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1바퀴 뛰자" 그 후... 반 아이들이 일기장에 쓴 말

무주신문 홍수연 2026. 2. 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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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의 특별한 '1km 마라톤 이야기'... 끝이 아닌 시작이길

[무주신문 홍수연]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제작한 자료 이미지
ⓒ 오마이뉴스
1km. 단위 킬로미터는 어쩐지 말만 들어도 거대하게 느껴진다. 한눈에 쉬이 어림잡기도 힘든 이 기나긴 거리를, 조그만 우리 반 아이들에게 달려보자고 제안할 참이었다. 평소 달리기에 취미가 있는 나는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임을, 또 이 달리는 본능을 깨웠을 때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어려워 보이는 일을 넘어서는 경험이 사람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1km는 1000m, 우리 학교 운동장 한 바퀴가 200m 정도라니까 다섯 바퀴를 쉬지 않고 돌아야 한다. 운동장 다섯 바퀴 달리기? 운동량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에게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됐다. 게다가 준비 없이 갑자기 달리자고 하면, 성취감보다는 패배감을 먼저 경험할지도 모른다.

아직 2학년인 우리 반 친구들에게는 적어도 몇 번의 준비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운동장에서 체육 활동을 할 때마다 시작하기 전이나 끝날 때쯤 한두 바퀴 정도 뛰게 했다. 언젠간 다섯 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것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채로.

천천히 뛰어보라고 하는데 달리기 본능이 꿈틀거리는 어린이들은 "자아, 출발!"을 외치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어가기 일쑤였다. 친구가 따라붙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친구도 있고, 더러는 전속력으로 달리다 숨이 차 한 바퀴 돌기도 전에 냅다 누워버리는 친구도 있다. 애초에 손잡고 "우린 그냥 걷자"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나의 목표는 간단했다. 바로 아이들이 "운동장 한두 바퀴쯤이야!" 하며 가볍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작은 성공의 경험담을 하나 더 쌓았다

선선한 가을이 제법 쌀쌀해지려는 어느 날, "우리 맨날 한두 바퀴만 뛰었는데, 이번엔 세 바퀴 뛰어보자. 어때?"하고 슬쩍 운을 떼봤다. '세 바퀴쯤은 별거 아니지'라고 느낄 수 있을 법한 말투였지만, 내심 걱정이 많았다. '세 바퀴를 도대체 왜 뛰어요? 하기 싫어요! 너무 힘들잖아요!' 하는 소리가 들려올까 봐.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자신만만이다. 어른인 나만 겁을 먹었을 뿐, 아이들은 두려울 게 전혀 없다는 표정이다.

"너무 힘들면 좀 빨리 걸어도 괜찮은데, 못하겠다고 포기하지만 말자. 그리고 기왕이면 처음부터 막 뛰지 말고, 끝에 뛸 힘을 좀 남겨놓으며 달려봐."

제법 끈기 있게 끝까지 세 바퀴를 도는 친구들이 보였다. 몇몇은 꽤 빠른 속도로 세 바퀴를 완주했다. 진짜로 이젠 세 바퀴가 별것 아닌 건가 싶었다. 그러나 힘겹게 걸어 들어오는 몇몇 친구들이 떠올라 '이제 우리 다섯 바퀴 한 번 돌아보자'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으면서도, 막상 성장을 위해 고통을 선물하자니 어느새 가슴이 또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었다.

가을이 자취를 감추고 제법 한기가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결전의 다섯 바퀴다! 나만 혼자 비장한 마음인가 싶었는데, 다섯 바퀴가 무려 '1km'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운동화를 신고 트랙 위에 선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나갔다.

"곧은 길에선 신나게 뛰고, 굽은 길에선 속도를 낮춰 천천히 뛰자. 그러다 보면 금방 1km다. 모두 파이팅!"

다섯 바퀴를 거뜬히 뛰어 돌아오는 아이, 빨리 뛰다 천천히 뛰기를 반복하는 아이, 서로 경쟁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아이들, 처음부터 손잡고 같이 뛰는 아이들, 힘겨운 표정으로 뜀박질을 반복하는 아이들. 각자의 모습대로 달리고 있었지만,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포기란 없다! 먼저 도착한 아이들의 "파이팅! 힘내!"라는 힘찬 응원의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선생님이 1km라고 해서 사실은 못 할 줄 알았는데요, 할 수 있네요!"

초콜릿 메달을 받으며 기뻐하는 아이들 얼굴을 대하니 그동안 망설이던 내가 너무 우스웠다. 다음 날 아이들 일기장엔 뿌듯함과 기쁨, 자신감과 자랑스러움이 배인 문장이 수두룩했다. 작은 성공의 경험담 하나를 또 쌓았다. 이 '1km'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길 바란다.

홍수연(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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