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해서 먹는다는 수백만원짜리 명절 요리, 나는 OO을 먹었다

김용국 2026. 2. 20.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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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의 오사카 생존기] 처음 일본에서 보낸 새해와 명절

도톤보리, 글리코상, 타코야키, 유니버설스튜디오, 우메다, 난바.... 오사카,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 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 여기,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 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 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 <기자말>

[김용국 기자]

 2월 오사카에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 오사카는 겨울에도 영상의 날씨가 유지되기 때문에 이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일은 드물다.
ⓒ 김용국
일본에서 처음, 게다가 홀로 명절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명절이라고 특별한 건 없었지만, 고향을 찾아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어머니 손맛을 느끼는 행복이 있었다. 갓김치, 장어탕, 갈치조림, 양념게장...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요즘 명절은 역귀성에, 해외여행이 흔해졌지만, 20대 시절인 1990년부터 객지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명절'은 '귀성'과 동의어였다.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미화되던 시절. 만원 지하철 같은 전라선 통일호 입석을 타고 8시간 넘게 졸며 가기도 했고, 운 좋게 버스를 예매하거나 친척 차량을 얻어 탔다가 24시간 넘게 도로에서 보낸 적도 적지 않았다.

한국은 음력설에 정월(正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집안은 줄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명절이다. 일본은 어떨까. 양력을 기준으로 새해를 맞는다. 한마디로 1월 1일만 새해이다. 우리처럼 2월에 다시 덕담하면서 새해 인사를 하는 일은 없다. 일본의 정월(쇼가츠)은 양력 1월 1일로,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휴업·휴가 기간도 길다. 올해의 경우 길게는 작년 12월 27일(토요일)부터 1월 4일(일요일)까지 9일간 쉬는 곳도 상당수였다.

식당이나 상점도 이 기간에는 영업하지 않거나 며칠만 문을 연다. 그래서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된 연말 연휴 기간 식당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나마 저녁 술집은 문을 여는 곳이 많아서 맥주 한 잔과 함께 먹는 안주가 요기가 되었다.

이 무렵 한 술집에서 우연히 한국을 사랑한다는 70대 '친한파' 노인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연말연시에 먹을 곳도 마땅찮은데 우리 집에서 연휴 내내 숙식해도 된다"고 큰소리쳤다. 한국에서도 취중 약속을 믿었다가 낭패를 보았던 적이 적지 않아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다음날 전화 통화할 일이 생겨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사무적인 답변만 돌아왔을 뿐 초대한다는 말은 일절 없었다. 역시 술자리 약속은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2025년 마지막 날, 혼자 방에만 있을 수 없어서 거리로 나왔다. 어느 술집에서 파는 해넘이소바를 시켰다. 소바처럼 길게 장수하라거나, 한해의 액운을 끊어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 김용국
일본인들이 연말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이 해넘이국수(토시코시소바)이다. 한해를 마치면서 메밀국수 면발처럼 액운은 잘 끊어지고 명은 길어지기를 바라면서 먹는다고 한다. 2025년 마지막 밤, 혼자서 마냥 방에만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 어느 술집에서 파는 해넘이국수가 맛있게 보였다. 그날만 특별히 파는 메뉴라고 했다. 자정이 다가올 무렵, 맥주 한 잔과 함께 면발을 삼키며 2025년과 작별했다. 1년간 잘 살아온 나를 대견해하며, 다가올 1년의 무탈을 기원하며.

일본 가정에서는 설날 음식(오세치요리)을 먹는다. 해산물, 고기, 야채 등 갖가지 음식을 찬합에 담아서 층을 쌓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에서도 만들어 먹지만 백화점이나 상점에서도 명절 특수를 노리는 시기다. 고급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몇 달 전부터 예약 주문을 받는다. 우리 돈으로 수십만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새해 맞는 일본의 풍습
 일본 곳곳에서는 새해 아침에 신사에서 소원을 비는 행렬을 볼 수 있다. 2026년 1월 1일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의 하라다신사의 오전 풍경이다.
ⓒ 김용국
새해 첫날 우연히 도요나카시의 작은 신사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광경을 발견했다. 신사 입구에서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참배하기 위해 기다리는 인파였다. 신사 본당 앞까지 가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릴 듯했다. 일본인들은 새해가 되면 신사에 절을 하고 소원을 빌면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신사에 걸린 나무패(에마)를 보니 가족 행복, 건강, 취업, 합격, 결혼, 연애, 순산, 안전운전, 사업번창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새해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신사도 예외는 아니다. 술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한 번화가인 우메다에 츠유노텐신사가 있다. 오사카에서 가장 강한 애정운을 자랑하는 신사이다.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나. 그래선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새해 사랑을 이루고자 줄을 선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2026년 1월 오사카 우메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츠유노텐신사에서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이 곳은 인연, 애정운을 자랑하는 신사로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 김용국
또한, 일본에서는 입춘 전날(올해는 2월 3일)을 세츠분이라고 하여 봄을 맞는 중요한 날로 여긴다. 콩을 뿌려 도깨비를 좇는 풍습이 있고 큰 절이나 신사에서도 행사를 연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콩이나 도깨비 가면 상품이 많이 팔리는 시기다. 가정에서도 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에호마키'라는 굵은 김초밥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나의 연말연시는? 설날 음식은 구경도 못했다. 세츠분때 먹는 김초밥도 말만 들었을 뿐이다. 한국 컵라면과 일본 햇반으로 연명(!)했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한국 컵라면은 한국과 가격이 비슷하다. 일본 컵라면에 비해 싸다. 저렴한 가격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든든하다. 일본 시장에서 당당하게 입지를 굳힌 한국 라면 회사에 감사 인사라도 보내야 할 판이다.

쓸 일 없을 줄 알았던 일본 의료보험
 오사카 도요나카시의 한 진료센터. 이날은 휴일이라서 병원이 한산하다. 내과 진료를 주로 담당하는 병원이고 진료실만 3곳 이상이 있었다.
ⓒ 김용국
한국 명절을 앞둔 2월 중순 갑자기 몸이 탈이 났다. 오한에 몸살 기운이 있었다. 어지럽고 소화도 되지 않았다. 약국에 갔더니 갈근탕과 영양제만 준다. 증상은 더 심해져 갔다. 이틀을 참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병원을 찾아보았다. 하필 그날이 휴일(건국기념일)이었으나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문을 연 병원이 있었다.

진료실이 3곳이고 입원실도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병원이었다. 간호사에게 증상을 얘기하니 마스크 착용을 권하면서 대뜸 코로나 검사부터 받으란다. 최근 도요나카 시청에서 코로나, 독감 주의를 당부하는 통지를 받은 적이 있긴 했으나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일본 코로나 검사 비용이 수십만 원이나 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간호사에게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저, 열도 없고 코로나는 아닌 것 같은데 검사받을 필요가..."
"받아야 합니다. 검사 후에 진료실로 오세요."

한국에서도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지내왔는데, 2026년 일본에서 무슨 검사를 또 받으라는 건지. 불만을 가져봐야 별도리가 없었다. 나만 더 힘들어질 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부에 마련된 코로나 검사실 앞에 서 있자니 5~6년 전 코로나 팬데믹 시기가 떠올랐다.

별도 장소에서 대기하다가 코로나 검사를 받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와서 마스크를 쓰고 진료받는 방식은 5년 전 한국의 병원 풍경을 보는 듯했다. 일본은 병원에서 환자는 물론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드디어 진료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코로나는 음성이고 필요하면 추가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추가 검사는 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며칠이 지나도 호전이 되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의 약국의 모습. 이 곳은 일반 약은 판매하지 않고 병원의 처방전만을 전문으로 조제하는 곳이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어서인지 약제비는 그리 비싼 수준은 아니었다.
ⓒ 김용국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현실적인 고민이 다가왔다. 휴일 진료에, 코로나 검사까지 마쳤으니 도대체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 것인가. 일본 병원비가 비싸다던데 혹시 카드 한도액이 초과하지는 않을까. 몸이 성한 게 돈을 버는 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절감하며,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의 심정으로 원무과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김 사마!' 직원이 나를 부른다. 창구로 갔더니 처방전과 함께 청구서를 내민다. 청구서의 금액은 2450엔(2만 3000원). 혹시 0이 하나 빠졌는지 다시 확인해 본다. 틀림없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카드를 건넸다. 근처 약국에서 처방전으로 조제한 약까지 포함해서 병원비로 3000엔(2만 8000원) 조금 넘게 나왔다.

작년 말 오사카에 전입신고를 하면서 의료보험도 의무적으로 가입했다. 이 경우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은 30%다. 만일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내과 진료비용으로 10만 원 정도가 청구되었을 것이다. 한 번도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일본 의료보험이 지출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간절한 어머니의 손맛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 상당히 많은 가게가 밀집되어 있다. 오전 이른 시각이라 한산하지만, 낮이나 주말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 김용국
고향 친구가 안부 연락을 해와서 몸 상태를 얘기했더니 대뜸 "너 향수병 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일본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향수병이야. 그리고 내가 나이가 몇인데?"라고 반박했지만, 요즘 뭔가 허전한 건 사실이다.

병원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즉석 닭죽을 하나 샀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보니 상상하던 맛이 아니다. 한국과 다르다. 달고 짜다. 그냥 흰죽을 먹을 걸 그랬나.

해마다 설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떡국이 생각난다. 계란과 대파, 생굴을 잔뜩 넣고 끓인 뒤 쫄깃쫄깃한 떡을 투하하고 고명을 얹어 먹던 떡국. 무김치를 얹어 한 입 먹으면 지상 천국이 따로 없다. 벌써 입에 군침이 돈다.
▲ 오사카에서 구입한 떡국 재료 설 연휴에 떡국이 먹고 싶어서 몇 가지 재료를 사서 직접 끓어보았다. 직접 끓여보았지만 맛은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아니다. 그래도 컵라면 대신 떡국으로 명절 기분을 낼 수 있어서 만족한다.
ⓒ 김용국
설 연휴에 떡국을 먹고 싶어 처음으로 오사카 코리아타운(오사카시 이쿠노구 소재)에 가서 몇 가지 재료를 사와 떡국을 직접 끓어보았다. 맛은? 대참사다.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도 컵라면 대신 떡국으로 명절 기분을 낼 수 있어서 만족한다. 내년에는 어머니 손맛을 기대해야겠다.

노모의 건강보다 제 입의 즐거움을 먼저 떠올리는 천박함이라니. 철들려면 아직 멀었구나. 작년 추석에 어머니를 뵌 것이 마지막이니 벌써 반년도 넘었다. 올해도 건강하시길.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건 아마도 오랜만에 오사카에 찾아온 폭설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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