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서 피워낸 60년의 ‘뚝심’…모방을 넘어 장르가 되다 [창작 뮤지컬 60년①]

박정선 2026. 2. 2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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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콤 '명성황후' 등장, 창작 뮤지컬 '산업' 신호탄
보편적 서사에 '한(恨)' 녹여내 완성한 K-뮤지컬만의 문법

2026년, 한국 공연계는 거대한 이정표 앞에 섰다. 한국 창작 뮤지컬이 환갑을 맞이한 것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문화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서구의 낯선 장르를 들여와 우리만의 가락을 입히겠다고 나선 지 꼭 60년이 흘렀다. 오늘날 K-뮤지컬은 케이팝(K-POP), 케이드라마(K-DRAMA)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킬러 콘텐츠’로 자리 잡았지만, 그 시작은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예그린악단 1962년 5월, 제3회 정기공연 <5월의 찬가> 시민회관 ⓒ한국뮤지컬 60주년사 정책간담회 자료자신

한국 창작 뮤지컬 기점은 1966년 예그린악단이 선보인 ‘살짜기 옵서예’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업계는 “1966년은 한국 뮤지컬이 서구의 장르적 문법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원년”이라고 정의한다. 당시 예그린악단은 서양의 오케스트라 편곡에 국악 색채를 입히고, 고전 소설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한 해학적 서사를 무대 위에 올렸다. 나흘간의 공연 동안 1만 6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사건은, 뮤지컬이라는 낯선 외래 장르가 한국 토양에서도 뿌리 내릴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초기 30년은 ‘불모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시기였다. 1970~80년대 한국 뮤지컬은 연극의 하위 장르 취급을 받거나, 해외 번안곡을 짜깁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창작 시스템은 부재했고, 전문 인력은 전무했다. 하지만 이 시기 숱한 실패와 실험은 훗날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 서울올림픽 전후로 대형 문화 행사를 치르며 축적된 무대 기술과 기획력은 1990년대 중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5년 에이콤이 제작한 ‘명성황후’ 등장은 한국 창작 뮤지컬도 ‘산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신호탄이었다. 화려한 무대 메커니즘과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웅장한 음악은 대중을 사로잡았고, 1997년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며 한국 창작진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는 서구 뮤지컬의 단순한 소비국에서 생산국으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2000년대 초반, ‘오페라의 유령’ 등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한국 상륙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일각에서는 거대 자본을 앞세운 해외 작품이 토종 창작물을 고사시킬 것이라 우려했으나, 한국 창작진은 오히려 이를 ‘학습’의 기회로 삼았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2000년대는 한국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선진 제작 시스템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시기”라며 “이때 습득한 노하우가 2010년대 창작 뮤지컬 폭발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EMK뮤지컬컴퍼니

실제로 2010년대 이후 한국 뮤지컬은 ‘프랑켄슈타인’ ‘마타하리’ ‘영웅’ 등 라이선스 작품에 뒤지지 않는 대형 창작 블록버스터를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성과는 ‘소재의 확장’과 ‘보편성의 획득’이었다. 초기의 강박적이었던 ‘한국적 소재’(전통, 역사)에서 벗어나 서양 고전, 웹툰, 영화 등 다양한 원천 소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한국 관객 특유의 감정선인 ‘한(恨)’과 격정적인 드라마를 세련되게 녹여내는 한국식 문법을 완성했다.

업계에서 평가하는 지난 60년의 창작 뮤지컬 산업은 맨땅에 헤딩하듯 길을 내온 ‘뚝심’의 역사였다. 서구의 형식을 빌려왔으되, 그 안을 채우는 정서와 제작 방식은 완전히 한국화된 독자적인 장르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한국뮤지컬 60주년 및 DIMF 20주년 기념 정책간담회’에서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역시 한국 뮤지컬의 질적 도약이 이뤄진 결정적 분기점으로 2014년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등장을 꼽았다.

최승연 평론가는 “과거의 창작 뮤지컬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강박에 갇혀 전통과 고전의 현대화에만 매몰되었다면, ‘프랑켄슈타인’ 이후의 K-뮤지컬은 서구적이고 보편적인 서사를 한국 특유의 강렬한 음악과 기획 모델로 풀어내는 ‘보편성에 대한 지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공연 제작사 관계자 역시 “한국 뮤지컬 60년사는 단순한 장르의 수용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문화적 저력을 증명하는 투쟁기”라며 “이제 한국 뮤지컬은 누군가의 것을 흉내 내던 시기를 지나, 스스로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대극장뿐만 아니라 중소극장 스테디셀러까지 견고한 팬덤을 구축하면서 한국 뮤지컬만의 독특한 토착화 모델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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