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잊었다…그런 날 믿었다

쇼트트랙을 얼마나 사랑했길래, 그 지독한 짝사랑을 14년이나 버텨냈을까.
최민정·김길리·노도희·심석희가 나선 한국 대표팀은 19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4분04초014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 결승에는 네 명이 나섰지만, 시상대엔 다섯 명이 올랐다. 준결승에서 모든 걸 쏟아부었던 이소연(33)도 함께 메달을 받았다.
동생들은 대표팀 맏언니를 위한 특별한 세리머니를 준비했다. 코리아가 소개될 때 대열 가운데 서 있던 이소연이 가장 먼저 시상대에 펄쩍 뛰어올랐고, 나머지 선수들은 두 손을 들어 예우했다. 김길리는 “다 같이 맏언니를 돋보이게 해주자고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니가 먼저 올라간 뒤에 따라 올라가자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소연은 “고맙게도 동생들이 이런 자리를 준비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이소연은 전형적인 늦게 핀 꽃이다. 2012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다시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4년이 걸렸다. 대표팀은 보통 8위까지 선발해 선수촌에서 합숙을 한다. 그러나 이소연은 늘 9~10위 정도에 머무르는 경계선 위의 선수였다. 2016~17시즌엔 대표팀 결원이 발생해 월드컵에 나가긴 했지만, 선수촌 입성까지는 허락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 선발전에서는 네 번 다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많았지만 꾹꾹 참았다. 쉬는 날도 잊고 개인 훈련에 매진했다. 덕분에 30대가 된 뒤에도 여전한 기량을 유지했다. 2023~24시즌 선발전에서 5위를 차지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선수촌 밥을 먹었다. 한 번 벽을 깨니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줄곧 태극마크를 지켜내며 9등 선수라는 딱지도 뗐다.
이소연은 신장 1m60㎝의 단신이지만 순발력이 뛰어나다. 국내 선수들이 약한 단거리 500m에서 특히 강점을 드러냈다. 지난해 하얼빈 아시안게임에서도 500m 동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밀라노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25~26시즌 선발전에선 당당히 3위에 올랐다. 최민정이 세계선수권 성적으로 우선 선발돼 세 명에게 주어지는 개인전 출전권은 아깝게 놓쳤지만, 단체전 멤버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8세에 소치 올림픽에 처음 나선 조해리를 넘어 여자 선수 역대 최고령 올림픽 출전 기록도 세웠다. 대표팀 막내 임종언(18)과는 무려 15살 차이다. 이소연이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 동료였던 선배 김민정(41)이 코치로 밀라노에 왔다. 강산이 한 번 반 변할 만큼의 긴 시간이 흘렀다.
어렵게 나선 올림픽이지만 기회는 많지 않았다. 선발전 2위 노도희의 양보로 500m 경기에 나섰으나 준준결승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하지만 묵묵히 기다린 이소연은 준결승 경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상대 선수들의 추월 시도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며 심석희에게 연결했다. 자칫 3위로 밀려날 뻔한 위기에서 안쪽을 사수한 맏언니의 투혼 덕에 한국은 조 1위로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결승에서 두 손 모아 동료들을 응원한 이소연에게 마침내 금메달이 돌아왔다.
이소연은 “도희가 미리 500m 출전을 양보해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며 “오랜 시간 기다려온 무대라 정말 꿈만 같다. 결승을 보면서 목이 터지라 응원했는데 동생들이 너무 멋지게 잘 해줘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오랫동안 함께 해서 정도 많이 들었다. 후배들이 잘 따라줬고 서로 믿고 의지해 더 남다른 느낌”이라는 그의 눈시울은 다시 한번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14년을 돌아온 밀라노, 이소연은 마침내 그 길고 서러웠던 짝사랑을 이뤘다.
밀라노=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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