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이글스 곡예비행 함께 타고 찍는다, 공군의 ‘하늘위 사진사’
지난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소재 컨벤션센터. 검은 독수리 형상의 항공기 8대가 창공을 일제히 갈랐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T-50B 특수훈련기가 진행한 에어쇼의 서막이었다. 이날 블랙이글스는 ‘아리랑’ 음악에 맞춰 다섯 개의 무궁화 꽃잎 대형, 폭포수처럼 강하하는 ‘레인 폴 기동’ 등 고난도 비행을 선보였다. 30분간 이어진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는 리야드의 푸른 하늘을 거침없이 수놓으며 행사의 백미로 회자했다.

이런 화려한 퍼포먼스 뒤엔 곡예비행의 찰나를 기록한 2명의 ‘항공전투촬영사’가 있었다. 블랙이글스 8번기 후방석에 탑승해 니콘Z8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누른 위인태(40) 원사(진)가 그중 한 명이다.
항공전투촬영사는 공군의 임무와 작전 훈련 등과 관련한 사진·영상을 기록하는 ‘하늘의 사진사’다. 전투기 조종사와 동일한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거쳐 선발하며, 공군 내에 8명 밖에 없다. 위 원사는 2019년 7월부터 7년째 공군 항공촬영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위 원사는 중앙일보에 “돌이켜보면 쉬운 임무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를 수 있었던 순간들은 조종사와 정비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임무를 완수한 전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위 원사를 지난 12일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블랙이글스가 중동 에어쇼에 참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려움은 없었나.
A : “현지 문화와 규정상 돼지고기가 제공되지 않는데,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식단이 해외 전개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또 대기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때면 혹시나 날씨가 달라져 촬영에 지장이 가진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결국 해외 전개에선 완벽하지 않은 조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Q : -‘항공전투촬영사’란 직업이 생경하다.
A : “17전투비행단 정훈실에 근무하다가 막연히 항공기를 타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다. 멀미를 참으며 비행기에 올랐던 날도 있었고, 기상 때문에 며칠을 대기하다가 곧바로 임무에 투입된 적도 있다. 사실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아 놀이기구도 못 탔다. 처음 항공 촬영 임무를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멀미였다. 초반 임무 땐 두려움이 커서 아예 식사를 못 했다.”

Q : -놀이기구도 못 타던 사람이 어떻게 전투기에 올라 촬영까지 하나.
A : “한 선배 촬영사가 ‘앞으로 너랑 임무하는 후배도 같이 굶길 거냐. 이제 적응해야 한다’고 말해 정신이 번쩍 났다. 사실 촬영에만 집중하다 보니 두려움이 자연적으로 없어졌다. 뷰 파인더에 눈을 고정하고 집중하다 보면, 어지러움이나 두려움을 잊게 된다. 촬영된 한 장면, 한 컷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대한민국 공군의 역사로 남는다는 책임감이 있다.”
Q : -특히 기억에 남는 비행이 있다면.
A : “2022년 KF-21(한국형 전투기)의 초도 비행 촬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지했던 항공기가 활주로를 따라 가속한 뒤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을 정확히 담아야 했다. 조종사와의 철저한 사전 협의, 선배의 조언 등 팀워크로 촬영을 완성했다.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 공중엄호(2020년),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 작전(2021년)도 기억에 남는다.” (※위 원사가 속한 공군 항공촬영팀은 이런 공로로 지난달 26일 ‘2025년 공군을 빛낸 인물·단체’ 도전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Q : -아찔한 순간도 있었을 텐데.
A : “2021년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 기여자를 한국을 이송한 ‘미라클 작전’ 때다. 카불 공항에 착륙할 때 조종석에서 촬영하고 있었는데, ‘록 온(Lock-on, 요격 미사일이 표적을 잡았다는 의미)’, ‘록 온’이란 경고음이 계속 들렸다. 실제 우리가 격추될 수 있다는 뜻으로, 최단 시간 안에 내려 다시 이륙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Q : -설 연휴에 가족과 함께하지 못 하게 됐다.
A : “이번 연휴뿐 아니라 연합훈련 때나 북한과의 긴장 상황이 이어질 때면 ‘5분 대기 모드’에 들어간다. 주말이나 명절에도 서로 위치를 공유하고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연락 체계를 유지한다. 이런 삶이 가족에게는 늘 미안하지만, 언젠가 내 아이가 내가 기록한 하늘을 보며 ‘아빠가 저 자리에 있었구나’라고 말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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