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24) 가슴 뜨거워지는 우리 땅, 한반도

배공순 2026. 2. 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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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선암마을 한반도지형. (사진=날개치는 소리)

한반도(韓半島)는 삼면이 바다이다. 북쪽 또한,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러시아에 접해있으니, 물길로 울타리를 둘러친 셈이랄까. 한반도는 동아시아 유일의 반도로 일본 등 몇몇 국가에서는 조선 반도로 칭한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한국이라 부르는 것이 정착한 후에야 자리 잡은 명칭이어서, 한반도를 가리켜 조선 반도라 쓰기도 한다.

오래 전,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 묵은 참에 병방치 집라인을 타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솔숲으로 들어섰다. 솔향기가 신선했다. 꽤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자 높다란 집라인 승차장이 올려다보였다.

"이야, 한반도랑 똑 같네. 정말 멋지구만!"

"어떻게 모양이 저래요. 신기하네."

먼저 도착한 일행이 땀을 닦으며 환호하는 소리에 속도를 붙였다.

처음 보는 절경,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반도 축소판이었다. 백두대간처럼 뻗은 등허리 하며 위쪽은 좁장하고, 아래쪽은 전라도 평야처럼 너부데데한 모습이 영락없는 한반도였다. 동강의 물돌이가 한반도를 야무지게 휘감고 흐른다. 한민족이 온갖 애환과 말로는 다 못할 흥망성쇠와 질곡을 겪으며 지켜온 땅, 그 숭고한 땅이라는 생각에 들뜨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독도의 한반도 지형. (사진=날개치는 소리)

이런 모양새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생각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유구한 세월 산자락을 끼고 흐르는 강 바깥은 강물이 빠르게 돌아 흐르며 지반을 깎아내고 안쪽은 천천히 흐르면서 모래가 쌓이고 쌓여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형성되었을 테다. 우리나라 지형은 동고서저, 서남다도형인데 그야말로 동고서저의 형태가 뚜렷하다. 자세히 보니 강 오른편에 작은 섬 서넛이 떠 있는 것도 같다. 울릉도, 독도라고 명명해 볼까, 아래쪽에도 점점이 섬 모양이 있다면 서남다도의 풍경이 완벽하게 완성될 터인데…, 쓸데 없는 욕심도 부려본다.

올레 6길, 큰엉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는다. 오솔길 양옆에 무리 지어 핀 노란 털머위꽃에 시선을 앗긴다. 숲길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웅장한 파도 소리가 얹힌다. 벼랑 아래 화산석을 힘찬 파도가 훑고 지날 때마다 검은 바위는 푸르르 몸을 뒤척인다. 물에 젖어 검푸른 얼굴은 하얀 포말로 더욱 검다. 그 역동적인 몸짓을 뒤로하고 돌아서니 쭉쭉 뻗은 야자수 사이로 단정한 리조트가 보인다. 넓은 정원에는 아이들이 뛰논다. 삼삼오오 산책하는 이들도 담소를 나누며 느긋이 오간다. 이들의 따뜻한 실루엣이 무심한 건물에 생기를 채운다.

얼마쯤 걸었을까. 길모퉁이 너머 웃음소리가 경쾌하다. 요럭조럭 포즈를 바꾸며 사진을 찍는 젊은이 뒤로 대여섯 커플이 줄을 서 있다. 뭔가 싶어 다가가니 숲이 만들어 낸 한반도 형태가 뚜렷하다. 숲이 우거지며 하늘을 캔버스 삼아 그려낸 한반도 지도는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뻥 뚫린 한반도를 배경으로 젊은 연인들은 인생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그들이 발산하는 상큼한 에너지가 기분 좋게 전달된다. '우리도?' 눈짓을 주고받으며 우리 부부가 슬그머니 줄 끝에 서자, 평균연령이 쑥 올라 잔가지에 걸린다. 차례가 되었다. 뒷줄이 없기를 바랐지만, 아까보다 더 긴줄이 늘어 서 있다. 어떤 자세를 해야 할지 몰라 터덕거렸다. 좀 뻔뻔해도 좋았으련만, 중년의 커플을 바라보는 젊은 시선이 어색해 어찌어찌 찍고는 후딱 물러섰다.
제주 남원 큰엉길 한반도 지형. (사진-배공순)

한반도는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로 '지리적 요충지이자 강대국의 경유지'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로 인해 온전하게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처지인 것도 맞고 휴전선이 강대국의 손가락에 의해 맥락 없이 그어져 그로 인한 분단의 비극을 칠십 년이 넘도록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맞다. 멈춤 없이 벌어지는 어지러운 국제 상황도 그렇고 앞으로도 어떤 돌발 사태를 마주할지 알 수 없는 것도 그렇다. 그렇다 해도 이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주변정세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섣부른 결정을 억제하는 안정의 기제가 되는 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한민족은 냉철하고 지혜롭게 응전하며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한반도란 단어는 늘 가슴을 뜨겁게 한다. 80년대 어느 글에서 우리나라의 앞날을 내다보는 예언 같은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국제 사회의 지명도와 GDP는 턱없이 낮았고 너도나도 먹고 살기에 급급하던 시절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황당했지만, 그래서 더 기억 속에 새겨진 이야기였다. 머지않아 테평양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 세계 패권을 쥐고 흔드는 미국을 거쳐 동아시아로 국가 부흥기의 축이 돌아온다는데, 그 중심 국가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었다. 세계인들이 우리 한글을 배우고 쓸 뿐 아니라 우리 문화를 숭배할 거라는, 당시로선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 (그림=나무위키)

인도네시아 부톤섬에는 찌아찌아족이 산다. 문자가 없는 상태로 구술어를 쓰던, 인구 십만 여명의 소수민족이다. 인도네시아 공용어를 쓰라는 정부 지침에 고유 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한글을 공식문자로 쓰기로 한 것. 이십여 년 전쯤, 많은 사랍의 관심 속에 이름도 생소한 찌아찌아족 사람들이 초청받아 서울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결정을 보며 '드디어 시작인가'하는 기대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현재까지 민간 교류가 이어지고 있어 한글로 쓰고 말하는 찌아찌아족의 땅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

예언 같은 그 이야기가 실현되고 있는 요즘이다. BTS와 블랙핑크 등 K-Pop 열기뿐이랴, 한글, 한식, 한복, 영화, 애니메이션,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민족의 고유한 매력을 한껏 방출하며 세계인을 불러 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대서양 시대가 끝나고 새로이 아시아 태평양 중심으로 재편되는 지금의 국제 정세나 경제활동의 흐름 같은 거대한 담론은 앎이 일천하여 접어두련다. 오늘도 우리의 땅, '한반도'라는 말 앞에 나는 가슴이 뜨거워질 뿐이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수필가 배공순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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