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주 80시간 여전, 가짜 당직표까지"… '무늬만 단축'에 멍드는 전공의 인권
정부,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 진행
주 평균 72시간·연속 근무 24시간 이내로 제한
“가짜 당직표 작성, 대리 당직 강요 등 문제 만연…구조 개선해야”

정부가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을 위한 시범사업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주 80시간 이상 근무와 '가짜 당직표'가 횡행하는 등 '무늬만 단축'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직 위주의 근무 구조와 대체 인력 부족으로 수련의 본질이 훼손되면서, 근무시간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22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유청준 전국전공의노동조합(전공의노조) 위원장은 “전공의를 수련병원에 배치한 뒤 사실상 방치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전문의 양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관리·감독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 평균 72시간(최대 80시간), 연속 근무 24시간(최대 28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69개 병원, 361개 의국이 해당 사업에 참여 중이다.
이달 21일부터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최장 연속 근무시간을 기존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개정 전공의법도 시행됐다.
제도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과도한 근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노조가 작년 9월 진행한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13명 중 52.9%가 주 72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27.8%는 주 80시간 이상, 12.9%는 주 88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근무는 건강권 침해와 환자 안전 문제로도 이어졌다. 응답자의 77.2%는 만성적인 과로로 건강 악화를 경험했다고 밝혔고, 50.7%는 격무가 환자 안전에 영향을 미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폭언·폭행·성희롱 등에 대한 예방 교육이나 공식 대응 체계가 없다는 응답도 68.7%에 달했다.
전공의노조가 시범사업 참여 병원 69곳 중 32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시범 사업을 전면 이행하고 있는 곳은 11곳(34.4%)에 불과했다. 특히 평균 근무 시간 65시간 이상인 특정 과들의 경우 근무 시간 중 상당 부분이 당직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병원에서는 당직 횟수를 주 1회 수준으로 조정하거나 당직 전담의를 채용하는 등 개선 사례도 있었지만, 시범사업 이후 오히려 수련환경이 악화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 위원장은 “가짜 당직표 작성, 대리 당직 강요, 대체 인력 없이 전공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업무 강도 심화와 교육 기회 박탈 등으로 환자 안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당직 근무 비중이 과도해 정규 낮 근무 시간에 이뤄져야 할 수련 기회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며 “대체 인력 없이 전공의에게만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도 다뤄졌다. 박용범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는 적정 근무시간 기준 마련을 위해 ▲역량 중심 수련 보장 ▲필수 인프라의 선행·병행 구축 ▲유연성과 다양성 존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전공의는 ‘피교육자’이자 ‘의료 제공자’인 만큼, 건강권 보호와 전문 역량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기준이 필요하다”며 “입원전담전문의 등 대체 인력 확충과 원내 업무 재분배,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재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 72시간 기준과 24시간 연속근무 제한은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인수인계와 교육을 위한 오버랩 시간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련환경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고범석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부회장은 “현재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과도한 행정 업무와 반복적인 단순 업무로 인해 교육 본연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며 “AI를 병원 시스템에 적극 도입해 전공의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교육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수련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축사에서 “전공의는 배우기 위해 병원에 들어왔지만, 현실에서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환자 곁을 지켜왔다”며 “수련이라는 이름 아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방치된 노동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회장은 “전공의가 근로자로서 적절한 보호를 받을 때 비로소 교육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나아가 수준 높은 전문의로 성장해 국민 건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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