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한 마디에 시작된 한 달 간의 공포

변은섭 2026. 2. 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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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 조직검사 후 결과를 듣기까지... 일상을 살아내며 마음 졸이던 시간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변은섭 기자]

"모양이 좋지 않네요, 조직검사를 받아보시죠."
"네? 조직검사요?"

매년 받던 정기검진에서 가슴에 위치한 미세석회 모양이 좋지 않으니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를 말을 듣고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10명 중 1명, 10%의 확률로 암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뒤따랐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쉽사리 진정이 되지는 않는다. 설마 그 1명이 나는 아니겠지? 설마, 설마... 설령 암이라도 해도 치료를 받으면 완치된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암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공포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정신이 혼미해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는데, 간호사가 하라는 대로 허둥지둥 움직이다 보니 손에는 관련 서류가 잔뜩 들려있다.
 진료의뢰서를 들고 대학병원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 AI 생성 이미지
진료의뢰서를 들고 대학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모래주머니라도 찬 듯 무겁다. 이고지고 싸간 이전 병원의 영상자료와 몇 년 치 진료기록지의 무게인지 내 마음의 무게인지, 그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내상피암, 경계성종양, 양성. 대학병원의 의사는 조직검사 후 나올 수 있는 세 가지의 가능성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명해주었다. 양성이면 앞으로 추적 관찰만 하면 되고, 암이나 경계성종양이면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되니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덤덤히 남기고 의사는 급히 다른 진료실로 떠났다.

'그래 심각한 암도 아니고 떼어내면 된다잖아.'

내가 나를 다독거리며, 나에게는 대단히 대수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달랬다.조직검사가 가능한지를 알아보는 검사를 받으며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지만, 조직검사가 한 달 후에야 가능하다는 말은 조직검사 비용이 200만 원이라는 말보다, 심지어 실손보험 청구가 안 된다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돈이 없으면 암 검사도 받기 힘든 세상이구나. 심지어 돈을 들여 검사를 받겠다는데도 한 달을 기다리라니, 이미 녹초가 된 마음이 한 번 더 너덜너덜해진다. 한 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무엇을 해야 그 시간을 온전히 흘려보낼 수 있을까?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처음에는 내가 받아야하는 검사가 무엇인지, 저 세 가지의 경우의 수는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은 검사나 결과가 어땠는지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몰두하다 곧 깨달았다. 이걸 계속 찾아보다가는 한 달이 되기 전에 우울증 먼저 걸리고 말 거라고.

검사를 앞두고 있으니 하나하나가 예민해지면서 모든 것에 의심을 품게 된다.

더 큰 병원에, 더 유명한 의사를 찾아갔어야 되는 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만약을 대비해 여러 병원에 미리 예약을 잡아놨다는데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 조직검사가 힘들었다는 후기를 보니, 청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병원에 동행하겠다는 언니에게 '고작 조직검사 받는데 웬 동행이냐'며 혼자 다녀오겠다고 한 게 괜한 오기는 아니었을까?

하루에도 마음이 열두 번씩 오락가락한다. 마음의 평화와 정신건강을 위해 인터넷 검색 따위는 집어치워야겠다. 그래도 암일 경우 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암보험이 있던가? 생전 관심 없던 보험약관을 뒤지다 내상피암 보험료가 고작 300만 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조용히 약관을 덮는다. '그래 암이 아닌 게 제일 좋지. 암이 아님 삼백이든 삼천이든 무슨 상관이람.' 갑자기 긍정마인드를 최대한 가동한다.

회사에도 휴직을 내고 쉬어야 될 텐데 휴직이 얼마나 가능하지? 진단서는 2주로 나온다던데 더 길게 휴직이 가능할는지, 휴직을 하면 본가로 내려가 있어야 될지, 마음이 몹시 심란하다. 하지만 심란함을 불러일으키는 오만 가지 일 중에 가장 심란한 일은 '만약 암일 경우, 엄마아빠께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이다.

조직검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안달복달할 부모님이 눈에 선해 검사는 비밀에 부쳤지만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애달파 할 부모님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안 그래도 걱정을 사서 하시는 스타일인데 부모님 건강이라도 상하게 되는 건 아닌지, 잠도 못 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엄마아빠가 눈앞에 그려지니 벌써 마음이 무너진다.

이제 생각은 그만! 검사와 관련된 생각을 떨쳐내고 일상다반사를 살아내야 한다. 오히려 바쁘게 일을 하고, 책을 읽고, 쇼츠를 보며 일상에 빈틈을 내주지 않았다. 빈틈에는 어김없이 잡념이 따라오니 여지를 주지 않으려 부단히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굴렸다.

마음을 다잡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결과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암이 아니면 너무 다행인 거고, 암이면 열심히 치료받고 완치하면 되는 거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춰 행동하면 된다. 잠깐의 기쁨이나 절망의 호들갑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그 이후의 삶을 내 인생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뭐 까짓 거 어쩌겠나, 그냥 부딪치는 거지.

조직검사 마치고 또 일주일을 기다린 후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지난한 기다림 끝에 받은 결과는 양성이다. 씩씩한 척 했지만 전혀 씩씩하지 못한 채, 마음을 졸이며 혼자 병원을 왔다 갔다 한 나에게 조용히 위로를 건넸다.

'고생했어,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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