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건너온, '묻따박스'에서 발견한 남자의 카메라

이재필 2026. 2. 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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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의 낭만, 니콘 F-501과 함께한 안동 신세동 산책

사진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전통시장과 주변의 일상을 기록해왔다.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통해 사라져 가는 풍경과 기억, 기록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기자말>

[이재필 기자]

경계선 위에 선 존재

역사에는 언제나 '문턱'이라 불리는 지점이 존재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수동에서 자동으로,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넘어가는 그 미묘하고도 불안한 경계. 그 위태로운 선 위에 서 있는 존재들은 대개 완성형이라기보다는 실험형에 가깝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겠다는 뜨거운 열망과 과거의 유산을 놓지 못하는 투박한 고집이 공존하는 시기. 니콘(Nikon)의 카메라 역사에서 그 문턱을 지키고 있는 존재가 바로 F-501이다.

니콘의 최초 AF(Auto Focus) SLR은 F-301이라는 이름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마치 책장을 넘기듯, F-501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자동 초점의 시대가 열렸다. 겉모습만 보면 녀석은 여전히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는 듯하다. F3나 FM2가 보여주었던 그 각진 어깨, 남성적인 실루엣, 타협을 모르는 직선의 미학.

하지만 그 단단한 껍질 안쪽에는 전혀 다른 리듬이 흐르고 있었다. 톱니바퀴와 스프링이 지배하던 기계식 제국이 저물고, 회로와 모터가 지휘하는 전자식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카메라를 머릿속의 '개념'으로만 박제해 두었었다. '니콘이 전자식 시대로 진입하던 시작점', '최초의 대중적인 AF기'. 정보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내 손바닥 위에서 어떤 온도를 가질지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역사책 속의 인물처럼, 알지만 만질 수 없는 존재였다.
▲ F301과 F501(Sony A7촬영) 같은세대의 301과 501은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 이재필
더미 속에서 발견한 묵직한 밀도

만남은 예고 없이, 그리고 지극히 현대적인 도박의 형태로 찾아왔다. 일본 옥션의 일명 '묻따박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크로 분류된 카메라들을 라면 상자에 무작위로 쓸어 담아 보내는 그 야생적인 거래 방식.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다. 녹슨 고철 덩어리일지, 아니면 긴 잠에 빠져 있는 보물일지.

해외 배송된 낡은 골판지 상자를 칼로 긋던 순간의 그 묘한 설렘을 기억한다. 먼지 냄새와 오래된 기계유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 혼돈의 더미 속, 렌즈도 없이 덩그러니 누워 있는 F-501을 발견했다.

첫인상은 '플라스틱'이었다. 1980년대 중반, 원가 절감과 경량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금속 대신 플라스틱이 카메라의 외피를 두르기 시작했던 시절. 사용감이 묻어 있는 그 검은 표면은 어딘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손을 뻗어 바디를 쥐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볍지 않았다. 단순히 무게의 그램(g)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아귀를 꽉 채우는 밀도(密度)의 감각. 겉은 플라스틱일지언정, 그 안에는 니콘이 수십 년간 쌓아온 광학 기기의 뼈대가 고스란히 들어차 있었다.

"남자는 니콘."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혹은 신화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새를 찍기 위해 숲에 들어갔다가 곰을 만나면 카메라로 내려쳐서 쫓아낸다는 둥, 망치가 없을 때 FM2로 못을 박았다는 둥. 그 과장된 무용담들이 뇌리를 스쳤다.

F-501은 비록 과도기의 산물이지만, 그 '단단함'의 DNA만큼은 타협하지 않았음을 손끝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명백한 '도구'였다.
▲ 고양이눈(Nikon F501촬영)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고양이 눈이 붙어 있는 작은 가게를 발견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셔터가 먼저 반응했다.
ⓒ 이재필
심장을 울리는 셔터, 포효하는 기계

배터리실 뚜껑을 열었다. 하얗게 핀 누액 자국을 닦아내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AA 건전지 네 알을 밀어 넣었다. 전용 배터리가 아닌 흔한 건전지를 쓴다는 점이 오히려 이 투박한 기계에 대한 애정을 돋우었다. 필름을 장전한다. 뒷커버를 닫는다. 그리고 셔터 버튼 위에 검지를 올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지그시 눌렀다.

"철-컥! 징-"

그 순간,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것은 내가 알던 셔터 소리가 아니었다. 요즘의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내는 '착-' 하는 세련된 소리도,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의 '틱-' 하는 정숙한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포효에 가까웠다.

육중한 미러가 올라가며 빛을 받아들이고, 포컬플레인 셔터막이 주행을 마치자마자, 내장된 모터가 거칠게 필름을 감아 올리는 소리. 마치 작은 중형 카메라가 크게 기지개를 켜는 듯한 울림이 양손을 타고 팔뚝까지 전해졌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합니다!"

F-501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피사체에게, 그리고 찍는 나 자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소리. 어딘가 과장되고 촌스럽지만, 그 과장이 주는 묘한 낭만이 있었다. 기계가 물리적으로 움직여 빛을 잘라내고 있다는 그 확실한 감각.

디지털 센서가 전기 신호로 이미지를 저장하는 과정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물리적인 노동'의 쾌감이 그 한 번의 셔터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왜 필름 시절의 사람들이 그토록 셔터감(感)에 집착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 마을시작(Nikon F501촬영) 하늘과 가까운 마을은, 늘 까마득한 언덕을 먼저 내어준다. 숨이 조금 차오를 즈음, 시야는 천천히 열리고 발끝 아래로 도시가 겹겹이 내려앉는다.
ⓒ 이재필
느림의 미학, 신세동 벽화마을

이 시끄럽고 무거운 친구와 함께 향한 곳은 1월 마지막날 안동의 신세동 벽화마을이었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벽화와 조형물이 들어섰지만, 마을의 골조는 여전히 수십 년 전의 시간을 간직한 곳이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 비켜 서려면 남의 집 담벼락에 몸을 붙여야 하는 모퉁이들.

나는 가방 한구석에 최신형 디지털 미러리스를 챙겨 왔었다. 빠르고, 정확하고, 가볍고, 소리 없이 찍히는 완벽한 기계.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세동의 골목을 걷는 내내, 내 손은 계속해서 F-501을 찾았다.

초기 AF 시스템은 느리다. 뷰파인더 중앙의 작은 초점 영역에 피사체를 맞추면, 렌즈는 '지잉- 지잉-' 소리를 내며 앞뒤로 움직인다. 초점을 찾기 위해 망설이는 그 짧은 시간. 현대의 기준으로는 답답할 수 있는 그 지연(Lag)이, 신세동의 골목과는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이곳은 서두르면 안 되는 동네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숨을 고르듯, 카메라도 피사체를 명확히 보기 위해 숨을 고른다. 렌즈가 초점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뷰파인더 너머의 풍경을 한 번 더 응시하게 된다. 낡은 창틀 사이에 널린 빨랫줄의 흔들림, 담벼락 위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의 수염, 갈라진 시멘트 바닥 틈새로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

기계의 망설임은 곧 시선의 머무름이 되었다. "빨리 찍고 넘어가라"고 재촉하지 않는 카메라 덕분에, 나는 골목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 고양이마을(Nikon F501촬영) 신세동의 골목은 햇살이 들면 가장 먼저 고양이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 이재필
골목과 기계가 나누는 대화

오후의 빛이 벽화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그림자는 길어졌고, 골목의 질감은 더욱 도드라졌다. 나는 다시 셔터를 눌렀다.

"철-컥! 징-"

고요한 골목에 F-501의 셔터 소리가 메아리쳤다. 누군가는 소음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그 소리는 마치 골목과 나누는 대화처럼 들렸다.

덜 다듬어진 벽돌의 거친 표면, 세월의 풍파에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 불규칙하게 이어진 전깃줄들. 신세동의 풍경은 매끄럽지 않다. 그리고 F-501 역시 매끄럽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AF 성능, 미세하게 손끝에 남는 셔터 쇼크, 뷰파인더 주변부의 어둑함.

그 불완전함이 서로 겹쳐졌다. 너무나 선명하고 깨끗한 최신 렌즈로 담았다면 오히려 이질감이 들었을지 모른다. 전자식의 편의를 받아들였으되 기계식의 야성을 버리지 못한 과도기의 카메라와, 현대적인 벽화를 입었으되 옛 시절의 가난과 정을 품고 있는 골목. 두 세계는 서로의 결핍을 이해한다는 듯 묘하게 닮아 있었다.

나는 뷰파인더 속의 붉은 LED가 깜박이며 초점이 맞았음을 알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확신이 든 순간, 과감하게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는다(Shoot)'기보다, 시간을 '새긴다(Engrave)'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 신세동정상(Nikon F501촬영) 마을 꼭대기까지 오르면 도시는 한 번에 펼쳐진다. 골목은 비좁게 몸을 세우며 이어지지만,그 끝에서 만나는 시야는 뜻밖에 넉넉하다. 발아래로 겹겹이 놓인 지붕들, 멀리 번지는 강빛과 낮은 연기.좁은 길을 지나왔기에 더 크게 열리는 풍경이다.
ⓒ 이재필
경계에 서서 바라본 풍경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안동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해가 넘어가며 도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최신 장비로 이 풍경을 담았다면, 암부의 디테일을 살리고 노이즈 하나 없는 매끈한 이미지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F-501로 바라본 세상은 조금 달랐다. 뷰파인더는 광학식이기에 있는 그대로의 빛을 보여주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필름 특유의 입자감이 덧입혀지고 있었다.

기계적 신뢰와 전자적 편의가 어색하게 공존하던 1980년대. 누군가는 그것을 '미완성'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실패'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이 언덕 위에서 나는 그것을 '낭만'이라 부르고 싶었다. 정돈된 것과 균열이 간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파열음. F-501은 그 경계선 위에서 가장 솔직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악기였다.

마지막으로 셔터를 눌렀다. 여전히 소리는 우렁찼고, 손맛은 짜릿했다. 그 묵직한 울림이 골목의 낡은 벽을 타고 흘러, 내 심장 가장 깊은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 카메라는 단지 '자동초점의 시작'이라는 기술적 이정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니콘이라는 거인이 새로운 시대로 건너가기 위해 내쉬었던, 뜨겁고 거친 숨결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숨결은 나의 호흡과 섞여 신세동의 어느 골목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현실의 시간을 알렸지만, 나는 한동안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직 그 투박한 진동의 여운이 손바닥에 남아 있었기에. 전자식의 문턱, 그 어스름한 경계에서 만난 F-501은 그렇게 나에게 '살아있는 기계'의 온기를 가르쳐 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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