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다 [김구철의 소프트파워 외교]
튀르크의 압제와 변방 콤플렉스
냉전 체제와 러시아인의 충족된 자존심
또다시 변방 콤플렉스

러시아의 팽창주의와 변방 콤플렉스
많은 사람이 러시아가 왜 그리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러시아의 뿌리니 부동항이니 지하자원이니 비옥한 흑토지대니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알짜 크림반도를 점령했으면 충분할 텐데, 어마어마한 지하자원이 매장된 그 광활한 영토를 보유한 러시아인이 왜 그 좁은 땅덩어리에 목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알래스카를 통째로 미국에 넘긴 러시아가 왜 체첸, 조지아, 우크라이나 같은 좁은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프간 10년 전쟁으로 사실상 패배한 것은 공산권 시절의 일이라 치부하자.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고립을 무릅쓰고 시대착오적인 팽창주의, 정복주의를 고집하는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다. 러시아인들의 ‘변방 콤플렉스’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몽골의 240년 지배와 변방 콤플렉스
1240년 칭기즈칸의 장손자 바투 칸이 칭기즈칸의 4마리 맹견 수부타이와 함께 키이우를 함락시켰다. 그로부터 240년이 지난 1480년이 되어서야 러시아는 몽골에서 독립했다. 그러고도 100년이 지나 16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이반 뇌제(이반 4세, 1547~1584)가 등장해 영토를 확장하면서 대제국의 기틀을 놓았다. 또 100년이 지나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1682~1725)는 강력한 서구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러시아가 ‘국력 신장’과 ‘영토 확장’을 못한다면 영원히 ‘유럽의 변방’으로 남을 것이다.” 그랬다. 러시아가 변방에서 벗어나는 길은, 국력 신장과 함께 영토 확장이었다.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의 전쟁에 승리해 발트해 출구를 확보하고, 해군을 창설하고 신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다시 100년, 18세기 말 프로이센 출신 여성, 예카테리나 여제(1762~1792)가 즉위했다. 러시아는 강대국 오스만 튀르크,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고 폴란드 분할에 참여해 영토를 확장하고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크림반도에 천혜의 군항 세바스토폴 건설을 맡기고, 흑해의 제해권을 확보했다. 농업 생산, 무역, 조세 수입이 3배로 늘어났고, 학문과 예술, 문화의 눈부신 부흥과 발전으로 르네상스를 맞았다. 러시아는 서유럽이 16세기에 완성한 르네상스, 종교개혁을 300년 걸쳐 18세기 말에야 완수하고, 변방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서 여제는 ‘대제(大帝)’라 불린다.
튀르크의 압제와 변방 콤플렉스
몽골의 지배가 깊은 상흔을 남겼다지만,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고 잔재를 벗는 데에도 주변국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튀르키예와 페르샤, 중동 지방은 실크로드가 지나는 동서 교역의 길목에 위치해 선진 문명을 받아들일 기회가 많았다. 특히 튀르키예는 이미 14세기에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15세기에는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의 중심 빈을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비옥한 우크라이나 지역을 점령하고 흑해와 동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19세기, 영국이 세계 패권국가로 등장해 러시아의 남방 진출을 봉쇄하기 이전, 근 400년 동안 러시아를 가장 위협한 국가는 튀르키예였다. 러시아는 서구화는커녕 동방 이슬람 전제국가에도 뒤진 나라였다.
예카테리나 여제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폴레옹 시절 서유럽 리그에 낀 것도 잠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서유럽 국가들은 다시 러시아를 소외시켰다. 20세기 초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는 영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에 패배했다. 러시아는 후발산업국 노란 원숭이에 패배한 나라였다. 직후 발생한 볼셰비키 혁명은 러시아를 다시 서유럽의 경계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러시아는 산업혁명은 완수하지 못하고 공산 혁명을 맞은 나라였다. 2차 대전 때는 독일군은 영국, 프랑스 포로는 인간적으로 대우했지만, 소련(러시아) 포로는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러시아인은 히틀러의 말마따나 ‘열등한 슬라브 인종’이었다. 이래저래 예카테리나 여제 때 잠깐 잊었던 러시아인의 변방 콤플렉스가 되살아났다.
냉전 체제와 러시아인의 충족된 자존심
20세기 중반, 러시아인의 오랜 변방 콤플렉스에 특효약이 나왔다. 냉전 체제였다. 러시아는 공산권의 종주국으로서 막강한 지위를 누렸다. 현재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중국도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러시아는 핵과 미사일 등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세계 양대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공산권 전체는 러시아에 의존했다. 러시아는 공산권 국가에 이념적 틀을 제공했고, 체제의 모범을 보였다. 공산주의 이론은 맑스=레닌주의라 불렸다. 서구 사상사에서 러시아가 무슨 ‘주의’ ism을 창시한 적이 있었던가?
러시아는 달러도 석유도 없고 식량도 자급 못 하는 공산권 국가들에 생산 원가로 모든 것을 공급했다. 서구의 다국적 자본이 중동 유전을 장악한 상황에서 러시아 남부의 석유는 공산권에서 거의 유일한 에너지원이었다. 러시아는 공산권 전체에 식량과 에너지, 공산품을 공급했다. 공산권에서 모든 길은 모스크바로 통했다. 1960년대 초 쿠바 사태는 러시아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세계 최강, 서구 문화의 중심인 미국의 뒤꼭지 쿠바에 러시아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대담한 발상은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막강한 러시아’, 러시아는 완전히 변방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또다시 변방 콤플렉스, 전쟁 하나 끝나도 다음 전쟁 찾을 것
승승장구하던 러시아의 행보가 꼬인 것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쓴맛을 봤듯이 러시아는 1980년대 아프간에서 10년 전쟁을 치르며 좌절을 맛봤다. 그리고 1990년대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러시아는 다시 허약한 변방 국가로 전락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옐친 대통령이 대표 상징이었다. 변방 콤플렉스가 깊을수록 러시아인은 강한 러시아, 강한 지도자를 열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1세기 러시아인에게는 변방 콤플렉스를 치유할 특효약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세계인이 러시아의 존재를 알아나 줄까? 변방의 콤플렉스, 변방국만의 불안에 비롯된 확장주의 때문에 러시아,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포기할 수 없다. 설령 러시아가 상당한 대가를 얻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더라도, 러시아인, 푸틴은 무언가 다음 대상을 찾을 것이다. 그게 어디일까?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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