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님, 저를 다시 초대하지 마십시오

오성훈 2026. 2. 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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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한 장이 강제 소환장으로... 교육 공무원에게 '불법의 언저리' 강요하는 후보들

[오성훈 기자]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20일 앞두고 광역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3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사람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정중한 소통 방식 중 하나다. 종이 한 장에 이름을 담아 건네는 일에는 나를 기억해 달라는 예의와 미래의 연결에 대한 기대가 서려 있다. 나 역시 교육 관련 행사에서 교육감 예비후보들을 만나면 기꺼이 명함을 주고받는다. 교육 현장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분들의 포부를 듣는 것은 현직 교장으로서도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 명함이 당혹스러운 '소환장'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비후보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에 초대되었다는 알림이 울린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백 명이 모인 방에 강제로 소환되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다. 선거라는 전쟁터에서 '세(勢)'를 과시하고 싶은 후보 측의 절박함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반복되는 초대 앞에서는 예의보다 무례를 먼저 느낀다.

1천 명의 광장, 30건의 소음

이런 무례는 개인적인 초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단톡방이 있다. 이 열린 광장에는 1천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학교 현장의 소식부터 교육 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이곳은 본래 소통과 공유를 위해 마련된 자리다.

하지만 선거철이 되자 이곳의 공기도 부쩍 탁해졌다. 익명 뒤에 숨어 특정 후보의 홍보물을 쏟아내는 이들 때문이다. 예비후보 등록이 본격화된 2월 초(9~13일), 대략적으로 집계한 결과 하루 평균 30여 건의 선거 홍보 메시지가 올라왔다. 정책 공약부터 언론 보도, 심지어 여론조사 결과까지.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은 있으나, 맥락 없는 일방적 투척은 정보가 아니라 공해다. 선의로 열린 광장이 누군가의 확성기로 변질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곤혹스럽다.

과잉 홍보 노출에 지친 한 참여자가 설날 연휴를 앞둔 13일 단톡방에 짧은 외침을 올렸다. "오늘밤 10시부터~설날 연휴동안 여기 문 닫자구요." 1천 명이 모인 광장에서 누군가 문을 닫자고 호소할 만큼 상황이 심각해진 것이다. 이 절규를 선거 운동을 돕는 각 후보 캠프에서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공무원의 중립, 선택 아닌 의무

법령은 명확하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의 정치운동 및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엄격히 금지한다. 특히 학교 현장을 책임지는 교장에게 정치적 중립은 직업적 생존이 걸린 문제다. 특정 후보의 캠프 단톡방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며, 이는 명백한 법적 논란의 소지가 있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선거와 관련된 자료 작성이나 정보 제공에 관여한 경우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07.11.15. 선고 2007도3061 판결). 비록 자발적 참여가 아닐지라도, 선거 캠프에서 운영하는 단톡방에 공무원의 이름이 올려져 있는 상황 자체가 해당 후보의 '세 과시'나 '선거 기획'에 이용될 여지가 있으며, 이는 위 판례가 경고하는 '부당한 영향력 행사'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초대가 될 때마다 즉시 방을 빠져나온다. 그것이 내가 지켜야 할 중립의 의무이자, 후보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뒤, 똑같은 후보의 방에 다시 초대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쯤 되면 실수가 아니라 강요다. 교육의 수장이 되겠다는 분들이 교육 공무원에게 사실상 '불법의 언저리'에 발을 담그라고 부추기는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책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후보자의 당연한 권리다. 다만 그 방법이 문제다.

첫째, 명함 교환과 단톡방 초대는 분리되어야 한다. 명함을 받았다고 해서 선거운동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 단톡방 초대 전 동의를 구하거나, 최소한 초대 메시지에 "참여를 원치 않으실 경우 자유롭게 퇴장하셔도 됩니다"라는 안내를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퇴장한 사람을 재초대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온라인 선거운동 가이드라인에 '동의 없는 반복적 단톡방 초대 자제' 조항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개 교육 단톡방의 경우 운영 규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선거 기간 중 동일 홍보 메시지는 일일 1회로 제한하거나, 별도의 '선거 정보방'을 개설해 원하는 사람만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소통의 장이 홍보의 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 단톡방 관리자는 선거 기간 전 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명확한 운영 원칙을 수립하고 공지해야 한다.

셋째, 후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되, '푸시(push)형'이 아닌 '풀(pull)형' 소통 방식을 택해야 한다. 공약집 웹사이트, 유튜브 채널, 온라인 타운홀 미팅 등 유권자가 능동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관심 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기술적 해법도 필요하다. 카카오톡은 단톡방 초대 시 '이 사용자로부터의 초대를 영구 거부' 옵션을 강화하거나, 선거 기간 중 대량 초대 감지 시 경고 메시지를 표시하는 등 기술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90% 이상이 사용하는 플랫폼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디지털 광장' 그 자체다. 카카오가 기술적 안전장치 마련에 손을 놓는 것은, 광장에서 벌어지는 소음과 폭력을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예의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면, 선거 또한 그 과정이 인간다워야 한다. 유권자의 일상을 무차별적으로 침범하며 세를 과시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타인의 고요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전제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꽃도 필 수 있다.

후보들에게 정중히 요청한다. 명함은 지지 선언문이 아니다. 내가 나간 방에 나를 다시 초대하지 말고, 열린 광장을 무분별한 홍보의 전단 더미로 만들지 말라. 그것이 당신들이 강조하는 '교육적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길이다.

나는 단톡방 밖에서 당신들이 내놓는 정책이 우리 직업계고 아이들의 고단한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보듬고 있는지 묵묵히 지켜볼 것이다. 디지털 소통 도구는 민주주의를 확장할 수도, 오염시킬 수도 있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쓸지는 결국 후보들의 몫이다. 나는 그 선택의 과정을 지켜보며 내 자리를 지키려 한다. 그것이 33년 차 교육자이자 학교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정치 행위라고 믿는다.

여러분의 단톡방은 안녕하십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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