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나를 포기해야 유지되는 '거래된 우정'
<아동인권 365 ? 아동권으로 동화읽다 >는 익숙한 동화를 아동의 문제가 아닌, 어른과 사회의 책임을 묻는 텍스트로 다시 읽는 연재입니다. <기자말>
[서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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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 소장한 그림책을 거실 바닥에 펼쳐놓았다.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 여러 권 나왔다. 그림책 <무지개 물고기> 시리즈(마르쿠스 피스터 저, 시공주니어) |
| ⓒ 서정은 |
동화 속 무지개 물고기는 반짝이는 비늘을 하나씩 떼어줄 때마다 친구가 늘어난다. 처음에는 비늘을 나눠주지 않으려던 '욕심꾸러기' 무지개 물고기가 비늘을 다 내어준 뒤에야 공동체 친화형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 그림책을 읽어주며 이런 메시지를 강조한다.
'그래, 네가 가진 걸 잘 나눠줘야 해. 그래야 어디 가서 미움 안 받지. 무지개 물고기 좀 봐. 다 나눠주니까 다들 얼마나 행복해하니? 너도 양보해야 착한 아이지.'
우리는 이를 '더불어 사는 법'이자 '인성 교육'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진정 그러한가? 이 글은 '나눔'이라는 미덕이 어떻게 조건부 사랑의 구조로 변질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아이의 자율성과 정서 주권을 어떻게 침범하는지 비판적으로 따져보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거래된 우정'이란, 존재 그 자체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어느 정도 자기를 포기하고 뭔가를 교환하고 거래할 조건이 있어야 유지되는 관계를 말한다. 친구나 공동체에 소속하기 위해 정체성의 일부를 지불해야 하는 구조다.
존재 부정의 서사: 비늘은 '재산'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물고기에게 비늘은 신체 일부다.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은 남과 다른 그만의 특징이자,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한다. 고유한 정체성이다. 하지만 동화는 이 비늘을 하나씩 뜯어내어 다른 이들에게 나누라 한다. 아니 상납하게 한다. 자발인듯 강요된 나눔이다. 그 과정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공동체는 그를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갈등은 무지개 물고기의 욕심, 거만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나를 조각내어 넘겨야만 '관계'가 유지된다는 공동체의 압력에서 출발한다. 바닷속 공동체는 이 거래를 '나눔'이라 말한다. 선의로 나눔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가장 빛나는 개성을 집단의 평화를 위해 바쳐야 한다. 이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집단에서 배제되고, 따르지 않으면 고립되는 조건이 붙는다. 그때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미덕이라 부르기 어렵다.
찝찝함의 정체: 내 몸 안의 감각을 부정당하다
사회 정서 교육(SEL)의 출발은 '자기 인식'이다. 내 몸, 내 감각, 내 느낌을 온전히 인지하는 것이 먼저다. 그 다음이 타인과의 관계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개)인성보다 사회성을 비정상적으로 앞세운다. 사회 정서 교육 이론 자체는 자기 인식을 우선에 둔다. 문제는 현장에서 덕목 주입이 개인 감정보다 앞설 때 발생한다. 이 책 메시지는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정직한 거부감(나누기 싫다, 아깝다)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부정하게 만든다.
아이는 비늘을 뺏기며 상실감을 느끼지만, 주변 어른들은 이를 "좋은 일", "착한 행동"이라 정의하며 박수를 친다. 내 마음(슬픔)과 어른의 평가(기쁨)가 따로 노는 기이한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다. 결국 무지개 물고기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타인의 시선을 선택한다. 내 마음을 누른 채 어른들이 설계한 '착한 아이'라는 빈 방으로 도망치는 '정서적 망명'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보다 외부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무엇으로 사랑받는지, 인정받는지를 먼저 계산하는 습관이 생긴다. 이것이 거래된 관계에 길들여지는 첫 단계다.
집단주의적 압박과 성인의 이중잣대
한국과 아시아권에서 이 동화가 특히 유명한 이유는 뭘까. 이 책을 향한 비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서구 일부 독자들은 이 책이 "아이에게 하향 평준화와 집단주의적 복종을 강요한다"라며 비판한다. 나를 지우고 무리에 섞이는 것은 우정이 아니라 '동조 압력'이라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성인 독서모임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 동화책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해 불가한 점이 있다며 말이다. 맞다. 동화에는 어른이라 할 어른이 없다. 유일한 어른으로 '문어'가 나오는데 지혜로운 성자로 묘사된다. 실상은 권위적인 중재자에 불과하다. 그는 무지개 물고기의 고유성을 보호하지 못한다. "그냥 나눠줘 버려"라 한다. 현실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상황을 서둘러 종료하듯 말이다. 이는 명절 날 장난감을 뺏긴 아이에게 "네가 형이니까 참아"라고 말하는 것과 닮았다.
여기서 어른들의 이중잣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성인들은 부동산과 자산을 지키기 위해 법적 권리를 총동원한다. 그러면서 왜 아이의 손때 묻은 장난감 앞에서는 그토록 가혹한 무소유와 희생을 강요하는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공유하라는 강요는, 성인에게 "네 집과 차를 낯선 이와 공유하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은 자신의 소유와 감정을 인정받을, 발달적 권리에 대한 침해를 말한다.
아이가 "싫어! 내 거야!"라고 소리칠 때 어른들은 당황하며 설득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내뱉는 건강한 주권 선언이다. 이기심은 많이 가져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소유를 충분히 인정받아 보지 못한 경험에서 나온다.
이제 우리는 이 동화를 읽으며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다.
'비늘을 떼어줄 때 무지개 물고기 마음은 정말 괜찮았을까? 네가 억지로 너를 나눠주지 않아도, 너라는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는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에 매달리는 '생존형 나눔'이 아니다. 내가 누구와 연결될지 스스로 결정하는 시대이고, '접속의 주권'이 중요하다. 이것은 고립을 택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누구와 관계 맺을지, 어떤 조건에서 연결될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이번 명절에 관계를 맺음으로, 또는 맺지 않음으로 너무 외로워 하거나 괴로워 하지 않기를 바라며, 많은 무지개 물고기들에게. )
덧붙이는 글 |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홈페이지와 개인 SNS에도 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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