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개성공단의 유산, 평양까지 번졌던 ‘한국의 맛’

2026. 2. 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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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지난 10일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의 가동 중단을 발표한 지 10년이 지났다. 통일부는 이날 공단 폐쇄에 유감을 표하며 조속한 정상화를 희망한다는 성명을 냈다. 통일부는 개성공단을 ‘통일의 시험대’라고 불렀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개성공단은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일각에선 개성공단을 북한 주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었다고 평가한다.

「 북 주민에게 창문 역할 하던
개성공단 가동 중단 10년
북 상황 변화로 재개는 꿈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지난 10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개성공단 입주 기업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평양에 거주하던 당시 남북 양측을 통해 개성공단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북한의 공단 관계자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런 경험을 통해 개성공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주는 공간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필자가 방문했던 북한의 공장들은 대개 어둡고 칙칙했다. 반면 개성공단의 공장들은 밝고 환기 시설도 훌륭했다. 북한 공장의 노동자들은 침묵 속에서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틀어주는 애국 가요를 들으며 고되게 일했지만, 개성공단의 근로자들의 경우 K팝을 들을 수는 없었어도 음악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 측 관리자들은 식당에서 영양가 높은 한국 음식을 제공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고, 이런 분위기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이런 소식은 공단 담장 너머로도 퍼졌다. 북한 관리들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퇴근 후 개성 시내의 집으로 돌아갔다. 북한 당국은 이들을 주민들과 격리하고 싶어했지만 이들을 따로 모아 놓을 시설이 없었다. 개성 시민들은 공단의 작업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빈자리가 생기면 수많은 사람이 몰려 들었다. 이런 정보는 친지들을 중심으로 개성을 넘어 평양까지 ‘은밀하게’ 흘러갔다. 개성의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퍼지는 입소문은 생각보다 훨씬 정확하고 빨랐다.

그렇다면 개성공단이 통일의 모델이 될 수 있었을까? 개성공단에서는 한국인 관리자가 북한 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내렸지만 흡수통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북한 정권이 이를 통일 모델로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남북한 근로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당초 30만 명의 노동자를 수용하려 했으나 공단 운영 전체 기간에 걸쳐 실제로는 그 10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개성공단 모델을 다른 지역에서 시도하더라도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성공단과 유사한 특구들을 구상했지만, 그 대상은 ‘위험한 민주주의 국가’ 한국이 아니라 ‘안전한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의 기업들이었다. 한국이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디딜 때, 북한은 경제 부양의 모델만을 본 것이다.

북한이 공단을 외화벌이 수단으로만 여겼다는 주장은 어떨까.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한국 기업들이 북한 당국에 일괄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니 실제 노동자들이 얼마를 가져가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한 소식통은 월 80달러 정도의 임금을 터무니없는 공식 환율로 북한 원화로 환전해 주고, 국가가 사실상 임금의 99%를 가져간다고 했다. 반면 다른 소식통은 임금의 80% 정도가 공단 내 전용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수 화폐로 지급된다고 전했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분명 북한 정권이 개성공단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했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26일 당중앙위원회 본사 청사에서 열린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밝혔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한국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는 지금, 공단 재개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북한은 개성공단이 처음 문을 연 2004년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단 재개 의지를 보였던 2019년과 판이하다. 북한은 훨씬 폐쇄적이 됐고, 주민 감시 수단은 더욱 정교해졌다. 과거처럼 한국의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 관리자의 경영권 보장도 확신할 수 없다. 게다가 공단의 핵심 경쟁력이던 ‘저렴한 숙련 노동력’은 이제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다. 정치적·경제적 가치 모두 변한 것이다.

결국 개성공단에 대한 평가는 북한 정권이 챙긴 경제적 이익과 통일 관련 가치 비교로 귀결된다. 진보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을 향한 진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보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논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개성공단 재개는 현재로선 아득한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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