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혈증 진단 받은 쉐프의 더 넓어진 요리 세계
[박정우 기자]
본명보다 '공격수 셰프'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더 친숙한 박민혁 셰프는 늘 경계 없는 요리를 선보여 왔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SNS를 통해 한식부터 양식, 중식, 일식을 가리지 않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였고,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자취 요리부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할 법한 요리까지 넘나들며 사람들과 소통해 왔다.
미식의 정점을 쫓던 그가 최근 새롭게 천착하는 주제는 '저속노화'다. 이와 관련해 이번에 출간한 저서 <잇 슬로우, 에이지 슬로우>(Eat Slow, Age Slow)는 박민혁 셰프의 변화된, 아니 어쩌면 더 넓어진 요리 세계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저속노화와 건강, 미식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상쾌한 아침을 여는 한 그릇부터 특별한 날을 위한 일품요리, 식단 관리에 도움을 주는 메뉴, 편견을 깨는 비건 레시피,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요리까지 폭넓게 담겨 있다.
중간중간 저자의 건강 변화와 식재료를 바라보는 철학, 요리에 대한 다양한 에세이를 읽다보면 단순한 레시피 모음을 넘어 식생활의 방향성과 삶의 리듬에 대한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방법에 관한 제안에 더 가깝다.
관련하여 지난 11일 금호동의 스튜디오에서 박민혁 셰프를 만났다. 자극적인 화려함을 걷어내고 식재료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게 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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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민혁 셰프 |
| ⓒ 박정우 |
"전환점은 건강검진에서 받은 '고지혈증' 진단이었다. 사실 고지혈증이라고 하면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문득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내 아이들과 아내의 식사와 직결된다고 된다고 생각하니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이후로 나는 식재료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요리의 본질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논문과 자료를 뒤적이며 24년 경력의 요리사로서 처음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새롭게 마주한 셈이다. 그렇게 요리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유튜브와 SNS 속 콘텐츠도 변했다. 내가 경험한 이 변화가 가족을 위한 결정이었던 것처럼, 내 요리를 보는 구독자분들도 조금 더 건강한 요리를 통해 삶의 리듬을 되찾으면 좋겠다."
- 건강하게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거나 맛이 없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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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잇 슬로우, 에이지 슬로우> 표지 이미지 |
| ⓒ 시월 |
"표지만 보면 '엄청 건강한 책 같은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들 수도 있다(웃음). 하지만 <잇 슬로우, 에이지 슬로우>는 단순히 몸에 좋은 음식 레시피를 모은 책이 아니다. 너무나 빠르기만 한 흐름 속에서 남들을 의식하며 사느라 정작 자신을 찾지 못했던 분들에게, '한 템포 느리게 가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안내서다.
식사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 몸은 건강해지기 어렵다. 반대로 매일의 식사가 덜 자극적이고 균형 잡힌 '회복의 식탁'으로 바뀐다면, 삶에도 여유가 생긴다. 그렇게 몸이 가벼워지면 새로운 변화도 생길 수 있다. 안 타던 자전거를 탄다거나, 운동을 시작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음식을 넘어 건강과 미식,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의 접점을 찾아가게 된다.
또 이번 책에는 지금까지 경험한 나의 모습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미래를 에세이로 담았다. 이 에세이를 읽어보면 요리라는 행위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의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셰프님은 미식의 관점에서 저속노화 요리를 설명하는데, 인공 조미료의 감칠맛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제안하는 '진짜 맛있는 음식'의 기준은 무엇인가?
"산미를 꼽고 싶다. 많은 사람이 산미라고 하면 단순히 '신맛'만 생각하지만, 사실 산미는 음식에 생기를 불어넣고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요리의 핵심이다. 외국에 출장을 가보면 바리스타가 커피를 다루듯 귤, 레몬, 라임 등 다양한 재료로 홈메이드 식초를 만들어 파는 숍들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복합적인 산미를 경험해 보면 좋겠다. 단순히 찌릿하고 날카로운 신맛이 아니라, 발효된 식초나 신선한 허브, 감귤류의 즙 등을 활용해 '둥글둥글한 산미'를 만들어 본다거나, 괜찮은 식초를 하나 사서 드레싱에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요리의 격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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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이트 발사믹 식초과 레드 발사믹 식초 |
| ⓒ 박정우 |
"당연히 그런 고민을 했다. 예를 들면 바질은 익숙하지만 '처빌' 같은 허브는 낯선 분들이 많을 거다. 예전부터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익숙하게 쓰는 재료지만 일반인들은 구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새벽 배송 등을 통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허브를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낯설지만 간단한 조리법'을 추구한다. 그런 맥락에서 책을 통해 '어? 이 재료 바로 주문이 가능하네? 한번 써 볼까?' 하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다. 기존에 쓰지 않던 식재료가 하나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요리하는 재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식재료 하나를 바꿔보는 시도가 나의 새로운 취향을 깨닫게 되고, 그게 쌓이면 결국 삶의 건강한 리듬을 만든다."
- 결국 셰프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리듬'인 것 같다. 셰프님은 왜 '저속노화'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삶의 리듬'에 관한 문제라고 보나?
"요즘 화두가 되는 '웰니스'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건강하게 먹는 음식을 넘어 훨씬 다양하고 거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건강한 삶은 무언가를 갑자기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리듬을 다시 세팅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우리가 밥을 먹거나, 자거나, 걷거나 일할 때의 리듬이 조금만 달라져도 몸과 마음의 컨디션은 눈에 띄게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다.
저속노화는 단순히 건강하고 젊게 사는 유행이나 트렌드가 아니다. 나에게 가장 적절한 속도를 찾는 과정이다. 아침을 꼭 챙겨 먹는 습관을 들이고, 자기 전에 SNS 보는 시간을 줄이며, 같은 식재료라도 요리를 다르게 변주해 보는 작은 루틴을 만들어 보길 권하고 싶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비로소 자신만의 리듬이 만들어지고 자신만의 리듬이 잡히면 더 큰 범위에서 삶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간다. 요리 역시 그저 먹는 행위를 넘어 나를 회복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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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시피1 |
| ⓒ 박민혁 |
첫 번째는 '양배추 모닝 스테이크' 양배추를 두툼하게 썰어 노릇하게 구운 뒤, 그릭요거트와 블루베리를 얹는 메뉴인데, 섬유질과 항산화 성분을 함께 챙길 수 있고, 아침 식사로 포만감도 충분하다.
두 번째는 '라즈베리 드레싱 병아리콩 샐러드' 통조림 병아리콩과 채소를 준비해 새콤한 라즈베리 드레싱만 더하면 끝. 혈당 조절에도 좋고, 점심 도시락 메뉴로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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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시피2 |
| ⓒ 박민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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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시피3 |
| ⓒ 박민혁 |
"첫 번째는 오일을 바꿨으면 좋겠다. 익숙하게 먹던 오일 대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2종 정도 구비해보길 권한다. 가격이 합리적인 제품은 계란 프라이 등에 편하게 사용하고, 고퀄리티 제품은 생식이나 샐러드, 혹은 요리의 마지막 터치용으로 나누어 쓰면 좋다.
두 번째는 병아리콩이나 렌틸콩이다. 급격히 당을 올리는 흰쌀밥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고, 풍부한 포만감을 준다.
세 번째는 제철 채소를 챙겨 먹는 거다. 이 세 가지 조합만 잘 활용해도 건강하고 간단하며, 다양한 조리법으로 풍성한 식탁을 즐길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잇 슬로우, 에이지 슬로우>는 완벽한 변화를 요구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하루 한 끼만이라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건강하게 먹어보자는 제안이다. 나는 요리가 건강한 삶의 리듬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당신의 건강한 첫걸음이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를 돌보는 그 마음 자체가 가장 좋은 미식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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