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피라미드, 대단한 건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정윤섭 2026. 2. 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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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박물관 로제타석의 고대 상형문자를 해독한 장 프랑수아

2026년 1월 중순부터 열흘간 세계 4대 문명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나일강 문명의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 지역을 문명사적으로 생각해 보며 쓴 것입니다. <기자말>

[정윤섭 기자]

이집트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에 다섯 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침 일찍 호텔 숙소 밖으로 시조를 읊는 노인의 운율 같기도 하고 불경을 읊는 스님의 독경소리 같기도 한 이 소리에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20분이다. 이 소리는 한참을 읊조리다 그친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새벽 미명에 앰프방송 같은 곳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는 새삼 먼 이국 땅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집트는 인구의 약 90퍼센트가 이슬람을 믿는다. 이 이슬람의 역사는 7세기 무렵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고 로마제국이 차지한 이집트를 이슬람이 정복한 후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슬람교 외에 로마제국 시기 형성된 기독교의 일파인 콥트교가 이집트의 토착 기독교로 남아 10퍼센트 가량을 차지한다. 인구 1억의 나라에서 10퍼센트면 천만이다. 적지 않은 인구가 중동 아랍국가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 인구를 자랑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콥트는 고대 이집트인을 말한다고 하는데 현재는 콥트교를 통해 전승되고 있다. 콥트교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면 화려한 고대문화를 이룩한 이집트인들의 옛 시대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집트 하면 역사 시간에 배웠던 4대 문명이 떠오른다. 그 문명의 한 축을 만들게 한 것이 이집트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나일강이다. 그 나일강 문명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피라미드이기도 하다.

카이로 시내를 지나다 보면 마치 서울의 한강을 지나듯 시내를 관통하는 나일강을 볼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연중 약 30mm 정도에 불과한 비에도 나일강은 일년 내내 거의 같은 수위로 흐르고 있다. 이는 상류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강물 때문이다. 고대문명을 낳은 그 젖줄은 지금도 조금은 초라한 모습이 된 카이로 한가운데를 적시고 있다.
▲ 카이로의 나일강 문명의 젖줄 나일강은 지금도 연중 카이로 시내를 관통하며 흐른다.
ⓒ 정윤섭
나일강은 지금의 이라크에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연결하며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형성한다. 황량한 사막지대에서 한 마디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이다. 사람이 살 만한 곳에서 문명이 일어나고 땅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의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지도에서 보면 전혀 초승달 같지 않다가도 이 두 문명을 연결하면 초승달 같은 지형처럼 보인다.

카이로 박물관과 로제타석

카이로에서 고대 이집트의 문명을 직접 느껴보려면 가야 하는 곳이 카이로 시내에 있는 카이로국립박물관이다. 그리고 카이로 시내 서쪽 외곽에 있는 피라미드는 그 문명의 절정을 보여준다. 박물관으로 가다보면 클레오파트라 호텔이 있는 중심 로터리 광장을 지나가 이집트 역사의 히어로 클레오파트라를 생각나게 한다.
▲ 카이로 박물관의 석관에 쓰여진 상형문자 예술적이라 느껴질 만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 정윤섭
박물관에는 고대 왕국에서부터 발굴되거나 현장에 있던 유물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있다. 이곳에는 약 12만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돌로 조각된 인물상, 무덤의 석관, 비석 등이다. 2천~3천년 전의 세월이 깃든 유물들이 시대를 넘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 놀랍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무덤의 석관과 비문 등에 쓰여진 상형문자들이다. 동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는 돌판에 사실적으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인데 아주 작은 크기로 정교하게 그려낸 것을 보면 경이롭다고 할 수 밖에 할 수 없다. 그것은 거의 예술적 수준이다.

문자는 인간만이 남길 수 있다고 한다. 고대어인 상형문자는 동물을 형상화한 그 표현 방법 때문에 지금 보아도 당시의 상황을 어느정도 짐작하게 한다. 박물관의 여러 비문 중에서 눈길을 끌게 하는 것이 고대 문자 세계를 열게 한 로제타석이다. 이 로제타석의 실물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있지만 그 모형과 이 비문을 해독한 프랑스인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의 두상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 카이로박물관 로제타석 로제타석에는 세가지의 문자로 새겨져 있는데 이문자를 해독한 사람이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다.
ⓒ 정윤섭
로제타석에는 상형문자,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의 세가지 문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기원전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왕권을 확인하는 일종의 칙령이다. 상형문자는 해독이 불가능 했으나 이곳에 함께 쓰여진 그리스어(헬라어) 덕분에 상형문자까지 해석하게 된 것이다.

헬라어는 당시 이집트의 집권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헬라문화권 속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문자를 통해 당시 이집트는 국제문화교류가 빈번하였음을 알게 한다. 아직까지 카이로국립박물관은 고대 세계와 만나는 보물 창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불가사의
▲ 시내를 가다 본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워낙 거대해 카이로 시내를 가다 가도 쉽게 눈에 띈다.
ⓒ 정윤섭
이집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피라미드다. 카이로 서쪽 외곽지역에 거대한 피라미드 3개가 나란히 있다. 이 피라미드의 거대함을 실감하는 것이 산이 없는 평야 지대의 카이로 어느 곳에서나 쉽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집트는 조상들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이 피라미드 덕에 이곳은 이집트의 돈주머니가 되고 있다.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길은 도로를 확장하고 정비 하느라 한창이다. 입구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서는 차에 싣고 온 캐리어까지 다 꺼내어 공항처럼 검색을 받아야 한다. 사막 위의 무덤을 보러 가는데 이처럼 까다로운 게 귀찮고 짜증나지만 다 안전을 위해서라니 할 말이 없다.

피라미드 앞에 서면 인류가 만든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 거대함 속에 자꾸 더 불가사의한 의문속에 빠져든다. 높이 140m, 밑변의 길이 230m의 이 거대한 구조물은 지금의 수학공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 카이로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현장에서 보면 꼭대기가 잘 안 보일 정도로 그 거대함이 실감 난다. 이제는 어느 문명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함이 압도한다.
ⓒ 정윤섭
피라미드 바로 아래에서 꼭대기를 보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까마득하다. 피라미드를 만들 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수학공식을 활용했을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하지만 피라미드를 쌓아 올릴 때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려면 기울기를 알아야 하는데 오늘날의 삼각함수하고 할 수 있는 고대 이집트의 기울기 계산법인 세케드를 활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카이로의 대형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은 주전 2680년경으로 본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는 문명은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카이로의 피라미드는 인간의 신에 대한 도전 같다. 성서의 바벨탑 이야기처럼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인간의 욕망처럼 느껴진다. 죽음의 내세를 풀기 위한 이집트인의 욕망이 피라미드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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