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심호흡하세요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 한 가지 재밌는 실험을 했다. 연구자들은 신학생들에게 설교 준비를 요청한 뒤 옆 건물로 이동하도록 했다. 이때 신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다른 쪽에는 “천천히 와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각 신학생이 이동하는 길에 쓰러진 척하는 연기자를 마주치게끔 했다. 연구의 목적은 누군가를 돕는 행동이 신앙의 깊이에 달려 있는지, 아니면 분주함의 정도에 좌우되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쓰러진 이를 도운 건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안내받은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급히 이동해야 한다고 들은 학생들은 대부분 쓰러진 사람을 그냥 지나쳤다. 심지어 그들이 준비하던 설교의 주제가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였음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건 때론 신앙의 깊이보다 그가 얼마나 분주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이야기를 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실험 속 신학생들과 비슷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됐다. 일정에 쫓겨 바삐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러 가는 길. 계단 아래쪽 멀리서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를 보게 됐다. 순간 걸음을 재촉하던 차였기에 모른 척 지나쳐도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내 찰나일지라도 망설였던 자신을 자책하며 손을 내밀려 했지만 이미 한 군인이 먼저 손을 내민 뒤였다.
2026년 새해가 밝았다며 인사를 건넨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달력이 두 장을 넘어가고 있다. 혹자는 올 한 해 기필코 성경 일독을 해보겠노라고 다짐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주기적으로 운동해 보겠노라고 결심했을 것이다. 교회도 조직을 새로이 개편하거나 선교, 봉사, 제자훈련 등 각양각색의 사역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했을 법하다. 본격적인 사역의 시작을 앞두고 신발 끈을 다시 조이고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두 달이나 훌쩍 지나버린 세월에 많은 이들이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앞선 신학생들의 모습을 돌아본다. 사역을 계획하고 시작하는 과정의 분주함에 빠져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본다. 때론 우린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운다. 교회 역시 사역이 매년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겠다. 여러 개 세워야 그중 한두 가지라도 지키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혹은 어느 하나도 불필요한 사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겠다. 하지만 우리가 앞선 신학생처럼 사역의 분주함에 빠져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못 보고 지나친다면, 아니 보고도 모른 척한다면 과연 그 사역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길 꿈꾸고 또 그런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소명을 지닌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사역의 성과나 진행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아닐까.
동성애 공산화 물결이 사회를 뒤덮는다며 조급해 마시라. 성경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말씀한다. 사이비·이단 교주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바로 지옥 가지 않는다. 조급해 말고 다시 한번 더 성경을 제대로 보시라. 지금 맡은 그 사역이 어느새 기쁨이 아닌 일이 돼버리지 않았는가 돌아보시라. 사역 성과보다 중요한 건 주변에 외로이 홀로 지쳐 쓰러져 가는 교인, 가족,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게 먼저다.
일흔의 나이로 은퇴한 벤이 30세의 젊은 ‘워킹맘’ 줄스가 운영하는 회사에 재취업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미국영화 ‘인턴’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심호흡하세요.” 어느새 멘토가 된 벤을 어김없이 바삐 찾은 줄스에게 공원에서 체조하던 벤이 해주던 말이다. 지금 이 시점, 한국교회에는 그 말이 필요하다. “잠시 멈추고 심호흡하세요.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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