분 경찰관의 동상. 윤동주 문학관 맞은 편이다. |
| ⓒ 이영천 |
숙정문에서 시작해 창의문으로 빠져나온다. 성곽은 여러 시대의 손을 거쳤고, 길은 그 사이를 묵묵히 이어 왔다. 닫혔던 공간이 열렸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한 것은, 백악 성곽을 이제 누구나 거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길의 변화는 선언이 아니라, 그렇게 백악을 오르는 발소리로 조용히 증명된다. 길은 흘러야 한다. 백악이 그걸 힘겹게 증언하고 있다.
- 이후 기사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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