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에게 배울 건 이기는 법이 아니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수(隋)나라의 백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살수대첩에서 적을 섬멸하고 고구려를 지킨 장군이 바로 을지문덕(乙支文德)이다. 이 을지문덕 장군이 남긴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그대의 귀신 같은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 꿰뚫었고
신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통달했도다.
전쟁에 이겨 쌓은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마치 패배한 적을 놀리는 듯한 의미다. 그런데 을지문덕 장군은 전쟁의 승패가 나기 전에 직접 수나라 적진을 방문해 적의 상황을 파악했다. 수나라군에게 고구려 총사령관인 을지문덕 장군이 직접 항복하겠다고 하면서 방문했다. 그러면서 적의 군량미나 적군의 사기를 직접 관찰하고 돌아와서 전략을 세워 승리했다.
이때 수나라 장군 중 항복하러 온 을지문덕을 다시 돌려보내지 말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유사룡(劉士龍)이라는 장군이 항복하러 온 적장을 억류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적극 주장해 을지문덕은 풀려났다. 이렇게 을지문덕 장군을 풀어주라고 주장했던 유사룡은 살수대첩에서 패배한 후 수양제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마도 을지문덕의 항복을 순진하게 믿고 풀어준 죄를 물었을 것이다. 이런 스토리를 알고 다시 읽어보면 을지문덕의 시는 얄미운 측면이 있다.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東明聖王), 즉 주몽(朱蒙)의 행동에도 당황스러운 점이 있다.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柳花)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남성과 사이에서 주몽을 낳아 아버지에게 내침을 당한 데다 아이 아버지도 떠나버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유화와 주몽을 거둬준 사람이 부여국의 금와왕(金蛙王)이었다.
금와왕은 주몽이 크자 마구간의 말을 키우는 책임을 맡겼다. 여기서 주몽이 아주 맹랑한 짓을 하는데 금와왕 마구간에서 가장 우수한 말들을 골라 혀에 바늘을 꽂았다. 당연히 혀가 불편한 말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위어 갔다. 제대로 발육하지 못하는 말은 전쟁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금와왕이 정기적으로 버리고 있었는데 혀에 바늘이 박힌 말들도 이렇게 버림을 받게 됐다. 주몽은 그 버려진 말들을 거둬 혀의 바늘을 빼고 다시 잘 키워 자신의 말로 만들었다. 배은망덕하기 그지없다.
부여에서는 자신이 출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몽은 부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卒本)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었던 연타발(延陀勃)의 밑으로 들어간다. 이때 연타발에게는 과부가 된 딸인 소서노(召西奴)가 있었는데 연타발은 능력 있는 부하인 주몽을 소서노와 결혼시킨다. 아마 연타발에게는 아들이 없었던 모양인지 연타발이 사망하자 사위인 주몽이 졸본의 왕이 됐다.
주몽과 결혼하기 전 소서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으니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다. 연타발과 소서노는 일단 주몽이 나라를 다스리지만 주몽이 죽으면 연타발의 외손자인 비류와 온조가 졸본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몽이 연타발과 소서노에게 숨긴 사실이 있었는데 주몽은 부여를 떠나 졸본으로 오기 전 이미 결혼을 했으며 유리명왕(瑠璃明王)이라는 친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졸본의 왕이 된 주몽은 부여에 연락을 해 자신의 아들인 유리명왕을 데려와 비류와 온조를 제치고 왕위 계승자로 삼는다. 들어온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고 집을 차지하는 격인 이런 주몽의 행동에 실망한 소서노와 두 아들은 졸본을 떠나 남쪽의 한강 유역에 도달해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형인 비류가 인천에 세운 국가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동생인 온조가 한강 유역에 세운 나라는 백제가 된다.
주몽의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도 도덕적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파렴치한 사기범에 가깝다.
하지만 한국인 중 고구려가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임을 창피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구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삼국통일 기반을 마련한 신라 김춘추는 백제 의자왕의 침입으로부터 신라를 지켜달라고 청하러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 당시 고구려 독재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에 의해서 억류된 적이 있다.
이때 김춘추가 이용한 것이 토끼의 간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김춘추는 자신을 신라로 돌려보내주면 선덕여왕을 설득해 한강 유역을 돌려주겠다는 거짓 약속을 하고 풀려난다. 물론 김춘추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바로 당나라로 달려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신라가 돕겠다고 제안했다.
게임이론은 공명정대한 떳떳한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코 그렇지 못하다. 공명정대함만으로 성공한 사람은 현실에서 극히 드물다. 오히려 공명정대함만을 주장하다 상대방 기만에 빠져 성공에 이르지 못한 인물이 역사 속에 즐비하다. 삼국지에서 조조(曹操)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 여백사(呂伯奢)를 죽인다. 이 사건으로 조조는 후세에 많은 비난을 받지만 누가 뭐라 해도 중국에서 가장 큰 지역을 다스리는 인물로 성공한다.
삼국지에서 덕이 많고 의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유비(劉備)도 순수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오(吳)나라 손권(孫權)과 힘을 합해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다고 나오지만 실제 조조의 군대를 물리친 이는 유비가 아니라 손권이다. 따라서 적벽대전의 승자인 손권에게 형주(荊州) 땅이 돌아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손권이 조조와 싸우는 바쁜 틈을 타서 유비는 냉큼 형주 땅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손권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조련사가 받은 셈이다. 이렇게 남의 땅을 가로챈 유비는 이를 발판으로 촉(蜀)을 점령해서 왕의 자리에 오른다.
물론 상대방을 기만하고 배신하면서까지 성공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정정당당하게 사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론이 사람들에게 상대를 기만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을지문덕에게 속아 처형당한 유사룡이나 주몽에게 속아 나라를 빼앗긴 연타발, 소서노와 같은 신세는 되지 말자는 것이 게임이론의 기본이다. 남을 속이지 않더라도 남에게 속지는 말자는 취지에는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남에게 속지 않으려면 속임수에 익숙한 자들이 어떤 계략을 사용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 결국 게임이론은 상대를 기만하는 전략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게임이론을 학습하면 실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게임이론은 실전에서 어리석은 패배를 당하지 않도록 해주는 학문이다.
스포츠에는 “공격은 영광과 인기를 안겨주지만 정작 승리를 안겨주는 것은 수비다”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기만 전술에 속지 않는 수비만 잘하더라도 실제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7호·설합본호(2026.02.11~0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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