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광신자라고?" 맥주잔 놓고 안부 묻던 두 청년의 설전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2026. 2. 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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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사유하지 않는 악과 저항하는 선,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윤한샘 기자]

▲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영화 속 주인공, 휴 레가트, 파올 폰 하르트만, 네빌 체임벌린
ⓒ 넷플릭스
1938년 9월 30일, 독일 뮌헨 퓌어러바우.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는 옷차림에서부터 극명하게 갈렸다.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과 에두와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맞은편으로 위압감을 풍기는 군복을 입은 아돌프 히틀러 독일 수상과 베니토 무솔리니 이태리 수상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회담의 목적은 명확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란드 지역을 독일에게 넘기는 대가로 유럽의 평화를 보장 받는 것. 베르사유 조약을 어기고 재무장을 강행하며 유럽을 다시 전쟁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히틀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독일 총통에 오른 히틀러는 재무장을 선언하며 1936년 라인란트 접경에 군사들을 배치했다. 이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독일은 약 300만 명의 게르만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란드까지 요구했다. 침략 명분은 레벤스라움(Lebensraum), 게르만 민족은 하나의 생활권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팽창주의적 이념이었다.

물론 이는 히틀러의 프로파간다였다.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중공업 시설을 흡수하고 동유럽 확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베르사유 조약 파기와 오스트리아 병합을 묵인해 온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까지 넘보는 히틀러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와 대공황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움직임에 정치적, 군사적 대응을 자제해 왔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악몽과 다름없었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고자 했다. 이미 두 번이나 독일로 건너가 히틀러를 만나 독일의 진위를 파악하고 파국을 막기 위해 설득했다. 이런 노력 끝에 그는 이탈리아를 중재자로 내세워 마침내 뮌헨에서 협정을 이끌어냈다.
 아돌프 히틀러가 네빌 체임벌린 수상을 맞이 하고 있다
ⓒ 위키커먼스
협정의 내용은 간단했다. 독일이 주데텐란드를 가져가면 체코슬로바키아의 새로운 국경을 보장하며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 1938년 9월 30일 4개국 지도자는 이 조약에 서명하며 평화로운 유럽을 약속했다.

"나는 이 협정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I believe it is peace for our time)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뮌헨 협정 직후, 런던에 도착해 이렇게 선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비극적이며 최악의 전쟁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광신도

넷플릭스 영화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는 뮌헨 협정을 무대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두 남자, 휴 레가티와 파울 폰 하르트만의 고뇌와 갈등을 그린다. 영화는 1932년 옥스퍼드 대학 졸업 파티로 시작한다. 영국인 휴 레가티와 독일인 하르트만은 국적은 다르지만 둘도 없는 친구다.

하지만 졸업 후 레가티가 하르트만을 찾아 뮌헨의 맥주홀 '후버스'에서 재회했을 때,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정답게 안부를 묻던 분위기는 히틀러라는 화두가 던져지는 순간 급격히 식어버린다.

인종차별과 전쟁준비를 하는 히틀러가 파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말하는 레가트에게 독일 국민이 진정한 지도자를 얻었다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는 하르트만. 그는 오히려 남을 착취하는 건, 영국이라며 히틀러를 향한 강한 충성심을 숨기지 않는다.

"내가 광신자라고?"
"히틀러는 광신자고 넌 그를 변호하고 있어."

광신도. 맥주홀 안에서 큰 소리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는 하르트만은 어느덧 히틀러를 닮아 있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그리고 독일인. 1차 대전의 패전국민으로 영국 최고 대학을 다닌 독일 청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열등감과 좌절감이 분노로 분출된 것이리라.

레가트를 앞에 두고 분노에 사로잡힌 하르트만은 히틀러뿐만 아니라 그 당시 독일 국민의 모습이기도 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무너진 자존심,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수십 억 마르크를 지불해야 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 극악의 실업률까지 독일인들은 집단적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암흑 같던 시기,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베르사유 조약 폐기와 게르만의 부흥을 내세운 히틀러는 마치 초인처럼 다가왔다. 실제로 히틀러는 아우토반 건설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과 군수 공장의 확장 그리고 징병제를 실시하며 실업률을 내리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독일은 혼란을 잠재우고 활기를 되찾는 듯 보였다. 게다가 오스트리아를 병합까지 했으니, 대다수 독일 국민은 어느덧 히틀러를 중심으로 결집되고 있었다.

전쟁의 문턱에서

세월이 흘러, 영국 외무부 소속이 된 레가트는 네빌 체임벌린 수상 지근에서 협정 체결을 보좌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체임벌린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극도의 유화정책을 펼치는 인물이다. 그는 독일에게 주데텐란드를 허락하면 히틀러가 물러설 것이라는 치명적인 오판을 하고 있었다.

실제 역사 속 네빌 체임벌린 수상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히틀러의 간계에 넘어간 나약한 유화주의자라는 평가와 영국의 재무장 시간을 벌기 위해 오욕을 감수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한편, 파울 폰 하르트만 역시 독일 외무성에서 공직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행동과 눈빛은 몇 년 전 후버스에서 보여주었던 광신도의 것이 아니다. 히틀러의 충성심으로 가득했던 얼굴에는 깊은 불안과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의 눈에 쓰여 있던 광신의 베일을 벗긴 사람은 옥스퍼드 동창이자 유대인이었던 레나였다. 시위를 하다 잡힌 그녀는 등에 '다윗의 별'이 새겨진 채 창밖으로 떨어진 뒤, 식물상태로 버려졌다. 그런 레나를 보며 하르트만은 히틀러가 괴물임을 깨닫고 반나치 전선에 기꺼이 몸을 던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르트만은 뮌헨 협정이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목표는 몇 달 전 입수한 전쟁 계획서를 영국에 전달해 협정을 무산시키는 것. 그 문서에는 주데텐란드를 할양받은 뒤에도 체코와 폴란드를 침공한다는 히틀러의 야욕이 담겨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영국 비밀정보국은 하르트만과 접선할 적임자로 레가트를 낙점하고 그를 뮌헨행 비행기에 태운다.

나치 정보국의 감시를 뚫고 간신히 재회한 두 사람. 이들의 접선 장소는 둘의 우정이 파국을 맞았던 후버스였다. 몇 년 전 그날처럼 맥주를 앞에 두고 마주한 레가트에게 하르트만은 자신이 히틀러의 반대편에 섰다는 사실을 고백한 후, 전쟁 계획 문건을 건넨다. 체임벌린 수상이 이 진실을 목격하고 협정문에 서명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협정 체결을 앞둔 몇 시간 전, 레가트는 체임벌린에게 문건을 전달하려 하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다. 이를 눈치챈 하르트만은 레가트에게 체임벌린을 직접 만나 히틀러의 전쟁 계획을 직접 폭로하겠다고 제안하고 무작정 방으로 들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체임벌린과의 독대에 성공한 하르트만은 주데텐란드 할양이 히틀러의 야욕을 부추길 뿐이라며 협정문 파기를 호소한다. 협정이 무산되면 그 틈을 타 독일 내 저항세력이 히틀러를 암살하겠다는 정보도 흘린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냉혹한 거절이었다. 체임벌린은 '협정 체결을 통해 당장의 전쟁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이후 외교적 수단으로 방법을 찾겠다고 못 박아버린다. 그리고 그날 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주데텐란드의 독일 할양을 인정하는 협정문에 서명을 한다. 체코슬로바키아 의견은 물론 당사자의 참석도 배제된 채.

아이러니의 상징, 맥주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속 맥주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도구로 쓰인다. 영화 속에서 맥주는 베를린과 뮌헨에서 등장한다. 초반부, 하르트만은 베를린 광장 카페에서 반나치 군부로부터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계획을 전해 듣는다. 바로 내일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지만, 베를린의 거리는 평화롭기만 하다.

이곳에서 긴장한 표정을 한 사람은 하르트만 한 명이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연인들은 다정히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천진난만하게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 곁으로 나치 완장을 찬 군인들이 나란히 앉아 붉은 액체를 앞에 두고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뮌헨 맥주홀 후버스에서 모인 휴 레가트, 레나, 하르트만. 실제 뮌헨에는 후버스라는 맥주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 넷플릭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빨대로 군인이 마시고 있는 액체는 '베를리너 바이세'다. 한때 나폴레옹이 '북독일의 샴페인'으로 불렀던 베를리너 바이세는 자연발효에서 나오는 시큼한 향미를 가진 베를린의 전통 밀 맥주다.

알코올 도수는 2~3% 정도로 낮고 보통 라즈베리나 우드러프처럼 다양한 향을 가진 시럽을 타서 먹곤 한다. 여름에는 얼음을 넣어 음료수처럼 즐기기도 하며 특이하게 빨대를 이용해 마신다. 영화 속 베를리너 바이세가 붉은색을 띠고 있는 이유도 라즈베리 시럽을 탔기 때문이다. 맥주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이 장면을 봤다면 주스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순백의 옷을 입고 비둘기 먹이를 주는 천사와 같은 아이들 옆에 군인들이 베를리너 바이세를 마시는 이 찰나의 장면은 비현실적, 아니 기괴하다. 전쟁의 문턱에서 웃고 사랑하며 맥주를 마시는 독일 국민들의 모습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악의 평범성'은 거창한 악마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판단을 멈춘 '사유의 부재'를 가리킨다. 이념에 경도되어 사유하지 않는 개인이 전체주의에 어떻게 휩쓸릴 수 있는지, 베를리너 바이세를 마시는 군인들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뮌헨의 맥주홀에서 취해있는 군중들에서도 동일하게 읽을 수 있다.

뮌헨 후버스에서 레가트와 하르트만 사이에 있던 맥주는 아마 헬레스일 것이다. 낮은 쓴맛과 뭉근한 바디감을 가진 뮌헨의 황금색 라거, 헬레스는 음용성이 좋아 누구나 편하게 즐기는 맥주다. 그러나 두 남자는 헬레스를 즐기지 못한다.

본래 독일의 맥주홀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공동체 공간이지만 영화 속에선 이념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절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 속의 헬레스 또한 마찬가지. 우정을 잇는 매개체가 아닌, 이념을 투영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영화는 훌륭한 맥주도 선한 영향력을 갖지 않는다면, 그저 알코올을 머금은 무의미한 액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역사, 반복의 아이러니

뮌헨 협정이 체결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1939년 3월 15일,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으로 침공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더 이상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최후통첩으로 여겼던 폴란드에 포성이 들리자, 전 세계는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 미국까지 6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터로 쑥대밭이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체임벌린이 물러나고 강경파였던 윈스턴 처칠이 수상이 된다. 체임벌린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와 달리 그는 계산적이고 냉철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비록 히틀러를 오판하긴 했지만, 적어도 뮌헨 협정은 영국이 재무장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놓았다.

영화에서도 하르트만이 건넨 문서가 영국 정보국에 전달되며 체임벌린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레가트가 공군 입대를 결정하는 장면 또한 뮌헨 협정 덕에 영국이 재무장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기에 개인은 나약하고 무력할지 모르나, 그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담담히 맞서는 모두의 용기와 희망을 영화는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 내내 머릿속을 파고드는 불안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 내부 불안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려는 권력, 힘이 곧 정의라는 프로파간다로 대중을 선동하는 지도자, 인정하긴 싫지만 90년 전 풍경이 오늘날의 현실과 자꾸 겹쳐 보였다.

역사의 반복은 필연인 것일까?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불쑥 치솟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역사의 절망에 담담히 맞서는 개인들이 결국 세상을 지탱해 왔음을 사실을 알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비판적 사유를 멈추지 않는 깨어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불완전하지만 전쟁 위에 인류가 구축한 평화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깨어있는 세계인들의 연대의 힘을 믿는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을 위해 건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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