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새로운 복음

정치는 대중에게 꿈을 주는 활동이다. 70년대엔 거리 곳곳에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이 목표를 달성하면 우리도 본격적으로 ‘마이 카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홍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겸손한 목표지만, 그 시절 국민들은 그 소박한 꿈 하나만 바라보며 성실한 노동으로 그 험한 시대를 살아냈다. ‘고도성장’은 독재로 인한 빈번한 정치적 불안 속에서도 보수의 헤게모니를 보장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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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대신 주식 ‘복음’ 전파하며
의제를 오른쪽으로 넓힌 민주당
국힘은 반대로 정체성 정치 강화
보수의 복음, 과연 누가 쓸 것인가
」
고도성장의 부산물인 소득격차는 ‘파레토 개선’의 논리로 정당화할 수 있었다. 즉 ‘1대 2’의 격차가 ‘2대 5’로 벌어진들, 그냥 1을 받는 데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그래도 2를 받는 게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냐는 것이다.
남은 것은 자산격차인데, 부동산값 폭등을 가라앉히는 보수의 전형적 해법은 시장원리에 입각한 공급 확대였다. 실제로 노태우 정권은 ‘주택 200만 호’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로 전국의 주택보급률을 크게 늘렸다. 이는 급진주의에 빠진 청년세대를 체제내화하는 정치적 효과로 이어졌다. 과거의 혁명전사들이 그때 공급된 수도권의 주택에 들어갔고, 그중 상당수는 뒤늦게 체득한 자본주의적 촉으로 계급의 적들의 성지 강남에 입성했다.
‘내 집’은 평균적인 한국인의 인생목표다. 전에는 열심히 일해 저축하고, 그 돈으로 전세 얻고, 청약에 당첨되면 대출받아 집을 사는 표준경로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도권에, 특히 서울에는 더이상 집 지을 땅이 없다.
그러니 남은 것은 수요억제뿐. 하지만 이 정책은 시장원리에 배치되기에 번번이 집값만 폭등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바로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때문이었다.
이제 ‘부모’라는 치트키 없이 근로소득으로 집을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도권의 주택은 이미 기성세대가 선점했고, 기회를 놓친 무주택자나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세대는 내 집의 꿈을 아예 포기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소득은 정체되고, 내 집은 없다. 그런 우리에게 아직 꿈이 있는가?
왜 없겠는가. 부동산 대박은 불가능하지만, 주식 대박은 아직 남아 있다. 지금 대통령이 국민에게 꿈을 주고 있다. 코스피 5000 공약은 이 시대의 ‘복음’이다.
재미있게도 이 전환을 민주당에서 주도하고 있다. 원래 이런 건 보수의 의제로 여겨졌던 것. 이는 한편으로 국민의힘이 의제 설정의 능력을 잃었다는 것을, 다른 한편으론 민주당이 보수화·우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힘이 비워놓은 중원을 민주당에서 장악해 버렸다. 최근 민주당에서 김성식, (비록 촌극으로 끝났지만) 이혜훈 등 KDI 출신의 브레인을 영입하려 한 것은 민주당에서 의제를 오른쪽으로 넓히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로 변모한 지 오래다. 보수는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타령에 전두환 사진 걸자는 얘기나 하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산업화’ 시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주식거래 활동계좌의 수가 무려 1억. 국민 한 명당 계좌 2개를 갖고있는 셈이다. 거의 전 국민이 주식을 보유하는 상황이니, 과거의 노동자들이 이제는 적어도 보유한 주식의 액수만큼은 자본가가 된 셈이다.
이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민주당은 지금 자신들의 전통적 의제인 ‘평등’을 ‘주식시장의 공정’으로 고쳐 쓰고 있다. 주주가치를 제고하여 전 국민을 주주로 만들고, 그들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함으로 미래의 지지층을 선점하는 전략이다. 실물경제는 차갑게 가라앉았는데 주식시장만 뜨거운 것이 왠지 모를 불안함 내지 불길함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재명이 형’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주주자본주의 전략이 내는 정치적 효과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민주당이 오른쪽으로 무섭게 쳐들어오는데 국민의힘에서는 거꾸로 ‘정체성’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강령에서 ‘기본소득’부터 삭제하겠단다. 당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다 이런 좌파적 요소가 당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라나. 비전을 잃은 당에는 ‘주군에 대한 충성’이라는 봉건윤리와 ‘배신자 처단’의 궁중사극만 남았다. AI의 시대에 이런 거 좋아하는 계층은 오직 70대와 80대뿐. 어쩌겠는가. 회춘을 거부하는 정당은 그들과 생물학적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여기저기서 ‘이번 선거에서 쫄딱 망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푸념이 들린다. 그런데 ‘서울·부산시장 선거’라고 슬쩍 기준을 들이대는 것을 보건대, 전국에서 패배하더라도 그들이 순순히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상황에서 보수의 ‘복음’을 쓸 사람은 누구일까?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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