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핑거의 역사] 143초 만에 증발한 회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가끔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1엔에 61만 주 매도'를 입력했다.
당시 제이컴의 총 발행 주식 수는 1만 4천 주에 불과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주식 61만 주가 단돈 1엔에 시장에 쏟아진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가끔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매수 버튼을 누른다는 게 매도를 누르거나, 10주를 산다는 게 100주를 입력했을 때다. 개인 투자자라면 "아차" 하고 취소하거나 약간의 수업료를 내고 말면 그만이다.
하지만 수조 원을 굴리는 기관 트레이더거나 초고속 알고리즘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 한 번의 오타가 회사를 파산시키고 금융시장을 휘청이게 만든다. 금융 역사상 가장 비쌌던 실수들, '팻핑거'의 역사를 17일 되짚어봤다.
◇"61만엔에 1주 파세요" → "1엔에 61만 주 파세요"
가장 황당한 사례는 2005년 일본에서 나왔다.
미즈호 증권의 한 트레이더가 신규 상장 종목인 '제이컴' 주식을 주문하면서 낸 오타다.
본래의 주문은 '61만엔에 1주 매도'였다. 하지만 '1엔에 61만 주 매도'를 입력했다. 당시 제이컴의 총 발행 주식 수는 1만 4천 주에 불과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주식 61만 주가 단돈 1엔에 시장에 쏟아진 것이다.
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미즈호 증권은 뒤늦게 취소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미즈호는 눈물을 머금고 주식을 시장가로 다시 사들여야 했고, 이 과정에서 입은 손실만 400억엔(약 4천억원)에 달했다. 담당자의 단순한 입력 실수가 나비효과가 되어 일본 증시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팻핑거로 파산한 회사…한맥투자증권·나이트 캐피탈
한국 자본시장 역사상 가장 슬픈 팻핑거는 2013년 겨울에 일어났다.
한맥투자증권 직원이 옵션 주문을 넣으면서 이자율 계산 잔여일수에 '365' 대신 '0'을 입력한 것이다.
이 작은 실수로 인해 한맥의 알고리즘은 시장의 모든 옵션이 싸다고 오판했고 미친 듯이 사들이고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직원이 당황해서 전원 플러그를 뽑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43초. 하지만 기계에 2분은 영겁의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462억 원의 손실이 확정됐다. 한맥투자증권은 거래 상대방들에게 이익금을 돌려달라고 읍소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도의적으로 돈을 돌려줬지만 가장 큰 이익(360억 원)을 챙긴 미국계 헤지펀드 캐시아캐피탈은 냉정했다.
결국 한맥투자증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팻핑거로 회사가 파산한 사례는 또 있다.
미국 나이트 캐피탈은 2012년 새로운 매매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엔지니어가 8대 서버 중 1대에 업데이트를 누락했다. 그 결과 8년 전 테스트용으로 쓰던 '고가 매수 저가 매도' 주문이 실행됐다.
해당 알고리즘은 45분 동안 150개 종목을 멋대로 거래하며 4억4천만달러(약 5천억원)를 공중에 날렸다. 분당 100억 원씩 태워먹은 셈이다. 월가 최고의 시장 조성자였던 나이트 캐피탈은 이 사건 한 방으로 경쟁사에 헐값 매각되는 운명을 맞았다.
◇유령이 돈을 찍어낸다… 삼성증권과 빗썸
실수가 탐욕과 만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가 대표적이다.
삼성증권 직원은 우리사주 배당금을 입력하며 '1천원' 대신 '1천주'를 입력했다. 그러자 전산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 주식 28억 주(약 112조 원)가 직원들 계좌에 입고됐다. 계좌에 찍힌 천문학적인 숫자를 본 직원들은 회사에 신고하는 대신 매도 버튼을 눌렀다. 없는 주식이 시장에 팔려나갔고 주가는 폭락했다.
이 악몽은 최근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재현됐다. 빗썸 직원이 이벤트 당첨금 '2천원'을 '2천 비트코인'으로 잘못 보낸 것이다.
전 세계 비트코인 발행량의 3%에 달하는 63조 원 규모의 유령 코인이 순식간에 개인 지갑으로 뿌려졌다. 삼성증권 때는 예탁결제원이 있었지만, 코인판엔 중앙 통제 기구조차 없었다.

kslee2@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4시 0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Copyright © YONHAPINFOM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