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계엄' 보며 결심, 특전사 꿈꾸던 청년이 택한 곳
<국회에 온 '당신의 이야기'>는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이자 해법을 찾는 공간인 국회에서 생략되고 지워져 온 목소리에 주목합니다.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국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국회 출입기자가 전합니다. <기자말>
[복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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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28일 김민형(활동명 두부) 한베평화재단 활동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 복건우 |
육군 입대(2월 23일)를 앞둔 김민형(27)의 입영통지서 하단엔 '입영'과 '입영 연기'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입영도 입영 연기도 선택할 수 없던 민형은 선택지엔 없는 '입영 거부'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는 '반전'과 '평화'라는 비종교적 이유로 입영과 대체복무까지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입대 당일엔 입영 장소(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용하리)로 가지 않고 여의도 국회로 향할 예정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있음에도 민형은 왜 병역을 모두 거부하고 실형을 살기로 택했을까. 여전히 대체복무제가 갖고 있는 '문제'와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을 다녀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들을 병역거부 당사자로서 증언하기 위해 민형은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연결되면서 민형을 국회 앞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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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시절 태권도 도복을 입은 김민형 한베평화재단 활동가가 해병대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
| ⓒ 김민형 |
서울보다 개성이 가까운 접경지 마을(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리)에서 민형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등하교 때면 군인들이 훈련받는 "따다다닥"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을엔 전차용 구조물과 방어벽 등 군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한반도 정세가 악화하면 민형과 친구들은 "오늘따라 총소리가 격하네", "우리는 전쟁 난지도 모르고 죽을 거야"라며 농담을 섞어 얘기했다.
그런 그가 고등학생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난 특전사에 갈 거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와 살며 민형은 군인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군대는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었고 국가를 지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해병대 모자와 점퍼를 입고 다니며 해병대 정신을 강조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민형도 "이왕 가는 거 제대로 해보자"라며 특전사 입대를 꿈꿨다.
파주와 서울을 잇는 자유로(고속화도로)를 타면 임진강 너머로 북녘 땅이 펼쳐졌다. 20살이 된 민형은 대학 생활을 위해 파주를 떠나 서울에 가서야 군대가 익숙한 일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서울에선 군부대도 보이지 않았고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내뱉던 "특전사"의 꿈은 민형의 삶을 돌고 돌아 최근 그가 작성한 '병역거부' 소견서에 이렇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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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1월 김민형 한베평화재단 활동가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학살을 겪었던 주이탄사 반꾸엇 마을을 찾아 위령비로 가는 입구에서 휴대폰으로 팻말을 촬영하고 있다. |
| ⓒ 김민형 |
민형은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전 진실규명 활동으로 전쟁의 구체적인 얼굴들을 만났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학살이 집중됐던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을 찾은 적이 있었다. 두 마을의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인 두 응우옌티탄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일정에 함께했다(관련 기사: 한국 국회 찾아온 두 명의 '응우옌티탄'). 미디어로만 접하던 전쟁의 참상이 그의 마음에 크고 긴 파동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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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형 한베평화재단 활동가는 지난해 6월 한국을 찾은 베트남 하미 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왼쪽에서 두 번째), 퐁니·퐁넛 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세 번째)의 방한 일정에 함께했다 |
| ⓒ 김민형 |
"올해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미사일 공습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등 전쟁은 계속되고 있어요. 현실에선 사람을 죽인다고 하면 큰 죄악인데,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용인돼요. 저는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하는 군대엔 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병역거부도 그런 전쟁의 현실을 알아달라는 외침이자 실천으로써 결심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고민도 물론 많았다. "군대를 직접 가봐야 그곳의 폭력성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비종교적인 이유로 병역거부를 하는 게 사람들에겐 어떻게 전달될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남았다. 병역기피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부담을 지웠다. 하지만 병역거부를 결심한 이후로 고민은 점점 사라졌다. 무엇보다 그런 결심을 더욱 명확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려온 전쟁의 단면을 비로소 현실에서 마주하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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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일 여의도 국회 앞 한 카페에서 김민형 한베평화재단 활동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 복건우 |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전해 듣고 "이상한 얘기네"라며 뉴스를 켰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침투하는 "실제 상황"이었다. 집에서 20~30분 거리의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계엄에 민형은 "살면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날 밤 광주항쟁과 베트남전의 학살이 겹쳐 보였다. 12·3 내란은 그를 '병역거부'로 행동하게 했다.
"계엄이 터지고 시민들이 국회에 모이지 않았다면, 군인들이 적극적으로 국회를 점령했다면 5·18이나 베트남전처럼 민간인들이 죽는 상황이 올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군인들이 권력에 또다시 이용되는 걸 보면서 '지금 병역거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날 잘못된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들을 봤고, 그게 목숨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으니까요."
민형은 '완전 병역거부자'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2018년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이후 2020년 대체복무가 시행됐지만 그 대체복무까지도 거부한다. ①기간 ②기관 ③군 독립성 세 가지 측면에서 대체복무가 징벌적이고 인권 침해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복무 기간(36개월)은 현역 기간(18개월)의 2배이고, 복무 기관은 교정시설로 한정돼 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병무청 소속으로 국방부·병무청 추천 인사가 심사위원에 포함된다(1월 12일 기준 위원장 포함 심사위원 13명, 인권위·법무부·국방부·병무청·국회국방위·변호사협회서 추천).
"대체복무제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요. 2만 명 가까운 병역거부자들이 입대가 아닌 감옥을 선택하고 싸우면서 만든 제도이거든요. 다만 제가 현행 대체복무제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군으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군사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국방부·병무청 추천 위원에게 심사를 받는, 즉 군사주의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 구조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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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지난 2020년 10월 26일 오후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린 가운데 입교생들이 입교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징집 인원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병역법 시행령 개정을 통과시킨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병역거부자들이 군대를 다시 선택할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시행령을 개정할 때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빨리 해당 조항을 폐지하고 시행령을 원상 복구해야 해요."
<오마이뉴스>는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현행 대체복무제와 병역법 시행령에 대한 병무청의 입장을 받아봤다. 병무청은 36개월 교정시설 합숙복무에 대해 "현행 대체역 제도는 병역 의무의 형평성, 현역병의 사기, 국민 공감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회 논의를 거쳐 결정됐다"며 "복무기간 등 핵심 복무 조건 변경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체역 심사위 구성에 대해선 "독립성과 공정성은 법률로 보장되고 있다"고 답했다.
병무청은 앞서 언급한 시행령 개정에 대해선 "대체복무 소집 기피자가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현역 또는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거부해 소집을 기피할 경우 병역거부에 따른 반복 처벌의 우려가 있다"며 "소집 기피에 따른 형사 처벌의 경우에도 대체역 신분을 유지해 대체복무 이행 기회를 다시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체역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대체역법 개정안을 지난해 2월 대표 발의했으나 1년 넘게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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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28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병역거부 시민사회 간담회에서 김민형 한베평화재단 활동가가 병역거부 소견서를 발표하고 있다. |
| ⓒ 복건우 |
지난 1월 28일 병역거부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민형에게 말했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화제가 된 '두부 지옥' 미션을 언급하며 "감옥에서 나오면 먹는 음식이 두부이고 민형의 활동명도 두부이니, 병역거부 당일 두부를 먹는 퍼포먼스를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하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민형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50여 명은 한 달 뒤(2월 23일) 있을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과 함께 어떤 이벤트를 하면 좋을지 머리를 맞댔다.
간담회에선 민형의 병역거부를 알리기 위한 구체적인 타임라인도 공개됐다. 병역거부 선언 이후 경찰조사·재판·구속 과정을 따라가며 방청연대, 증언집 발간 등이 예정됐다. 복무기간 축소(최대 27개월), 복무기관 확대(교정시설·사회복지시설·소방 등), 복무형태 재량화(필요에 따라 합숙복무 가능) 등을 담은 대체역법 시민사회 개정안도 발의를 논의 중이다.
병역 문제는 한국 사회의 오래되고 첨예한 이슈이지만 자신의 병역거부 선언만큼은 "대체복무제를 개선하고 군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함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길 민형은 기대했다. 국회 앞을 병역거부 선언 장소로 택한 이유도 동일했다. 단 한 명의 병역거부자도 제도 밖에 머물지 않도록 국회의원 한 명이라도 힘을 보태주길 바랐다.
"군대를 비판하면 마치 군대를 다녀온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고, 그런 차원에서 병역거부도 사람들한테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지금 이 현실에도 병역거부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국회의원들도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여러 국가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화를 선택할 권리로서 대체복무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민형은 훈련소가 아닌 국회 앞으로 간다. 2월 23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화의 자리를 넓히기 위한 최전선으로 그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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