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비행기 타고 세 번 간 나라

박솔희 2026. 2. 1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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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대만 가오슝 여행기]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 친절한 사람들

[박솔희 기자]

타이페이가 서울이라면, 가오슝은 부산

온화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다채로운 음식과 문화, 시민의식 높고 친절한 사람들에 반해 대만에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다. 세 번째 대만여행은 대만의 부산, 가오슝으로 떠나기로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 출발하는 제주-가오슝 직항 노선이 생긴 이후로 벼르고 있던 여정이다.

숙소는 아이허 강변의 에어비앤비로 정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니 20여분 만에 도착했다. 가오슝은 도시 규모가 아담하고 공항과 도심이 가깝다. MRT 전철과 경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도 잘 갖춰져 있어 이동이 편리하다.
 가오슝 도심을 가로지르는 아이허 강
ⓒ 박솔희
호스트를 만나 숙소에 체크인 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유명한 식당이 도보 20분 거리에 있어, 주변 구경도 할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사랑의 강'이라는 이름의 아이허(愛河) 강을 따라 걸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이 있다는 건, 그 도시의 시민들에게 축복이다. 강변을 따라 보행로와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고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항원우육면'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식당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오후 두 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맛집은 맛집인 모양이다. 주말을 맞아 외식 나온 현지인이 대부분이고 우리 같은 여행자들도 섞여 있었다. 국숫집이니 테이블 회전이 빠르겠지 기대하며 일단 줄을 섰다.

여섯살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 앞에 있던 대만 아저씨가 아이를 가리키며 먼저 앉으라며 순서를 양보해주었다. 아! 이런 자연스러운 친절에 반해 자꾸만 대만을 찾게 되는 거다. 나중에 식당 밖에서 또 아저씨 부부를 마주쳤는데, 아까 고마웠다고 표현하니 '웰컴투 타이완'이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결코 과하지 않은 대만식 친절, 일상에 밴 습관 같은 배려가 참 좋다.
 유명 맛집인 '항원우육면' 집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 박솔희
자연스러운 대만식 친절, '웰컴투 타이완'

우육면을 기분 좋고 맛나게 먹고 수변공원까지 걸어갔다. 대만은 차의 나라. 한국에 수많은 테이크아웃 커피숍이 있는 것처럼 대만에는 테이크아웃 티숍이 많고 대만 사람들은 차와 밀크티를 즐겨 마신다. 눈에 띄는 가게에서 홍차 베이스의 밀크티 그리고 아이를 위한 카페인 없는 밀크티를 샀다.

가오슝에서 시도한 첫 밀크티는? 밍밍했다! 한국에서 접해본 밀크티는 대개 우유와 시럽 베이스로 진한 단맛을 낸다. 대만의 밀크티는 차의 향을 살리면서 단맛을 조절하는 방식이라 상대적으로 밍밍하게 느껴졌다. 가오슝에서 나흘 동안 마셔본 밀크티 대부분이 그랬다. 우리에게 익숙한, 진하고 달콤한 밀크티는 '싱파커' 즉 스타벅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오슝 아이허 강변에서 열리는 주말 마켓
ⓒ 박솔희
수변공원에 갔더니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각종 먹거리를 파는 푸드트럭과 수공예품, 옷 등을 파는 매대가 늘어서 있었고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현지인들로 붐볐다. 붕어빵을 파는 노점도 있었다. 아이가 코코아 크림 붕어빵을 먹겠다고 해서 70대만달러(한화 약 3천원)를 주고 하나 샀다. 해외 여행을 왔으니 현지의 특색 있는 먹거리를 접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지만, 여섯살 아이와의 여행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구경하며 걷다 보니 풍선 아티스트가 공연을 하는 광장에 도착했다. 기다란 풍선으로 동물을 비롯해 온갖 모양을 만들고 관객들에게 나눠 주는 공연이었다. 공연 중간중간 음악이 나오는데 '아파트'와 '강남스타일'도 플레이되었다. 짧은 공연에서 총 네다섯 곡이 나왔는데 그 중 두 곡이 한국 노래였고, 광장에 모인 모든 대만 사람들이 '아파트 아파트'를 연호하며 호응했다.

K-컬처의 영향력을 실감한 대만 여행

아닌 게 아니라 정말이지 K-컬처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대만 여행 중 가장 자주 간 곳은 단연 숙소 근처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이었는데 한국 라면과 한국 과자, 한국 음료수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은 어렵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가장 눈에 띄는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매장 내에서는 한국 노래가 BGM으로 깔리는 수준을 넘어 한국 아이돌 가수가 한국어로 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중국어로 방송이 나오는 격이다.
 한국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만의 편의점
ⓒ 박솔희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다더니, 대만에서도 한국어의 인기를 실감했다.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챈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와 어설픈 한국어로 말을 걸기도 했다. 한창 한국어를 배우는 중에 써먹을 기회가 생겼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가오슝의 유명 쇼핑몰인 드림몰 옥상에 있는 대관람차
ⓒ 박솔희
제주도에 살아서 안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전 세계 어느 바다를 봐도 큰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치진 해수욕장에 갔지만 우리 집 앞 삼양 검은모래해변만 떠올랐다. 특별히 경치 구경을 하러 간 여행은 아니었기에,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 위주로 다녔다.

현지인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인 드림몰에서 대관람차를 탔고(제주에 없다!), 식당가에 가서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를 먹었다. 로컬 버스를 타고 야생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서우산 동물원에 갔더니 우리처럼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대만으로, 제주에서 가오슝으로 장소만 옮겼을 뿐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나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어디를 가든 아이를 예뻐해 주던 가오슝 사람들

가오슝은 따뜻하고 쾌적한 도시다. 한국에 한파가 몰아치던 시기여서, 낮에는 반팔 차림으로도 돌아다닐 수 있던 가오슝의 온화한 겨울 날씨가 더욱 반가웠다. 수도인 타이페이만큼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도시가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교통 체증도 없고, 여느 관광지에서 흔한 바가지 요금이나 새치기, 불친절도 겪지 않았다.

어린이와 함께 여행하기에도 좋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일본만 해도 실내 흡연하는 식당이 많은데 대만은 공공장소 흡연이 금지돼 있어 눈살 찌푸릴 일이 없다. 아이를 예뻐하는 문화도 있다. 3박4일 여행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아이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갈 때마다 노키즈존이 아닌지 확인해야 하고 혹여라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진땀을 빼야 하는 한국과는 달랐다.
 아이허 강에서 곤돌라를 탔다.
ⓒ 박솔희
아이와 함께 한 대만 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유아차를 타는 돌쟁이 아이를 데리고 타이페이에 갔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출국을 준비하는데 공항 직원이 멀리서 우리를 보고 분주히 다가와 유아 우대 라인을 안내해 준 적이 있다. 그런 작은 친절들이 마음에 남았고 아이와 또 한 번 대만 여행을 하게 만들었다.

우육면 집에서 순서를 양보해준 '웰컴투 타이완' 아저씨, 치진의 해산물 식당에서 밥 먹는 내내 우리 아이를 계속 웃겨 주었던 젊은 직원들, 상어 풍선을 갖고 싶다는 우리 꼬마에게 '베이비 샤크? 오케!'라며 흔쾌히 아기상어 풍선을 만들어준 풍선 아티스트 청년. 마음 따뜻한 가오슝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펑리수, 누가크래커, 곤약젤리보다도 더 소중한 기념품으로 남는다. 그런 기념품을 꺼내보며, 다음번 대만 여행도 계획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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