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7세 고시'라는 잔혹동화, 이제는 멈춰야 할 때다

손명선 2026. 2. 1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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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하루를 학습 노동으로 채우는 현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손명선 기자]

"우리 학원은 테스트 안 해요."

강남권 유아 영어학원 설명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최근 공개한 실태는 이러한 안심의 언어가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원들은 "지필고사는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SR 스코어, 스피킹 영상, 담임교사 리포트 등을 사실상 필수 자료로 요구한다.

시험지만 없을 뿐, 다섯 살, 여섯 살 아이들은 상·중·하 트랙으로 나뉘어 평가된다. 아이들은 평가자의 눈에 들기 위해 표정과 말투까지 신경 써야 한다.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학원법 개정안에서도 '등록 후 관찰·면담'이라는 조항이 있어, 이러한 평가가 간접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유아 영어학원은 법적으로는 '학원'이지만,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돌봄, 급식, 셔틀버스, 화장실 케어, 체험활동까지 제공하며, 사실상 '유치원 대체기관'처럼 운영된다. 아이들은 놀이보다는 학습 일정표에 맞춰 하루를 보내게 된다. 법의 틈을 이용한 시장 구조가 유아기의 시간을 점차 줄이고 있는 셈이다.

부모만 탓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맞벌이 가정이나 돌봄 공백에 놓인 부모에게 이러한 기관은 하루 종일 아이를 책임져주는 '편리한 육아 패키지'로 받아들여진다. 국가가 공교육과 돌봄 체계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사이, 영어 사교육 시장이 자연스럽게 그 빈틈을 채우게 된 것이다.

불안은 어떻게 시장의 연료가 되었나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다면 왜 많은 부모가 이런 체계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단순히 영어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사교육 시장은 부모의 불안, 특히 '돌봄 부족'과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영어 골든타임', '탑반 진학', '로드맵' 같은 표현은 선택이 아니라 불안을 자극하는 신호로 작용한다.

"지금 탑반에 못 들어가면 뒤처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부모의 선택을 사실상 강요로 바꾼다. 결국 시장의 동력은 욕망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증폭된 불안이다. 부모들은 경쟁에서 뒤처질까 하는 걱정 속에서 점점 더 어린 나이부터 사교육을 선택하게 된다.

세브란스 아동청소년정신과 천근아 교수는 지난해 4월 11일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논리적 추론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기도 전에 중·고교에서 배우는 수준의 문제를 아이에게 풀라고 시키는 건 학대예요. 어릴 때 받아야 하는 정서적인 자극 대신 독해·추론 등 이상한 자극이 뇌에 들어오니까 뇌가 망가지게 돼요."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다수의 연구가 조기 사교육과 아동의 정신건강 문제 사이의 상관관계를 입증했다. 사교육 시간이 많은 초등학생일수록 스트레스, 우울, 문제행동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림대학교 소아청소년정신과 홍현주 교수가 2011년 발표한 논문 '사교육과 아동 정신건강의 연관성 연구'에 따르면, 하루 4시간 이상 사교육을 받는 아이의 경우, 약 30%가 우울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일반 영어학원 유아는 시간제 학원 유아보다 일상적 스트레스와 좌절감, 내재화 문제(불안·우울)가 더 높았다.

AI 시대, 조기 영어 몰입은 필수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실시간 통번역을 지원하는 시대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영어 암기가 아니라, 자유롭게 뛰어놀며 사고력과 모국어 문해력을 기르는 경험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5~17세 아동에게 하루 최소 60분 이상의 신체활동을 권장하고, 호주 보건부는 3~5세 유아에게 최소 3시간 이상의 신체활동을 권장한다. 그러나 반일제 이상 영어학원의 빡빡한 시간표는 이런 기준과 거리가 멀다.

유아기에 맞지 않는 과도한 학습은 정서와 사회성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 영어 단어 몇 개를 더 외우는 것보다, 아이가 오늘 마음껏 배우고 경험할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규제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학원 심야교습 제한 조례를 합헌으로 판단하며, "학생 건강과 안전 보호, 학교교육 정상화, 과외 경쟁 완화"를 정당한 입법 목적이라고 인정했다. 대법원도 영업시간 제한 판결에서 공익을 위한 자유 제한이 정당함을 명시했다.

이를 기준으로, 유아 영어학원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제안될 수 있다. 첫째, 유치원 기능을 대체하는 '반일제·종일제 유아 영어학원' 운영을 원천 금지해야 한다. 학원과 유치원의 법적 경계를 명확히 하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둘째, 명칭과 형식을 불문하고 선발, 등급화, 그룹핑 등 모든 형태의 레벨테스트를 포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반 배정과 영상 평가 등 우회적 선발 방식까지 규제 범위에 포함해야 법의 실효성이 생긴다.

셋째,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과장·공포 마케팅을 규제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교육 효과를 내세운 광고와 경쟁 조장 문구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즉각적인 행정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넷째, 유아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 내용과 운영 시간의 상한을 법제화해야 한다. 놀이 중심 발달 원칙을 훼손하는 과도한 조기 학습 프로그램은 분명한 기준 아래 관리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현재 유아 영어 사교육 시장은 '선택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다섯 살 아이가 하루 종일 경쟁 학습에 내몰리는 상황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이들의 권리와 발달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학습 노동에서 해방되고, 놀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다. 이제는 시장의 속도보다 아이 발달 기준이 정책을 결정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언론창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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