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30분 걸려 자른 머리,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2024년 5월, 안정을 뒤로하고 동반 퇴사한 40대 부부입니다. '조기 은퇴'라는 로망 너머의 치열한 현실과 길 위에서 마주한 삶의 진짜 가치들을 솔직하게 기록합니다 <기자말>
[김봉석 기자]
사회 생활을 하던 시절, 나의 헤어스타일은 언제나 '규격'이 정해져 있었다. 앞머리를 짧게 세워 올린 리젠트 컷, 혹은 단정한 포마드 스타일.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일종의 유니폼이었다. 협업과 협의가 주업무였던 내 직업 특성상, 타인에게 신뢰감을 주는 '깔끔한 이미지'는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생존 전략이었다.
나의 신체적 특성인지, 아니면 사회적 스트레스가 머리카락으로 영양분을 보내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 머리털은 남들보다 유독 빨리 자랐다. 한 달에 두 번은 반드시 미용실 의자에 앉아야 했다. 해가 갈수록 오르는 커트 비용에 저렴한 남성 전용 미용실을 찾아 전전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비슷비슷한 짧은 머리였지만, 나에게는 왁스로 만지는 미세한 각도 하나가 그날의 기분을 좌우하는 예민한 지표였다. 그 시절 미용실은 나를 정돈하고 사회적 전장으로 내보내는 '정비소'와 같았다.
2024년 5월, 20여 년의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은퇴를 감행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머리카락에 대한 '방임'을 선언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장발'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사회적 시선이라는 가위질을 멈추면 내 머리카락은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방임은 어느덧 2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어깨선에 닿았다.
머리카락을 기르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머리를 기르며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내가 지독한 '곱슬머리'였다는 사실이다. 평생 짧게만 유지해온 탓에 내 모발의 본성을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대면한 것이다. 머리끝이 살짝 말려 올라가는 형태를 보며, 나는 그동안 내 본연의 모습을 얼마나 단단히 억누르며 살았는지 새삼 느꼈다.
머리카락이 길어지자 낯선 습관들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릿결을 무심코 뒤로 넘기고, 눈 앞을 가리는 가닥을 귀 뒤로 꽂는 동작들.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나의 이런 행동들은 흡사 아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처음엔 그런 내 모습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손길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백미는 머리를 감는 시간이다. 예전엔 1분이면 충분했던 샴푸 시간이 이제는 정성스러운 '손빨래' 공정으로 바뀌었다. 고개를 숙이고 축 늘어진 머리카락을 비비는 손길, 물기를 말리기 위해 수건으로 돌돌 말아 짜내는 감각, 드라이기로 말릴 때 엉킨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집중하는 나의 모습. 이 모든 과정이 생경하면서도 즐거웠다. 은퇴 전엔 미처 몰랐던, 내 몸을 돌보고 가꾸는 시간의 밀도를 비로소 체감하게 된 것이다.
해외 생활에서 장발은 경제적인 이점도 선사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지불하던 미용 비용이 제로에 수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아내의 웃음이었다. 해외라는 낯선 환경에서 긴장하며 살기 쉬운 우리에게, 나의 치렁치렁한 헤어스타일은 아내의 가장 확실한 '웃음 버튼'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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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땅에서 피어난 용기, 오흐리드 미용실의 풍경. 말이 통하지 않는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의 한 미용실에서 아내가 첫 탈색과 염색을 시도하고 있다. 세 나라의 언어가 오가는 소란스러운 통역 과정 끝에 얻어낸 이 결과물은 해외 살이에서 마주한 작은 승리였다. |
| ⓒ 김봉석 |
세 나라의 언어가 오가는 시끌벅적한 소동 끝에 아내는 생애 첫 탈색과 염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의 3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에 원장님의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낯선 땅에서의 용기가 얻어낸 값진 전리품이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자다르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나의 머리카락은 이제 어깨 아래를 넘어 관리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아내처럼 용기를 내어 현지 미용실을 수소문했지만, 자다르의 물가는 녹록지 않았다. 한국 커트 비용의 3배에 달하는 견적을 확인하고 나니, '용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벽이 느껴졌다. 은퇴자에게 3배의 이발비는 사치였다.
설날 아침 개업한 베란다 미용실
내가 우울한 표정으로 거울 속의 장발남을 노려보고 있을 때, 아내가 지그시 웃으며 제안했다.
"내가 잘라줄까?"
순간 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인 것은 잘 알지만, 가위를 든 아내의 손을 상상하니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하지만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아내의 눈빛에는 묘한 갈망과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거절하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 나는 조건을 걸었다. 충분히 유튜브로 공부하고 연습한 뒤에 '준비'가 되면 맡기겠다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다.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 아침이었다. 떡국 대신 가위를 든 아내는 베란다 창가에 의자를 놓았다. 아드리아해의 햇살이 역광으로 비치는 베란다 미용실의 풍경은 꽤 낭만적이었으나, 내 심장 소리는 버스 엔진 소리보다 크게 울렸다.
'쓱쓱, 쓰으윽, 싹뚝.'
첫 가위질이 시작되자 아내의 떨리는 손끝이 내 목덜미에 전해졌다. 나 역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손길에는 거침없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2년 묵은 나의 '자유'가 툭툭 떨어졌다. 엄청난 양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머리가 가벼워지는 물리적 해방감이 밀려왔다.
약 30분의 사투 끝에 아내가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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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아티아 자다르의 햇살 아래 개업한 '베란다 미용실'. 숙소 베란다에서 아내가 나의 장발을 잘라주고 있다. 어린 시절, 마당에 앉아 부모님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던 그 시절의 향수를 담아 흑백으로 기록했다. 서투른 가위질이었지만 그 어느 전문가의 손길보다 다정했던 시간이었다. |
| ⓒ 김봉석 |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1초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대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내도 본인의 작품에 당황했는지 배를 잡고 구르기 시작했다. 화가 날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거울 속의 촌스러운 내 모습이 너무나도 정겨워 나 역시 눈물이 날 때까지 웃었다.
이 단발머리는 20년 동안 '세련된 짧은 머리'를 유지하느라 애썼던 나에 대한 해학적인 보상 같았다. 비싼 미용실 의자에서 "5cm만 남겨주세요"라고 예민하게 주문하던 그 깐깐한 직장인 남성은 자다르의 어느 베란다에서 아내의 가위질 몇 번에 완전히 소멸해버린 것이다.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 나간 것들
지금 나는 자다르의 거리를 '최양락 단발'을 하고 씩씩하게 걷는다. 바람이 불면 예전처럼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지만, 이제는 훨씬 가볍고 경쾌하다.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도, 전문가의 손길로 다듬어진 완벽한 각도도 필요 없는 삶. 아내가 정성껏 잘라준 이 머리카락은 우리 부부가 해외 살이에서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가 되었다.
장기 해외 살이를 하다 보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 한국의 편리한 인프라, 익숙한 미용실, 단골 식당... 하지만 포기한 자리에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낯선 환경에서의 용기, 예기치 못한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여유, 그리고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다정한 시간이다.
나의 헤어스타일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다음번엔 아내가 조금 더 실력을 발휘해 줄지, 아니면 아예 삭발을 권유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짧아지는 그 리듬 속에 우리 부부의 해외 생활도 더욱 능숙하고 단단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다. 비록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이 머리카락에는 자다르의 설날 아침 우리가 함께 나눈 그 찬란한 웃음이 묻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단발머리는 내 인생 최고의 헤어스타일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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