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한가운데 작은 섬, 시간과 공기가 따로 있다

이돈삼 2026. 2. 22. 13: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다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정점운 여수 여자도 이장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돈삼 기자]

 하늘에서 본 여자만과 여자도.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 김준
'여자도(汝自島)'가 있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 순천만 한가운데에 있다. 면적은 59만㎡로 작다. 도시의 작은 동(洞) 규모다. 섬을 한 바퀴 도는 해안선은 7.5㎞에 이른다. 사람은 95가구, 200여 명 가까이 산다.

큰 섬과 주변 섬의 배치가 '여(汝)'자 모양을 하고, 생활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자(自)'를 써 '여자도'라 불린다. 주민들은 어업과 농업을 하며 생활한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여자리에 속한다.

"작은 섬이지만, 마을마다 생활 방식과 리듬이 조금씩 달라요. 차이를 인정해야죠.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존중하며 이어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섬의 오늘이 내일로 무리 없이 이어질 때, 섬사람들 일상이 평화롭고 우리 섬도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점운(71) 여자리 이장의 말이다. 그는 4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여자도는 여자, 송여자, 마파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정 이장은 3개 마을 '통합 이장'이다.

평범한 일상이 여자도다운 모습
 정점운 이장. 그는 여자, 송여자, 마파 등 3개 마을 ‘통합 이장’을 맡고 있다.
ⓒ 이돈삼
여자도에서 나고 자란 정 이장은 섬의 시간을 따라 살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도가 가장 편하고, 자신의 성향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바다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익히며 살아온 시간이 쌓인 결과다. 정 이장은 어업을 한다. 자망(刺網)을 이용해 꽃게, 서대 등을 잡는다.

"특별한 건 없어요. 단지 고향을 지키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섬에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그런 일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고요.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섬의 하루하루를 함께 이어가는 평범한 일상을 그립니다. 평범한 일상이 여자도다운 모습 같아요."

이장을 맡게 된 이유를 물은 데 대한 그의 대답이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을까 해서 물었는데, 평이하면서도 철학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섬마을 이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주민들이 느끼는 불편을 행정기관에 전하는 일이죠. 섬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여자도만의 속도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도 있고요. 섬에선 작은 불편도 일상생활에 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한걸음 옆에서 지켜보면서, 필요한 순간에 손을 살짝 보태는 역할이 이장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정 이장의 생각이다. 그의 삶이 섬의 평범한 일상이고, 여자도다운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별날 것 없는, 섬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궁금해졌다.

"섬의 하루는 바다의 시간에 맞춰 흘러갑니다. 섬주민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개인의 시간보다 우선시하는 게 도선(배) 운항 시간입니다. 하루 네 번 오가는 도선에 맞춰 하루 일과도, 일주일 계획도 세웁니다. 육지로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계절의 시간에 따라 바다나 밭으로 가는 사람도 있으니, 그 안에서 하루 풍경도 조금씩 다르겠죠."

세상 변화는 더디 오지만, 섬에서의 작은 변화는 금세 느껴지기 십상이다. 섬이 작은 만큼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가깝다. 여자도의 리듬이고 시간인 셈이다.

단단한 섬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낚시다리. 대여자도 마파마을과 송여자도를 잇는 폭 3미터, 길이 500미터의 인도교다.
ⓒ 이돈삼
"낚시다리가 생겼는데, 섬주민들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낚시다리는 대여자도 마파마을과 송여자도를 잇는 폭 3미터, 길이 500미터의 인도교를 가리킨다. 다리 위에서 낚시할 수 있는 공간이 9군데 설치돼 있다. 감성돔이 주로 잡힌다. 철 따라 장어, 주꾸미, 오징어도 심심찮게 걸려 올라온다.

"주민들 일상이 조금 유연해졌습니다. 예전엔 뱃시간이 모든 일정을 좌우했는데, 지금은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죠. 다리를 건너면 행정 업무나 보건진료 같은 간단한 일을 볼 수도 있으니까요. 주민들 생활 반경이 한층 넓어졌어요. 그렇다고 섬의 속도가 빨라진 건 아닙니다."

정 이장 특유의 철학이 묻어난다. 여전히 섬은 섬의 리듬으로 움직이고, 그 리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낚시다리가 생겼지만, 그 변화는 섬의 시간 안에서 자리하고, 여자도의 모습과 삶의 방식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 없는 걸까? 섬생활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도선입니다. 지금 다니는 배(여자호)는 사람만 탈 수 있어요. 차량을 실을 수 없습니다. 차량을 서너 대 실을 수 있는 도선으로 바뀌면 좋겠어요. 차량 이동이 가능해지면 일상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생활물자가 쉽게 들어오고 신선 수산물 유통도 가능해지죠. 응급 상황 대응도 쉬워지고요."

정 이장이 관계기관에 바라는 희망 사항이다. 섬사람들에게, 또 외지인들에게 여자도가 어떤 섬으로 기억되길 바랄까? 끝으로 정 이장한테 물었다.

"특별한 수식어는 필요 없고요.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섬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언제라도, 잠시 머물더라도 마음 편안해지고 섬 풍경과 섬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면 충분합니다.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그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기가 따로 있거든요. 주민들도 지금처럼 서로 안부를 나누며 살고, 섬을 찾는 분들도 그 흐름을 존중해 주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여자호. 여자도를 오가는 도선이다. 사람만 탈 수 있다.
ⓒ 이돈삼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