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어른 행세] '넘버원' 엔딩크레딧 끝나고 벌어진 일... 기어이 눈물이 났다

임은희 2026. 2. 1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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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석에서 오열하는 '하민이들'을 보며... 차마 말하지 못한 속마음 전하는 명절 되시길

서울, 부산, 경기도 가평, 제주, 미국에 흩어져 사는 6인이 쩨쩨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편집자말>

[임은희 기자]

"엄마, 영화 보러 가자."
"무슨 영화?"

"<넘버원>."
"왜?"

"엄마랑 보고 싶어서."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작은 아이가 느닷없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영화였지만 아이가 보자고 하니 안 볼 수가 없었다. 영화 개봉일이었던 지난 11일, 우리는 용산아이파크몰로 향했다. 관람석은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작은 아이처럼 어린 사람이나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극장 안이 청년들로 가득 차 있어서 어쩐지 어색한 기분으로 착석했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엄마와 멀어져야 하는 주인공
▲ 영화 넘버원 포스터 새해 첫 온가족 힐링 무비
ⓒ 바이포엠 스튜디오
<넘버원>은 엄마(장혜진 분)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 분)의 이야기다.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엄마의 남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하민은 엄마의 밥을 먹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엄마와 멀어져야 하는 하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집밥을 먹지 않는 하민을 보며 슬퍼하는 엄마는 어떤 식으로든 하민에게 다시 집밥의 온기를 전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2008년에 결혼했다. 두 번의 출산을 하고 지금까지 매년, 매달, 매일 집밥을 해왔다. 이날도 작은 아이와 영화를 보기 위해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나 집을 정리하고 반찬을 만들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큰 아이가 먹을 식사를 준비하느라 숨 가빴는데 영화에서 끊임없이 집밥이 등장하니 노곤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속 엄마가 반찬을 만들 땐 손에 양념이 묻어있는 것 같았고, 경상도식 매콤한 소고기뭇국을 끓일 땐 재료 준비로 손이 축축해진 느낌이었다. 하루 최소 세 번은 말하는 '밥 먹자'. 어쩜 나는 질리지도 않고 말해왔을까. 하민의 엄마, 은실의 모습을 보며 감정의 동요 없이 나의 식탁을 회상했다.
▲ 영화 넘버원 스틸컷 엄마 은실(장혜진)과 아들 호민(최우식)
ⓒ 바이포엠 스튜디오
주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훌쩍이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자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청년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뒷자리의 청년도 오열했다.

은실과 하민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의 식사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도대체 집밥이 뭐고 엄마밥이 뭐길래 다들 이렇게 울고 있는 걸까. 영화 속 은실처럼 늘 밥 먹으라는 잔소리를 해온 나는 살짝 겸연쩍은 마음으로 울음소리를 들으며 관람석의 청년들과 스크린 안의 청년, 하민을 동시에 관찰했다.

요즘은 영화건 드라마건 예쁘거나 멋지게 나오는 것에 몰두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넘버원>에 등장하는 하민은 면도를 엉성하게 한 보통 젊은이다. 늘 같은 패딩을 입고 잠이 덕지덕지 붙은 표정으로 여자친구 려원(공승연)을 만나고, 회사에 출근한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보이고 부엌에 서면 침대가 보이는 원룸에서 연애를 하고 영업을 하기 위해 궂은일도 척척 해낸다. 전월세가 비싸다며 걱정하는 고달픈 청년들의 삶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하민 역을 맡은 최우식 배우의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흔 해를 넘게 살면서 지금껏 이렇게 많은 젊은 남성들이 우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관람석의 '하민들'은 어쩌면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 곁에 다가가지 못하는 하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엄마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공존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관람석이었다. 온기로 가득한 특별한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화가 완전히 끝나자 옆자리의 청년이 황급히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엄마."

가족에게 다정한 말 건넬 수 있는 명절 되시길
 극장에서 현실의 '하민들'을 만났다.
ⓒ 바이포엠 스튜디오
내내 울지 않았던 나는 영화가 끝난 후, 청년의 이 한 마디에 눈물이 났다. 이기적이다,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 우경화가 심하다, 극우에 빠져 산다, 능력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서부지법 난동에 참여한 20대 남자는 징역 5년형이라는 무거운 벌을 받았다. 그런 사례들 때문에 어쩌면 나도 모르게 젊은 남자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민과 은실을 보고 엉엉 우는 남자들, 영화가 끝난 후 울음을 삭히며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젊은 남자를 보며 어쩌면 내가 너무 쉽게 젊은 남자들을 공동체에서 배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할 우리의 청년들인데 큰 고민 없이 악마화하고 그들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집밥, 엄마밥의 또 다른 의미가 밝혀지는 영화 속 결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청년들도 실은 차마 말하지 못한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편 '시아마시야'는 영화 속에서 은실이가 자주 쓰는 말인데 '시어머니'를 의미하는 사투리다. 극중에서 하민이가 여자친구 려원에게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가 제일 힘든 난관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 앞에서 '시아마시야' 하고 말한다' 하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가사도우미를 하는 은실이 특별히 더러운 집 꼴을 보면서 "시아마시야"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작은 아이는 "시아마시야"라고 중얼거리며 소소하게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다. 식사를 차리기도 하고, 빨래를 옮기고 방을 스스로 치우기도 한다. 며칠이나 가겠나 싶지만 그래도 기특해서 웃음이 났다.

문득 자존심도 세고 부끄러움도 많은 청년들 대신 어른인 부모들이 이 글을 보고 "친구들이랑 봐라, 영화 재밌다더라. 같이 맛난 것도 사 먹으렴" 하고 문자로 모바일 티켓을, 계좌로는 용돈을 보내는 장면을 상상했다. 못 이기는 척 영화를 보고 와서는 밥상을 앞에 두고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부모를 마주할 청년들을 상상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대화를 단절하고 갈등이 커져만 가는 이 시기에 영화 한 편으로 실은 우리가 사랑하고 있음을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다정한 설연휴를 기대해 본다.

《 group 》 그럭저럭 어른 행세 : https://omn.kr/group/2025_adult
쩨쩨하고 궁핍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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