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허상]현지 거점 제안한 영진위 보고서…자본 빠진 청사진은 '탁상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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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한국영화 북미지역 진출 및 공동제작 활성화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는 위기의 한국 영화를 구할 해법으로 북미 진출을 제시한다.
대신 "국내 제작사가 현지 법인(LLC)을 설립하고 자격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법률·행정 절차 전반을 밀착 지원하는 기능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선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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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돈과 신용 없인 희망 고문"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한국영화 북미지역 진출 및 공동제작 활성화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는 위기의 한국 영화를 구할 해법으로 북미 진출을 제시한다. 그간 봉준호, 박찬욱 등 감독 개인의 역량에 의존했던 해외 진출을 정부 주도의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도는 낮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큰 탓에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특히 북미 거점 신설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보고서는 현지의 법률, 회계, 에이전시와 한국 창작자를 연결하는 '전문가 네트워크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업계는 이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과거 뚜렷한 성과 없이 실패로 끝난 해외 사무소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 거점들은 예산과 전문 인력 부재로 단순 연락 창구에 머물렀고, 정권 교체기마다 간판을 내리는 파행을 겪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제작자 A씨는 "할리우드는 인맥과 신용의 시장"이라며 "순환 보직되는 공무원이나 단기 파견 직원으로는 수십 년간 다져진 현지의 견고한 카르텔에 조금도 균열을 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간 전문가를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자율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세금만 축내는 '간판 갈이'에 그칠 것"이라고 일갈했다.
업계가 우려하는 또 다른 사안은 '시그니터리(Signatory)' 자격 획득 문제다. 현지 노조원을 고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이 절차는 국내 제작사들에 가장 큰 실무적 장벽으로 꼽힌다. 보고서 역시 이 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제시하는 해법은 현장의 기대와 다소 엇갈린다. 보고서는 "공공기관이 직접 '공공 시그니터리'가 되는 것은 높은 리스크가 따른다"며 선을 긋는다. 대신 "국내 제작사가 현지 법인(LLC)을 설립하고 자격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법률·행정 절차 전반을 밀착 지원하는 기능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선 대안을 제시한다.
업계는 영진위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갔다고 지적한다. A씨는 "영세한 국내 제작사들이 현지 노조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핵심 이유는 서류 절차가 복잡해서가 아니다"라며 "근본적인 원인은 신생 법인이 감당해야 할 고액의 이행 보증금과 사고 발생 시 책임질 자본력의 부재에 있다"고 밝혔다.
제작자 B씨도 "행정 절차의 문제로 접근해 컨설팅으로 풀려 하지만, 이는 돈과 신용의 문제를 서류 작성의 문제로 치환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확실한 자본 확충이나 보증 지원 없이 단순히 법인 설립 절차만 돕는다면, 영세 제작사들에 희망 고문만 반복될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보고서가 대안으로 덧붙인 '현지 전문가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방안 역시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할리우드의 핵심 인력은 단순한 명단 공유가 아니라, 막대한 수임료와 견고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연결망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협업을 끌어내기 어렵다.
B씨는 "북미 시장이 한국의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다는 보고서의 진단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으려면, 단순 매칭이나 행정 자문을 넘어선 공공 차원의 실질적인 자본 확충과 인적 인프라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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