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명령대로 바둑돌 놓던 남자, 그 남자처럼 되는 사람들

서부원 2026. 2. 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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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내가 글쓸 때 AI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까닭

[서부원 기자]

 2016년 3월 10일 오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두번째 대국에서 아마 6단인 아자 황 구글 딥마인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왼쪽)가 알파고 대신 흑돌을 놓고 있다.
ⓒ 구글 제공
"설마 선생님이 남의 블로그 글을 표절한 건 아니죠?"

설을 앞두고 카톡으로 아이들에게 새해 덕담을 주고받다 한 아이로부터 뜬금없는 '질타'를 들어야 했다. 그는 대뜸 내가 쓴 기사의 내용과 거의 같은 글이 여기저기 블로그에 공유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증거라면서 특정 블로그를 캡처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는 기사는 널리 공유될수록 더 좋은 거라는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듯 '…'로 답변을 대신했다. 분노하기는커녕 흔쾌해하는 반응에 멋쩍어한 거다. 한참 지나서야 그가 보내준 블로그에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편집해서 자신의 글인 양 탑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블로그의 글은 대충 봐도 정보 기사로 완벽했다. 내 기사의 문제의식을 다양한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AI를 활용해 여러 언론사의 관련 기사들을 그러모은 뒤 종합한 듯 보였다. 이웃이 수천 명에 이르는, 이른바 '파워 블로그'였다.

첫 페이지에 '미디어 콘텐츠를 다루는 전문 블로그'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말하자면, 다른 언론사들의 기사 중에 사회적 이슈가 된 내용을 편집해서 소개하는 블로그라는 뜻이다. 결국 내가 표절한 게 아니라는 건 증명이 됐지만, 내 글이 도둑질당한 듯해 적잖이 찜찜했다.

아무리 블로거의 의도에 맞게 '재가공'을 했더라도 기사의 출처를 밝히는 건 기본일 테다. 그럼에도 해당 블로그 어디에도 글쓴이나 언론사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가독성 등을 고려한 뛰어난 편집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가 표절한 건지 오해를 살 여지가 충분하다.

"대체 '공유'와 '표절'의 차이가 뭘까요?"
"구체적인 출처를 표시하지 않으니,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모두 '표절'인가요?"
"특정 콘텐츠 뒤에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적는 것도 출처를 표시했다고 할 수 있나요?"

출처만 밝히면 표절이 아니라는 식의 '엉성한' 내 답변에 그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솔직히 정답은 교사인 나도 모른다. 그저 AI의 급속한 보편화로 인한 환경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눙칠 따름이다. AI 관련 법을 AI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AI 없이는 몇 줄짜리 짧은 글조차 못 쓴다

개인적으론 글을 쓸 때 일절 AI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주제와 관련된 공신력 있는 통계 자료가 필요할 때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해당 정부 기관의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AI를 통해 쉽게 검색되는 정보라도 그곳에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거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퇴고하는 과정에서 맞춤법을 확인하고 글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AI가 유용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더디고 투박할지언정 사전 등을 이용하고 반복해 읽어가면서 다듬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절차탁마'를 강조하는 글쓰기는 편리함과는 상극이라 믿고 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매번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다 보면, AI 없이는 몇 줄짜리 짧은 글조차 버거워하게 된다. 학교에서 나날이 작문과 토론 수업이 힘들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찬반의 논거는커녕 자신의 견해조차 AI에 묻는 형국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글이나 말에 담아야 할 자신의 문제의식마저 AI가 대신 제공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다. 아이들만 흉볼 것도 없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교사도 AI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별 아이들의 학업 역량과 생활 태도를 교사가 아닌 AI가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언컨대, AI는 글쓰기의 '본령'을 훼손하기 십상이다. AI가 글을 문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완결된 문장으로 만들어줄 순 있어도 자신의 주장, 곧 글을 쓰는 목적을 대신할 순 없다. 문제는 AI에 길들어지다 보면, AI가 말하는 걸 마치 자신의 주장인 양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의 저작물을 아무 대가 없이 쓰는 AI 기업

내가 AI 활용을 꺼리는 다른 이유도 있다. 타인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한다는 점에 일말의 죄의식이 있다. AI는 기존의 무한정한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학습한 뒤 질문에 맞게 제공하는 도구일 뿐이다. AI 스스로 만든 콘텐츠는 없다.

AI 기업에 대한 반감도 없진 않다. 성능을 세분화하여 상위 버전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그들의 영업 전략에서 흡사 '봉이 김선달'을 떠올리는 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무료로 제공하는 하위 버전의 AI는 의도적이라고 의심될 만큼 거짓 정보가 많아 유의해야 한다.

지금도 계속 생산되는 콘텐츠들을 사실상 공짜로 사용하면서, 교묘한 영업 전략을 통해 천문학적 이윤을 벌어들이는 AI 기업의 행태는 바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들의 이윤을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것과 콘텐츠의 창작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게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흔히 콘텐츠로 뭉뚱그리는 지식은 인류의 공공 자산일지언정 특정 기업의 먹거리일 순 없다. 본질적으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콘텐츠의 무한 사용을 허용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럴진대, 그들에게 돈을 주고 AI 사용권을 사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가.

"AI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독성이라고 생각해요."

'공유'냐 '표절'이냐를 두고 시작된 제자와의 대화가 '지적 재산권' 문제를 넘어 AI가 몰고 올 미래 사회의 모습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는 또래들이 AI를 활용해 글쓰기 과제를 하는 건, 잘 쓰고 싶어서라기보다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말했다. 뭘 하든 AI부터 켠다는 거다.

예전엔 스마트폰 첫 화면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이나 유튜브, SNS 차지였는데, 요즘엔 챗지피티나 제미나이 같은 AI 앱이 맨 앞자리라고 했다. 포털과 SNS가 더는 정보 검색용으로 쓰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심지어 친구들끼리 스마트폰의 기종이 갤럭시냐 아이폰이냐를 묻기보다 어떤 AI를 사용하는지를 더 궁금해한다고 한다.

AI 없이는 아무 결정도 못 내리는 '신인류'

믿기 힘들겠지만, 요즘 토론 수업 때의 풍경은 AI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토론 주제가 정해지면 모든 자료는 AI로 만들고, 적힌 그대로 읽는 게 토론의 전부다. 발언하면서 논거랍시고 AI의 버전을 둘러대기도 한다. 주장의 설득력은 활용한 AI의 버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진다.

부디 기우이길 바라지만, 일상 속 모든 걸 AI에 묻고, AI 없이는 아무 결정도 못 내리는 '신인류'가 출현할 날이 머지않았다. 10년 전 AI의 원조 격인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 대결을 벌였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지금 아이들은 당시 이세돌과 마주 앉아 알파고가 알려주는 대로 바둑돌을 놓던 이름 모를 그 사람이 돼가고 있다.

이 와중에 내 글을 출처도 밝히지 않고 편집해 블로그에 게시하는 게 '공유'냐 '표절'이냐를 두고 아이와 왈가왈부하는 게 한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주팔자조차 AI가 본다는 세상에서, AI로 구현될 핑크빛 미래가 쉽게 그려지진 않는다. 대화를 매조지며 아이가 던진 이 질문에도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당 블로그에 대해선 어떤 조치를 할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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