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발견하는 희망... 인류에게 미래가 있을까?

김성호 2026. 2. 1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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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300]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성호 기자]

올림픽을 관전할 때는 이 대회가 표면적으로는 국가들 간의 경쟁이지만 사실은 놀랍도록 합치된 지구촌의 모습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대표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국기가 계양될 때에도 우선은 국민적 자부심이 솟구치겠지만, 인류가 그런 행사를 조직할 수 있다는 사실에 훨씬 더 큰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법하다. -165p

대륙 저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으로 한겨울이 뜨겁다. 선수들의 활약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롭다. 스포츠, 단련하고 경쟁하는 체육 종목 가운데서 삶과 사회의 진실한 면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적잖다. 각국의 명예와 국민들의 관심을 등에 업고서, 또 저의 지난 시간과 노력을 증명하기 위해 각자의 최선을 경주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어릴 적엔 올림픽을 그저 가장 큰 국가대항전이라 여겼다. 각국 최정예 스포츠 선수들이 대표로 출전해 다른 국가 대표들과 기량을 겨루는 장이라고 말이다. 한국 대표 선수가 승리하면 그저 내가 그와 같은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내가 이긴 것과 같은 기쁨을 맛봤다.

물론 그 반대편에서 패배의 아픔이며 슬픔조차 내 것으로 느끼는 때가 잦았다. 자연스런 반응이었을 테다. 스포츠의 근간엔 경쟁이 있고, 올림픽은 그 경쟁을 선수 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는 때문이다. 국가대항전의 성격을 가진 올림픽을 총칼이 아닌 스포츠로 벌이는 전쟁이라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올림픽은 동시에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국가 간 대결의 형식을 빌려와 벌이는 스포츠 축전이 있기까지, 필요한 제반 조건을 생각해보면 그 사실이 명백해진다. 이번 올림픽엔 처음으로 참가하는 아프리카의 베냉과 기니비사우를 포함해 모두 93개 국가가 참여했다. 세계 곳곳에서, 심지어 동계올림픽의 상징인 눈이 일 년에 단 한 차례도 내리지 않는 국가들까지 대표 선수를 파견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러 스포츠 종목의 표준화된 규정과 절차, 나아가 올림픽의 운영체제에 세계 여러 국가가 합의하고 있음을 뜻한다. 1회 파리대회부터 이번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있기까지, 102년의 시간 동안 인류는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표준을 확고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유지해왔다.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책 표지
ⓒ 김영사
인류 3부작의 완성, 시대를 진단하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년 9월 출간)은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이자 작가로 부상한 유발 하라리의 저술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명저 <사피엔스>부터 그 못잖은 평가를 받은 <호모데우스>, 그리고 이 책까지를 흔히 '인류 3부작'이라 부른다.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 지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진단한 일련의 작업으로 전에 없던 방식으로 인간과 문명의 일면을 바라보도록 이끄는 훌륭한 책이다.

그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3부작의 완성이다. <사피엔스>가 인류가 오늘의 문명을 이루기까지를 다루었고 <호모데우스>는 그를 바탕으로 문명이 이를 수 있는 미래를 넘겨보았다면, 이 책에선 인류가 당면한 현재적 문제를 살피고 돌파구를 모색한다.

유발 하라리 뿐 아니라 많은 석학들이 입을 모으는 인류가 처한 3가지의 중대 위기가 있다. 핵전쟁과 기후붕괴, 그리고 AI기술이 가져올 파괴적 변화다. 잘못되면 그 영향이 인류 전체의 절멸에 이르게 될 주요한 문제들로, 그 하나하나가 이미 파멸의 비등점에 도달해 있다는 징후가 선명하다. 충실한 대응이 아닌 외면으로써 전진을 거듭해온 인류의 현재 상황을 돌아보자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던 폴 베르제의 유명한 문장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

오로지 사는 대로 살아온 인류가 이제라도 파멸적 걸음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의 목소리가 출간 당시보다 7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더 긴박하게 들리는 건 저자가 진단하고 경고한 문제들이 하나하나 더욱 위중한 현실로 드러난 때문이겠다. 그럼에도 인류는, 우리 국가와 사회는 전과 마찬가지로 전면적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

인간 개인이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창피할 정도로 적다. 더욱이 역사가 진행돼가면서 개인이 아는 것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중략)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325, 326p

책은 21가지 키워드를 놓고 쓴 길고 진지한 에세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전작들이 보다 학술적이며 빅히스토리적 관점의 논설이었다면, 이번 책에선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기보다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오가며 인류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21개의 키워드는 ▲환멸 ▲일 ▲자유 ▲평등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 ▲테러리즘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 ▲부자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 ▲교육 ▲의미 ▲명상이다. 눈 밝은 이라면 인류가 처한 위협과 그에 대응하는 방안 마련을 위한 포석의 지점으로 해당 키워드들을 선택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미래를 구하다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인류의 미래가 없다는 인식, 변화를 위하여선 각국 시민들의 의식부터 일깨워야 한다는 판단이 책의 출발이자 목표가 된다. 제가 무지한지조차 알지 못하는 인간들, 또 독자들과 마주하여 오늘의 세상이 처한 위기를 전하는 유발 하라리의 태도가 그 긴박함과 달리 다정하게까지 느껴진다. 책을 쓰던 시기 막 터졌거나 발발의 징후가 엿보이던 전쟁들, 또 그 아래 깔린 민족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인식에 대한 비판 또한 세심하고 정밀하다.

흥미로운 건 인류가 처한 서로 다른 위기의 지점들이 실은 매우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 있다. 민족주의적 고립이 기후붕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거나, AI 기술이 불러올 미래가 인간을 더욱 어리석게 하고 민족주의적, 종교적 갈등을 야기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피부에 와 닿는다.

책이 다루고 있는 경고 중 상당부분은 현 시점 국제사회에서 갈등의 지점으로 표면화되고 있기까지 하다. 에너지와 북극항로, 민족주의적 갈등과 전쟁의 가능성이 모두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한 번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의 행보는 책이 전하는 우려가 모두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차 대전 이후 세워진 국제사회의 질서는 하나하나 무력화되고 있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노골적으로 탐내고, 가까운 국가들에게조차 전례 없는 관세를 부과하며, 대중은 세계시민이 아닌 각 민족과 국가, 종교의 일원으로 제 정체성을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책이 쓰였을 당시보다 세계는 명백히 더 암울하게 보인다. 또 다른 큰 전쟁의 가능성이 갈수록 커져가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 가운데 쓸모를 찾지 못하며, 공동체가 파괴되고 진실의 가치는 떨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세계가 새로운 고립으로, 더 폭력적이고 무지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기후붕괴와 AI 기술이 가져올 미래와 만나 더 암담한 세계를 불러올 수 있다.

민족주의적 고립은 십중팔구 핵전쟁보다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훨씬 더 위험하다. 전면적인 핵전쟁은 모든 국가를 무차별 파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막는 일에서는 모든 국가가 동등한 지분을 갖는다. 반면에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충격은 국가마다 다를 가능성이 크다. 어떤 나라는, 특히 러시아는 실제로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러시아는 해안 지대가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해수면 상승에 대한 걱정도 중국이나 키리바시보다 덜하다. 기온 상승만 해도 아프리카 차드를 사막으로 바꿔놓을 수 있겠지만, 동시에 시베리아를 세계의 곡창 지대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더욱이 북극 최북단에서 얼음이 녹으면 러시아가 지배하는 북극 항로는 세계 교역의 동맥이 될 수 있고, 캄차카 반도는 싱가포르를 대신해 세계의 교차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86p

그러나 나는 이 책에 희망의 단서 또한 있다고 믿는다. 2차 대전 뒤 인류가 구축한 체제가, 스스로 전쟁과 고립을 억제했던 역사가 그렇다. 저자는 올림픽으로부터 국가며 민족, 경쟁이 아니라 인류의 통합을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 인류는 서로 다른 사람과의 연결로, 소통으로, 통합으로 오늘의 문명을 이룩했다. 수많은 위기를 돌파했다. 좋은 것을 나누고 권장함으로써 더 가까워 보였던 나쁜 선택지를 제거해왔다. 이 책이 하려 했고 또 얼마쯤 해내고 있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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