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할 수 없는 일 찾아… 장례지도사 선택한 젊은이들
왜 굳이 장례지도사 하느냐고?
“안 될 이유는 뭐냐” 직업 귀천 없어
자격증 발급 건수 4년새 85% 증가

“한지 두 장을 잡고 가로로 반을 접으세요. 고인에게 쓰일 한지가 울면 안 되겠죠? 다림질하듯 정성스럽게 펴주세요.”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엔딩라이프장례지도사교육원. 검은 정장을 입은 안유솔(21)씨가 서툰 손길로 흰색 한지를 접고 있었다.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염습에 필요한 ‘지옷’. 지옷은 고인의 시신을 닦은 뒤 수의를 입히기 전, 고인의 몸을 감싸는 한지로 만든 옷이다. 안씨를 비롯한 수강생 4명은 가로 약 90㎝, 세로 44.5㎝ 크기의 한지를 오리거나 접어 하대(기저귀), 뒷판, 상판, 다리싸개, 발싸개 등을 만든 뒤 이를 마네킹에 입혔다. 눈·코·입조차 없는 실습용 마네킹이었지만 수업은 실제 고인을 대하듯 엄숙하게 이뤄졌다. 안씨는 ‘고인의 신체 위로 가위를 주고받지 않는다’ ‘고인을 모실 때는 항상 손바닥으로 감싸듯 조심스럽게 들어야 한다’ 같은 조언들을 되새기면서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수업 현장을 찾은 것은 장례지도사를 꿈꾸는 MZ세대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장례지도사는 청년들이 꺼리는 직업이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려는 청년은 갈수록 늘고 있다.
MZ세대는 AI 탓에 좁아지는 취업문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안씨만 하더라도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을 때 생성형 AI가 전문가 수준의 이미지를 빠르게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앞날이 막막해지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동기들도 AI 때문에 불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안씨는 결국 1학년을 마친 뒤 휴학했다. 이후 1년간 봉사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하며 남을 도울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TV 프로그램을 통해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알게 된 뒤 곧바로 관련 학원을 찾게 됐다.
안씨와 함께 수업을 듣는 윤혜진(31)씨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이 숭고하게 느껴져 장례지도사에 도전하게 된 케이스였다. 그는 ‘왜 굳이 장례지도사를 하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안 될 이유는 또 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장례지도사를 향한 시선이 달라진 것도 인기를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다. 21년차인 이종행(59) 장례지도사는 “예전엔 이 일을 좋게 보지 않는 사람이 많았지 요즘은 아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이런 분위기는 관련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가공인 장례지도사 자격증 발급 건수는 2020년 1602건에서 2024년 2967건으로 4년 새 85%나 급증했다.
이 지도사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직업의 귀천을 크게 따지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이제는 장례지도사를 기피 직업이라기보다 안정적인 직업으로 보는 시선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한 이야기는 MZ세대 장례지도사가 늘면서 생긴 장례 현장의 변화였다. 가령 젊은 지도사들은 고인이 생전에 좋아한 음식을 중심으로 차례상을 차리거나, 유가족을 상대로 고인에게 보낼 편지를 ‘롤링페이퍼’ 형태로 돌아가면서 쓰게 한 뒤 이 종이를 고인과 함께 입관하는 일을 벌이곤 한다.
이 지도사는 “기성 세대는 배운 방식대로 장례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지도사들은 스스로 고민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연공편향 기술변화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고용 감소 폭이 컸다. 2022년 하반기 이후 3년간 줄어든 청년 일자리는 21만1000개였는데, 이 중 20만8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례지도사는 AI가 침범하기 어려운 일자리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유가족의 감정을 읽고, 적절한 말과 침묵을 고르고, 지역·종교·가풍 등 문화적 맥락을 조율하는 복합적인 대면 노동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AI 영향 분석 사이트 ‘AI 인력 보고서’는 장례보조·장례 서비스 직종의 AI 자동화 위험도를 10점 만점에 3점, 자동화 가능성은 약 15%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정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사람의 감정을 세심하게 읽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장례지도사는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장례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고인마다 다른 사후 상태 때문에라도 장례 노동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말한다. 장례지도사 이모(24)씨는 “항암 치료 등을 받으면 사망 이후 몸에서 혈액이나 체액이 흘러나오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며 “경력 20년의 사수도 ‘처음 보는 경우’라고 할 때가 있는데 이런 모든 상황을 AI가 대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임세영 엔딩라이프장례지도사교육원 원장은 “유가족이 예상보다 크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거나,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때가 있는데 장례지도사는 이런 경우 깊이 개입하진 않더라도 도움을 줄 순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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