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독서개진론'

김삼웅 2026. 2. 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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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의 향연 93] 호 민세(民世)는 '민중의 세상'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김삼웅 기자]

▲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탄압을 받은 인사들이 조직한 십일회 회원들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김윤경, 정세권, 안재홍, 최현배, 이중화, 장지영, 김양수, 신윤국. 가운데 줄 왼쪽부터 김선기, 백낙준, 장현식, 이병기, 정열모, 방종현, 김법린, 권승욱, 이강래. 뒷줄 왼쪽부터 민영욱, 임혁규, 정인승, 정태진, 이석린. 총 22명 촬영. 1949년 6월 12일에 첫 모임을 갖고 찍은 사진으로 판단됨. 사진은 권한솔 님이 제공.)
ⓒ 권한솔
민세 안재홍은 1891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의 황성기독교청년회 중학부에 입학하고 1911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들어갔다. 졸업 후 귀국하여 시대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활동하고, 물산장려운동·신간회 발기인 등 줄곧 민족진영에 참여하였다. 호 민세(民世)는 '민중의 세상'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비롯 전후 9차에 걸쳐 7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국내에서 민족운동으로 일관하였다. 정인보와 함께 다산의 <여유당전서>를 교열 간행하고 해방 후 미군정의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지내다 6.25 전쟁 중 납북되어 1965년 평양에서 75세로 별세했다. <조선상고사감>등의 저서를 남겼다.

소개하는 <독서개진론>은 박재삼 편 <세계의 명문 200선>(문암사)에 실렸다. 장문이어서 앞부분만 싣는다.

독서개진론

일생을 일하고 일생을 읽으라.

황국단풍(黃菊丹楓)이 어느덧 무르녹아 달 밝고 서리 찬 밤 울어예는 기러기도 오늘 내일에 볼 것이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늘 높고 바람 급한 호마(胡馬)가 길이 소리쳐 장부의 팔이 부르르 떨치면서 넌지시 만 리의 뜻을 품는 것은 가을의 감정이다. 그러하매, 옛사람이 가을 밤 벽상에 장검(長劍)을 걸고 홀로 병서(兵書)를 읽었다고 하니, 가을의 숙살한 기운이 무한정진의 의도를 충동일 제 그 기(機)와 경(境)이 알맞게 의도를 펼 수 없는 것이 인세 (人世)의 상사인 고로, 걸린 장검에서 그 의도 식지 않고 읽어 가는 병서에서는 더욱 천하의 뜻이 굽닐어 나아가는 것이니 독서의 의의와 영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을이 아니니, 언제나 독서는 자아인 인생을 객관의 경(境)에서 새로 발전하는 것이요, 졸고 있던, 정돈되었던 위대한 나를 고인(古人)의 자취에서 고처 인식하는 것이며, 하필 남자만의 일이 아니니, 남성이건 여성이건 누구나 독서에서 새로운 지견(智見)과 생신한 천지를 개척하여 가는 것이다. 병서 - 오로지 독서지(讀書子)의 경륜에 투합할 바 아니니 무릇 사회백가(社會百家)의 서와 과학제문(科學諸門)의 술(述)을 각각 그 취미와 공용에 따라 자재하게 선택할 것이다.

독서는 꼭 높은 것을 귀하다고 안 하나니, 모름지기 자가(自家)의 지력(智力)에 맡겨 소화되는 것을 비롯할 것이요, 반드시 많은 것을 탐낼 일이 못되나니, 우선 침잠반복(沈潛反覆)하여 알고 깨달아 이른바 융회관통(融會貫通)하는 바 있음을 요하는 바이다.

나는 독서함을 자랑할 바 없는 자이나 독서를 좋아하는 자이니, 혹 10세 전후에도 틈을 타서 혼자 그윽이 서적을 뒤지는 취미를 알았던 바이요, 20세 전후에는 자못 그걸 즐기는 편이었고 24.5세가 되어 학창을 갓 벗어나자 때마침 유럽의 전란이 불어나는 감회(感懷) 많은 제회(際會)이던 것도 한 자극이었겠지만 그 즈음에는 대체로 소위 '탐다무득(貪多務得)' 하는 걸 더듬는 식의 독서 경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서에도 계단이 있는 것이매, 반드시 심각하게 파고들고 냉정하게 사변하고 그리하여 통철하게 깨달음이 있어 안으로는 자기 인생에 굳은 신념이 서고 외곽인 우주에 밝은 관조(觀照)를 이루며, 그 입각한 환경인 사회에 향하여는 또 확고한 견해가 있어 천지간에 처하매, 그 구경(究竟)에 갈 바를 알고 안락과 위난에 살아 그 살아갈 길을 정할 만큼 된 후에야 비로소 독서가 인간생애의 존귀한 경험이요, 감오(感悟)요, 개척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뒤에야 바야흐로 글은 글, 나는 나로 읽되 그 진미를 모르고, 배우되 얻음이 없음과 같은 실패를 저지르지 않게 되는 바이니 묘리진경(妙理眞境), 그것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환난은 너를 옥성(玉成)한다고 한다.

사람은 한바탕의 풍상이나 곤고나 혹은 기타 심우대환(深憂大患) 따위로서 세련되지 않은 한, 범인(凡人)으로서는 옥성키 어려운 것이다. 인세의 파동이 그 심령의 속속들이 까지 두드려 움직이고 생명의 비경에까지 그 감촉과 사고의 심각한 진동이 미치지 않고서는 인생으로서 겉꺼풀만 벗기어 넘어가는 피상(皮相)이 생활로 될 이(者)가 매우 흔한 것이요, 독서가 이미 인생 진정한 생활 개진의 필수한 방법이라고 하면 그러한 유의 독서는 또한 이에 따라 수박 겉핥기로 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내 기미의 해에 남옥(南獄)에 매인 지 3, 4년에 답답하되 원에 따라 시원할 수 없고, 덥되 때맞춰 서늘할 수 없고, 추위와 주림과 온갖 괴로움과 부자유와 주관에 응하여 나를 만족 시키지 않을 적에 희·노·애·락·애·악·욕의 온갖 정념이 분마(奔馬)같이 닫고 추원(秋猿)같이 뛰어 스스로 걷잡을 수 없는 지 무릇 몇 몇 고팽이에 비로소 위연히 걱정하고, 환연히 풀리고, 초연히 깨닫기도 하고 다시 초연이 거두기도 하여 침묵에서 응시함이 허수아비처럼 될 수도 있고 망연히 생각을 모음이 처녀의 유한(幽閑)함도 비슷하여 이로써 새로이 독서함에 임하매 혹 호분리석(毫分厘析)하는 때에 수일에 몇 페이지도 만족할 수 있고 만일 방담독파(放膽讀破)할 판이라면 수 시간에 기백 페이지라도 풀풀 넘길 수 있었나니, 이는 나에게 독서에도 한 기원이었고, 인생으로서도 더욱 큰 관령(關嶺)을 넘어선 것이다.

그리하여 비판의 마음이 먼저 서고 전색(銓索)의 눈은 냉정한 데 두어 스스로 독서하는 작은 혜경(蹊徑)을 얻었노라고 믿게 된 바이다. 아마 독서의 방법과 취미가 꼭이 있는 것이라고 하면, 이것이 확실히 그 일면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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