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카프 계열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고향

여경수 2026. 2. 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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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우연히 구미시 도량동에서 고아읍으로 넘어가는 길에 김유영을 기념하는 탑을 마주쳤다.

기념탑에는 연보를 통해 그의 행적이 설명되어 있었고, 뒤로는 제작한 영화를 소개하는 탑 4개가 있었다.

김유영은 그런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김유영 감독이 경성에서 영화를 제작하며 얻은 영감의 원천은 고향이었을 것이고, 젊은 날 병마로 고통받을 때도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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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도량동에서 고아읍으로 넘어가는 길에 마주한 김유영 감독 기념 탑

[여경수 기자]

설 연휴 우연히 구미시 도량동에서 고아읍으로 넘어가는 길에 김유영을 기념하는 탑을 마주쳤다. 기념탑에는 연보를 통해 그의 행적이 설명되어 있었고, 뒤로는 제작한 영화를 소개하는 탑 4개가 있었다.

찬찬히 그의 삶을 읽어보니,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카프 계열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구미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에는 독서회 사건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선산 김씨 가문 출신인 김유영이 태어난 원호리는 예전에 들성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구미에서는 선산 김씨를 들성 김씨라고 한다.

문성이라 부르는 이곳은 지금 택지로 개발되어 유명 건설 회사가 지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다. 내가 다닌 구미중학교 바로 뒤편의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고아읍 원호리였다. 내가 졸업하던 1992년만 해도 이곳은 듬성듬성 집 몇 채밖에 없는 시골이었다. 김유영은 그런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김유영 기념비
ⓒ 여경수
나는 유년 시절 금오산 밑자락인 각산에서 자랐으나, 중·고등학교는 원호동 바로 아래에 있는 학교를 나왔다. 마침 오늘 외출도 설날을 맞아 고등학교 친구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졸업 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임이지만, 5명 모두 구미중학교 출신이다. 그날 술자리에서 중견업체 부서장으로 있는 친구의 한탄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연봉도 높고, 다음 인사에서 이사 승진 가능성도 반반이지만, 더 이상 조직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제는 오롯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오후에 살펴본 김유영의 삶이 떠올랐다. 김유영은 가문이 원한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일까? 선산 김씨 가문은 구미에서 지금이나 그때나 일선 김씨 등과 더불어 유력한 가문이었다. 김유영이 자란 동네에는 지금도 선산 김씨 종택과 임진왜란 시기 순직한 김종무를 기리는 정려비가 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그의 영화 세계를 형성한 것 같다.
 김유영의 최초 작품인 유랑을 소개하는 조형물
ⓒ 여경수
그가 최초로 제작한 영화는 '유랑'이다. 기념탑 설명에 따르면, '유랑'의 줄거리는 식민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떠돌이 삶이라고 한다. 봉건제가 식민지 체제로 해체되는 과정, 성리학의 정서와 다른 신식 교육에서 느끼는 갈등을 김유영이 겪었을 것이다.
이후 그가 제작한 '혼가'(1929), '화륜'(1931), '수선화'(1940) 등이 단성사 등에서 개봉했다. 문학 단체 구인회의 초기 회원이라는 정보도 탑에 적혀 있다. 영화 줄거리 역시 상당히 냉소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시각이었다. 김유영은 1940년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소설가인 아내와 결혼했지만, 말년은 가난으로 힘들었고 결국 병을 얻고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를 기리는 공간이 태어난 곳에 마련되었다니 뜻이 깊다. 2009년에 이곳이 만들어졌다니, 그동안 몰랐던 게 아쉽다.
 김유영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조형물과 뒤편의 인내천
ⓒ 여경수
지금도 이곳은 택지 개발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념 공간 옆으로 흐르는 인내천을 따라 산책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유영이 어린 시절 뛰어놀고 물놀이했던 인내천이 오늘날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김유영 감독이 경성에서 영화를 제작하며 얻은 영감의 원천은 고향이었을 것이고, 젊은 날 병마로 고통받을 때도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를 기리는 사업이 고향에서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일제강점기 많은 이들이 삶의 방향에 대해 다양한 선택을 했다. 김유영이 선택한 길을 늦게나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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