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일'을 줄이겠다고? 33년 교단에 선 나는 '가짜'가 되었다

오성훈 2026. 2. 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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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깃털 뽑아 코끼리 무게 줄이기' 식인 교육부의 '가짜일' 줄이기 대책

[오성훈 기자]

 교육부 건물
ⓒ 윤근혁
33년을 교단에 서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평교사로, 교감으로, 교장으로 학교 현장에서 수행했던 숱한 일들이 교육부의 말 한마디에 '가짜'가 되었다. '학교'와 '가짜'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교육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위해 학교 현장의 가짜 일 줄이기에 나선다'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가짜 일'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그대로 뽑아 제목을 달았다.

'가짜 일'은 본래 산업통상자원부가 2025년 시작한 '불필요한 보고서 근절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한 일을 불필요한 보고서로 만드는 내부 관행을 꼬집기 위해 쓴 말인데, 교육부가 이를 학교 현장에 그대로 이식한 것이다.

2년 전 처음 공모교장으로 부임해 교장실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아이들의 얼굴이 아니라 결재를 기다리는 산더미 같은 서류와 전자결재 시스템에 빼곡히 쌓인 보고 공문이었다. 그래서 업무 경감이라는 방향 자체에는 두 손을 들어 찬성한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선택한 이 단어가 유독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장 교원의 노력을 폄하하는 뉘앙스이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 일관성의 문제다. 만약 그것이 진짜 '가짜'라면 전부 없애야 마땅할 텐데, 그중 상당수는 그대로 두겠다는 방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줄여야 할 비효율을 '가짜'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현장을 향한 과잉 수사일 수 있다. 과연 이 '가짜 일'과의 전쟁이 현장의 공기를 바꿀 수 있을지, 그 실효성과 쟁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가짜 일'과의 전쟁, 지엽적 사례와 진짜 고통의 괴리

교육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학교의 각종 관행과 비효율적인 행정 절차를 사전에 발굴해 개선하고, 학교 공동체와의 소통을 통해 업무 줄이기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한다. 지난 12월 사전 간담회를 통해 제안된 8개 과제는 2026학년도 1학기 중 시행한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연말 산자부의 문제의식이 정부 차원의 화두로 떠오르며 전 부처로 확산된 흐름 속에서 나온 대책이다. 취지는 좋다. 하지만 교육부가 내세운 사례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 것이 2026년부터 폐지되는 '교내 상장 수여 시 공무원 포상 규정 적용'이다. 학생에게 상장 하나를 주기 위해 복잡한 공적 조서를 작성했던 비효율을 멈추겠다는 것이다.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과연 이것이 현장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가?

대다수 학교는 이미 내부 상장 수여 시 그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며, 외부 상장조차 공무원 포상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장의 진짜 고통은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행정의 '지엽적 사례'만 찾아낸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학교 자체평가 항목 정비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교육청 가이드라인 안에서 학교가 자율적으로 항목을 가감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학교 경영을 성찰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는 유지되어야 한다. 정작 학교 현장이 원하는 경감은 '연말 설문 독려' 같은 무의미한 절차의 폐지다.

매년 말이면 교육청의 각종 설문 참여를 독려하는 공문이 쏟아지고, 참여율이 저조하면 교감에게 독려 요청 메일이 온다. 교감은 다시 교원들에게 참여를 읍소하고, 교사들은 내용을 충분히 읽지도 못한 채 형식적으로 응답하기에 급급하다. 이런 기이한 보고 체계야말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가짜 일'이다.

더 심각한 '가짜 일'은 교육청이 요구하는 연수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연말마다 원격연수원에 접속해 무의미한 클릭을 반복하는 일이다. 교사 개개인의 직무 역량을 쌓기보다 오직 '시간 채우기'에 급급한 이 과정에 1인당 약 15만 원 상당의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서울시교육청 학교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상 교원 1인당 교원자비부담연수비 지원 기준). 전국 교원 약 50만 명 중 상당수가 이 절차를 거친다고 보면, 예산 낭비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이는 명백한 예산 낭비이자 행정력 낭비다. 직무 연수를 의무적으로 채우게 할 것이 아니라, 교사가 자발적으로 필요한 전문 서적을 구매하거나 외부 전문 기관의 강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가짜 연수'를 멈추고 교사의 자율적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행정 경감의 길이다.

업무의 '삭제'가 아닌 '이관', 핑퐁 게임의 우려

이번 대책의 핵심은 학교의 비본질적 업무를 교육지원청으로 넘기는 '이관'이다. 그러나 단순히 업무의 주소지만 옮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원청 내 '학교지원 전담기구'가 실질적인 인력과 재정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 업무들은 다시 학교로 되돌아오는 '행정 핑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이번 대책은 행정실 업무를 줄이는 데 치중해 있어, 지원청 인력 확보를 위해 학교 행정 인력이 축소될 우려도 있다. 또한 교사 정원에 포함되는 장학사를 늘려 사실상 인턴 격으로 지원청에 배치할 경우, 학교는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야 하는 또 다른 행정 업무를 떠안게 된다.

장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이른바 '사슴 사냥'의 딜레마를 이야기한다. 여러 사냥꾼이 함께 사슴을 에워싸야 모두가 배부르지만, 눈앞에 토끼가 지나가면 누군가는 포위망을 이탈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관이라는 이름 아래 각자 눈앞의 '토끼'를 잡으러 흩어진다면, 업무를 나눠 갖는다고 공동의 짐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율 비용과 책임의 공백이라는 새로운 짐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깃털 너머의 코끼리... 네 개의 다리에 메스를 대다

이번 개선안 중 교사들이 가장 환영하는 조치는 '지각·조퇴·외출 시 사유 기재 폐지'다. 이는 단순히 몇 글자를 덜 쓰는 문제가 아니라, 수업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교사의 자율성과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선언이다. 교사의 자부심을 회복시키고 학교 현장의 민주적 문화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학교장으로서 솔직한 심정을 덧붙이자면, 자율이라는 이름이 공동체적 헌신을 압도하는 현장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학교는 혼자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다. 교사 개인의 권리가 존중받되, 아이들 앞에 함께 서 있다는 동료 의식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 균형을 잡는 것이 자율의 진짜 무게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작은 변화에 안주해서는 안 될 출발점이어야 한다. 지금의 개선안은 깃털 몇 개를 뽑아내며 코끼리의 무게가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격이다. 깃털을 뽑는 시늉에 머물 것이 아니라, 교육활동을 마비시키는 이 거대한 코끼리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근본적인 해체와 재구성을 논할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이 코끼리를 지탱하고 있는 '네 개의 다리'에 구체적인 메스를 대야 한다.

첫째는 '가혹한 기록 노동'이다. 매년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을 교사 개개인이 법전처럼 숙지해야 하고, 단 한 글자의 오기도 허용되지 않는 이 굴레를 서술 중심에서 핵심 항목 체크리스트 방식으로 대폭 간소화해 교사의 어깨를 가볍게 해야 한다.

둘째는 '행정 형벌 집행자'라는 오명이다. 학교폭력 조치 사항의 기록과 삭제 과정에서 마주하는 소송 위협은 교사를 교육자가 아닌 행정가로 전락시킨다. 조사·기록·통보 절차를 교육지원청 산하 전문기구로 완전히 이관해 교사를 교육적 중재의 영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셋째는 '경직된 규제의 벽'이다. 수업용 소프트웨어 하나를 도입할 때마다 거쳐야 하는 학교운영위원회 상정 및 심의 절차는 디지털 전환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교육부 차원의 공통 소프트웨어 인정제를 도입하고 학교장 전결권을 확대해 수업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넷째는 '소모적인 공모 경쟁'이다. 예산을 따내기 위해 계획서와 보고서 작성에 에너지를 쏟는 구조는 학교 간 위화감만 조성한다. 선별적 공모 사업 위주의 예산 지원을 줄이고, 학교급별 기본 운영비를 확대해 학교가 자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 네 개의 다리를 그대로 둔 채 지엽적인 부분에만 매몰된다면, '가짜 일'과의 전쟁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가짜 전쟁'이 되고 말 것이다.

행정 업무 경감의 종착역은 효율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확보한 시간이 온전히 학생의 성장을 살피는 눈길로 치환되는 것이다. '업무가 줄었더니 아이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 교무실 곳곳에서 들려올 때, 교실의 공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 공기의 변화야말로 어떤 정책 보고서에도 담아내지 못하는 진짜 교육 혁신의 신호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의 눈을 맞추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진짜'가 되기를 꿈꾸는 '가짜 서류'를 다듬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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