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힌 설날 현수막, 국민의힘은 왜 이 모양일까

이진수 2026. 2. 1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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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의 정치읽기] 설에 걸린 두 개의 플래카드에 드러난 보수 정당 최대 위기

[이진수 기자]

 우원식 국회의장과 현경병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 지역구에 게시한 현수막.
ⓒ 이진수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집 앞 사거리에 두 개의 정당 플래카드가 새로 걸렸습니다. 사진에서 왼쪽은 우원식 의원입니다. 5선이자 국회의장입니다. 오른쪽은 국민의힘 지역위원장의 것입니다. 언제부터 출마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낙선을 거듭해 온 원외위원장입니다.

두 플래카드가 굉장히 대조적입니다. 흑과 백만큼이나 정반대입니다. 대비만 되는 게 아닙니다. 저기에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의 정치가 그대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홍보물은 홍보하는 자의 머리와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골프장 지키겠다는 국민의힘

홍보물로서 두 플래카드의 문구와 디자인만 보면 이렇습니다. 우 의장의 플래카드는 고정 포맷을 그때그때 변용합니다. 핵심은 '현장민원실'입니다. 오래됐습니다. 국회의장이 되고도 우 의원은 거리에 전을 폅니다. 그리고 구·시의원들과 같이 민원 상담을 합니다. 설을 앞두고 있는지라, 인사를 넣은 것만 달라졌습니다.

국민의힘 플래카드는 이름과 얼굴 사진이 기본적으로 들어가고, 왼쪽에 배치하는 문구만 달라집니다. 이번 것은 유난히 시뻘겋습니다. 뭔가 공격적이랄까 선동적입니다. 하지 말라, 왜냐하면 주민에게 손해를 끼친다, 나아가 공공선을 해친다고 할 때 저렇게 플래카드를 만듭니다. 이번 것이 딱 그렇습니다.

디자인은 둘 다 구립니다. 글씨 수를 더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가독성이 좋습니다. 하지만 관계없습니다. 1년 365일 붙어 있는 거라, 지나다니는 사람들 다 읽었을 겁니다.

태릉엔 육군사관학교가 있습니다. 그 옆에 골프장이 있습니다. 군인들만 거기서 골프를 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골프장을 건드리지 말라는 겁니다. 교통대란을 일으키고 집값을 급락시키고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랍니다. 하나같이 동의할 수 없거나 사실과 다른 주장입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주거지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으레 저런 반대 민원이 제기됩니다. 인구가 늘면 당연히 교통은 혼잡해집니다. 그래서 교통난 해소 방안을 같이 세웁니다.

환경 파괴란 말은 골프장은 녹지인데, 녹지가 없어지니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군인들만 즐기는 골프장입니다. 제가 골프를 칠 줄 몰라서 그런지, 골프장을 보존해야 할 환경이라고 우기니 기가 찹니다. 지금 무주택 서민에게 골프장 환경 보존이 중요합니까? 주택 공급이 중요합니까?

무엇보다 플래카드 주인의 속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집값 급락이라는 문구입니다. 급락까진 몰라도, 집값을 하향 안정화하려는 정책인 것 맞습니다. 그런데 집값 안정이 싫다는 겁니다. 철저히 집 있는 사람, 자기 집값이 뛰길 바라는 계층을 옹호하는 정당 소속답습니다.

국민은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지지

재미있는 것은 그러면서 '부동산 정치질'이란 말을 스스로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동산 정책을 통해 어떤 이들은 자기 편으로, 또 어떤 이들은 반대 편으로 가르는 걸 '부동산 정치질'이라 하는가 봅니다. 저 플래카드 문구만큼 편 가르는 선동이 있을까 싶습니다. 설 명절에 인사는커녕 증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 플래카드는 지금 두 정당의 심리 상태를 보여줍니다.

홍보를 기획할 때, 가장 기본인데도 자주 까먹는 게 있습니다. 시간(T)과 장소(P), 계기(O)입니다. 모든 홍보꾼은 홍보 문구를 재미있게 또는 세련되게 또는 강렬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지다 보면 이 문구를 써도 되는 시기인지 아닌지 깜빡할 때가 있습니다. 다들 낙선해 당과 지지층이 울상일 때 혼자 당선되었다고 희희낙락하는 당선 인사 플래카드를 걸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후보가 있었습니다. 이 말을 해도 되는 장소인지, 아닌지 구분 못하면 초상집에 가서 술잔을 들고 건배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법입니다.

정치 홍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계기입니다. 상대 당이 어떤 정책을 내놓습니다. 이때 그 정책이 우리 당 지지층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예컨대 이명박이 정동영과 붙었을 때, 서울 북부권 재건축 활성화를 내걸고 '우리 모두 부자 됩시다'라고 외치며 선거 운동을 했습니다. 정동영은 수요 억제와 재건축 규제라는 당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대패했습니다. 민주당 찍던 이들조차 우리도 재건축 아파트 살아보자는 마음을 품었던 겁니다.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지금 국민 여론은 어떨까요?

주거 부담 완화에 효과가 있을 거라는 응답이 절반을 넘습니다(MBC, 2. 15 [여론조사] 정부 부동산 정책, 52% "효과 있을 것").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에 잘한 조치라는 응답이 65%, 보유세 강화를 찬성하는 응답이 57%입니다(KBS, 2. 13 국정 지지율 65%·부동산 정책은?…KBS 여론조사로 본 설 연휴 민심).

민주당 후보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한 2007년 대선과 지난 1년간 내란과 청산 과정을 거친 2026년이라는 계기의 차이란 이런 겁니다.

* 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해당 보도 하단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럴 때는 가진 자를 편 드는 당이라 할지라도, 민심의 흐름을 생각해 조심스럽게 발언해야 합니다. 안 그랬다가는 국민 다수를 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선거는 다수결입니다. 소수를 편들다가는 표를 더 까먹습니다. 국민의힘은 지금 국민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도 안 해본 채 그냥 자기들 생각과 심보 그대로 내지르고 볼 뿐입니다.

전략과 지도자 없는 초유의 보수 정당
▲ 장동혁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 오찬 회동 불참"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국민의힘은 왜 계속 이러고 있을까요? 전략이 없기 때문입니다. 2024년 12월 3일로부터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방향을 못 찾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 못 하는 모습, 다른 하나는 모든 언행이 화로 가득 차 있는 모습. 둘 다 보수 정당으로서는 치명적입니다.

보수 정당이 독자적 전략을 못 가지니, 전한길과 고성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전략가인 체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 언론이 했던 일입니다. 보수 정당이 고비에 처할 때마다, 보수 언론은 매일 사설과 논설로 당을 지도했습니다. 그러면 고위 당직자 회의에서 그대로 발언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언론이 받아서 기사화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것도 없습니다.

왜 국민의힘에 전략이 없을까요? 질문을 바꾸어보겠습니다. 왜 국민의힘은 자체적으로는 물론이고, 보수 언론이 짜주는 전략을 따르지 않고 있을까요? 제멋대로인 건 물론이고, 설득력도 없고, 논리도 박약한 플래카드를 걸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걸까요?

전략은 지도자가 있어야 비로소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전략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 지도자와 이를 지시받아 수행할 참모가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언론은 전략만 내놓아도 되지만, 정당은 전략과 지도자를 동시에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부재합니다.

장동혁 당 대표가 있는데 무슨 말이냐? 아닙니다. 장 대표는 지금 거의 꼭두각시입니다. 지도자로서의 자기 판단이나, 결단력이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 대통령과의 오찬 회담을 불과 1시간 전에 취소한 게 결정적 증거입니다. 전한길이 반대하고, 최고위원들이 말려서 그랬다고 합니다.

반대와 만류를 가볍게 뿌리치고, 청와대로 갔어야 합니다. 가서 따질 건 따지고,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 왔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보게 됩니다. '아, 1.5선에 불과한 허우대 멀끔하고 선동 연설 잘하는, 행시 사시 출신 수재만은 아니구나. 나름대로 결기도 있고 뚝심도 있구나'라는 평이 돌았을 겁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궁극적으로는 당원과 지지층을 향해 '나를 따르라. 이제는 유턴해야 한다. 윤을 버릴래, 나를 버릴래. 나 없이 이 당을 누가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한동훈한테 줄 거야, 유승민 믿을 수 있어?'하고 내질러야 합니다. 예전 김영삼이 그랬습니다. 1990년 3당 합당 후 당대표할 때, 민정계가 계속 뒤통수를 치자 '그래? 나 안 해' 집어 던지고 부산 내려가 버렸습니다. 결국 대선 후보 됐습니다.

장동혁은 김영삼을 배우라

그래야 이겨 먹을 수 있습니다. 왜? 지금 당원과 지지층에게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유죄 나올 거고, 지방선거는 참패할 게 뻔합니다. 이런 판국에 달리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국민의힘의 적은 당원과 강성 지지층입니다. 그들의 몰이성입니다. 이진숙이 대구 시장 후보 지지율 1위라고 합니다. 당원들이 윤석열이 저지른 내란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다, 막장까지 가버렸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못 믿겠다는 수준입니다.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한, 전략이고 지도자고 새로 못 만듭니다.

민주당도 시끄럽습니다. 당 안에서 때 이른 권력투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차기 당권, 나아가 대권 경쟁입니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두 배입니다. 일부 진보 언론이나 정치 고관여층, 여의도 정치권은 아주 걱정스러운가 봅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둘인지, 셋인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모르겠으나, 그중에 누가 제일 똑똑하고 유능한지 경쟁을 지켜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누가 대통령감인지 판단이 서겠지요. 정치라는 게 또 싸움 구경하는 맛 아니겠습니까?

이번 설, 지역마다 다음 시장 도지사 누구 뽑아야 하는지 식구들끼리 갑론을박하지 싶습니다. 그때 입 다물고 조용한 사람은 대개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보면 그리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역대 보수 정당의 최대 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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