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보다 머무는 방식…여행의 '성적표'가 바뀌고 있다
'몇 명이 왔는가' 대신 '얼마나 머물렀는가'
"사람은 오는데, 동네는 그대로다."

여행지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낮에는 붐비고, 밤에는 조용해진다. 사진은 남지만, 이야기는 남지 않는다. 관광객은 다녀가고, 마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오랫동안 관광은 그렇게 작동해왔다.
18일 관광업계에 다르면 최근 국내여행 트렌드가 바뀌면서 어디를 갔는지보다, 어디에 머물렀는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 많이 보는 여행보다, 오래 머무는 여행. 소비보다 체류가 먼저 언급된다. 관광의 기준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디지털 관광주민증이 있다.

단양·거창, 한 번 더 머물 이유를 만든 곳
충북 단양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여행지다. 풍경이 좋고, 볼거리가 많다. 대신 '당일치기'라는 말이 늘 따라붙었다. 보고 나면 돌아가는 곳. 머무를 이유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단양은 다른 숫자로 불린다. 2025년, 여행 플랫폼 '대한민국 구석구석' 인기검색 지역 전국 2위. 제주와 경주, 여수를 제쳤다. 그보다 눈에 띄는 건 그 다음이다. 디지털 관광주민증 발급률 3년 연속 전국 1위. 누적 발급자 수 30만 명. 인구 대비 발급률은 1137%에 이른다.
다누리아쿠아리움, 만천하스카이워크, 고수동굴. 이름난 관광지들이다. 여기에 음식점과 카페, 기념품점이 더해진다. 단양의 관광주민증은 총 70곳에서 쓰인다. 여행의 끝이 명소가 아니라, 그 다음 식사와 산책으로 이어지도록 짜여 있다. 한 번 더 머물 이유를 만든 셈이다.
경남 거창도 비슷하다. 거창은 숙박과 캠핑에 초점을 맞췄다. 디지털 관광주민증 발급자 수는 20만 명을 넘겼다. 참여 업체는 26곳. 당일 방문보다 하룻밤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관광객이 지나간 자리에, 잠시나마 생활이 남는다.

관광 수요는 있다. 다만 오래 머물지 않을 뿐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6 관광 트렌드 분석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로컬 중심의 재창조. 공간적 경험. 관광객은 이제 유명한 장소만 찍고 떠나지 않는다. 지역의 일상과 생활 공간까지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 변화는 현장에서 더 빨리 감지된다. 지역 숙박업계와 여행 플랫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이런 말이 자주 오간다.
"주말 예약은 찼는데, 동네는 여전히 조용하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분명 오지만, 밤을 보내지 않는다. 머무는 시간은 짧고, 쓰는 공간은 한정돼 있다. 관광객이 늘어도 지역의 체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이제 묻는다. 더 많이 부를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지를.
문제는 연결이다. 볼거리는 있지만, 그 다음이 없는 곳. 소비가 한 지점에 몰리고, 체류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숙박과 식음, 체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지역에서는 동선이 넓어진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쓰는 장소도 달라진다.
디지털 관광주민증은 이 연결을 돕는 장치다. 아주 크지 않은 혜택이지만, 선택을 바꾼다. 돌아갈지, 하루 더 머물지. 그 갈림길에서 작동한다.

관광객에서 '관계 인구'로
안동과 영주에서는 관광주민증을 발급받으면 최대 50%까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숙박과 체험, 음식이 포함된다. 영주에서는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 숙박 시 온천 이용료를 55% 할인받을 수 있다. 안동에서는 카페와 숙소에서 주민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값이 싸서가 아니라, 머물 명분이 생긴다. 하루를 더 보내도 괜찮겠다는 생각. 여행의 속도가 느려진다.
제천과 단양이 디지털 관광주민증 우수 운영 지자체로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케이블카와 아쿠아리움 같은 시설들이 관광주민증과 만나, 유동 인구를 체류와 소비로 바꿨다.
현재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에는 34개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방식이 모든 곳에 맞지는 않는다. 어떤 지역은 인프라를 중심으로, 어떤 곳은 숙박과 테마로 접근한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닌 누구를 어디에 머물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다

관광은 이제 묻는다. 많이 왔는지를. 대신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얼마나 머물렀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어떤 관계로 남았는지를.
2026년의 관광은 이동보다 체류를 말한다. 볼거리보다 이유를 묻는다. 왜 이곳에 머물고 싶은가. 왜 다시 오고 싶은가.
디지털 관광주민증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크지 않고, 조용한 제도다. 하지만 여행의 속도를 바꾼다. 스쳐 지나가던 곳을, 잠시 머무는 동네로 만들고 있다. 숫자보다 머무는 방식. 관광이 다시, 사람의 시간으로 돌아오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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