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견뎌온 땅, 성북동의 두 얼굴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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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화문 2월 초순 찾은 옛 문의 터에서 옆으로 높이를 맞춰 1994년 복원된 혜화문. 동쪽의 작은 문이라 해서 '동소문'으로도 불렀다. |
| ⓒ 이영천 |
혜화문이 있던 자리를 이제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도성은 남았으되, 도시도 그처럼 성곽을 기준으로 흐르지 않는다. 성곽이 더는 시각을 가두지 않고, 도시 활동은 성곽을 비켜 간다. 이 어긋남이 현재의 도성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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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성 안내센터 옛 서울시장 관사를 故 박원순 시장의 뜻에 따라 개방하여 '도성 안내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
| ⓒ 이영천 |
두 얼굴의 성북동
성북동은 한 방향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에서 이곳을 먹이를 찾지 못한 비둘기가 내려앉는 가난한 동네로 그렸다. 비둘기는 날지 못한 존재라기보다, 날아갈 이유를 잃은 존재에 가까웠다. 시인은 파괴되어 가는 자연과 문명에서 소외되어 비루한 존재로 전락한 인간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시가 쓰이던 시절, 성북동은 도성 변두리의 비탈을 따라 삶이 밀려들던 자리였다. 복개된 성북천 동쪽 언덕, 비둘기들이 앉았던 자리는 재개발로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도시가 이처럼 찡그린 표정 짓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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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동 멀리 언덕 위 아파트가 동소문동이고, 가까이 성벽 바깥이 북성마을이다. 중위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성북동 풍경이다. 동소문동 가까운 성북천 동쪽은 재개발 예정으로, 이 풍경도 곧 바뀔 것이다. |
| ⓒ 이영천 |
이 동네에선 빈과 부가 충돌하기보다, 서로 공간을 달리해 머문다. 어느 공간에는 비둘기가 내려앉았고, 어느 공간에는 별장이 들어섰다. 같은 골목과 같은 비탈이 전혀 다른 삶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성북동 인상이 단정하게 정리되지 않는 이유는, 이 겹쳐진 시공간 때문이다.
성곽과의 관계 또한 성북동을 규정한다. 성 안도 아니고, 성 밖이라 단정하기도 어려운 모호한 위치다. 성곽 테두리에서 벗어났었기에, 오히려 생활 밀도에 더 치중했다. 성곽은 이곳을 보호하지도, 그렇다고 배제하지도 않았다. 그 모호한 거리감 덕분에 성북동은 늘 다른 방식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성북동은 한 시대의 상징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가난의 이미지로도, 부유한 주거지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곳은 도성 바깥에서 도성의 시간을 나눠 가진 동네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채 시간을 견뎌온 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지킨 사람, 버텨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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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송미술관 성북동에 하나의 상징처럼 앉아 있는 간송미술관. 이 공간에 이런 미술관이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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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성마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안 배후지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마을에 심우장이 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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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께서 도성 안의 조선총독부 청사를 등지고 앉힌 집 심우장이다. 선생의 결기처럼 차가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
| ⓒ 이영천 |
닫혔다 열린 길
와룡공원에 다다르면 지형부터 달라진다. 누운 용의 완만한 지형인 성북동이 끝나고, 백악산 급경사가 시작된다. 몸무게를 떠받치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잠시 숨을 고른다. 걷는다는 행위, 발과 몸뚱이의 싸움이 다시 의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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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청각 북악산 능선 아래 삼청각. 지금은 식당 등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나, 1970년대 독재 권력의 '요정 정치'라는 어둠의 중심이었다. |
| ⓒ 이영천 |
백악산 성곽길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군사시설이라는 이유였다. 1968년 31명의 무장한 북한군이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가 산의 길을 닫게 된 계기였다. 시작은 그랬으나, 실상의 정점에는 닫힌 권력의 치부를 가리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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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바위 안내소 북악산 구간의 한양도성을 개방하면서, 신분증을 검사하던 '말바위 안내소'이다. 지금은 신분증을 검사하지 않는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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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도성 숙정문 구간 중간 큰 소나무들이 우거진 곳이 숙정문이고, 그 위로 뻗은 성벽 위가 능선 셋이 만나는 '곡성' 구간이다. |
| ⓒ 이영천 |
혜화문에서 시작한 오늘의 걸음을 숙정문 앞 백악산 자락에서 멈춘다. 성곽은 여러 차례 허물어졌고, 잘리고, 다시 쌓였다. 그 과정마다 도성에 살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지켜냈고, 또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다.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다는 건, 그 선택이 남긴 자리를 세심하게 살펴보고 느끼는 일이다. 시간을 데리고 온 성곽에 낀 이끼가 겨울 추위에 푸르게 말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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