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뽈터뷰] 이정효 감독 "상대 감독만 이기는 게 아니다, 관중의 기대치를 이겨야 한다"

[풋볼리스트=미야자키(일본)] 김정용 기자= "스트레스 많이 받을 거야. 근데 그런 스트레스도 필요해. 실제로 받아야 돼요. 겁나 받아야 돼요. 좋아하는 걸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건 축복이죠. 팬들은 스트레스 더 받잖아요."
이정효 수원삼성 감독에게 요즘 유행했던 '김동현 전지훈련 밈'의 유행어를 활용해 질문해 봤다. 그러자 이 감독은 축구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는 '축구 철학자'답게 농담을 진지한 잠언으로 승화시켰다.
이 감독은 광주 시절에 비해 인터뷰를 줄이고 있다. 당시에는 인터뷰와 출연 요청이 들어오는대로 대부분 소화하면서 광주 축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 2부 리그의 명문구단 수원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공식적으로 세 차례 인터뷰 일정을 잡아 미디어를 만났다. '풋볼리스트'는 그 중 세 번째 미디어 활동이 진행된 일본 미야자키에서 뜻밖의 단독 인터뷰 기회를 잡았다. 이미 많은 이야기가 오간 뒤였으므로, 감독 이정효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또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늘 그렇듯 이 감독은 열린 사고방식, 남다른 표현, 무엇보다 한시간 반에 걸친 긴 분량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 나도 선수 시절 나 같은 감독 만났어야 했는데
이 감독은 자기 팀에 없는 선수들도 챙긴다. 제자였다가 다른 팀으로 가 있던 최경록, 헤이스 등을 챙긴 것이 결국 광주 시절 영입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수원에서 재회하게 된 정호연도 미국에서 힘겨워할 때 여러 번 연락을 취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곤 했다. 정호연은 "감독님께서 '나는 너를 믿는데, 너는 왜 자신을 못 믿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에서 큰 힘을 얻었어요"라고 감사를 밝히기도 했다.
"저도 선수 시절 아파보고 소외돼 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알거든요. 선수 때 이정효가 지금의 이정효 감독을 만나면 얼마나 성장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제 주위에 있는 선수들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선수들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국가대표로 보내고 더 좋은 대우로 유럽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할지 늘 고민해요. 제가 선수 시절 못 해봤던 것들이죠."
▲ 일본은 이미 프리미어리그처럼 축구한다, 우리도 유럽을 지향해야 한다
이 감독은 선수들의 전술 습득 속도에 대해 불만이 있다. 그가 공개적으로 수원 선수단에 조언하는 원칙은 "볼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다"라는 것이다. "축구는 우리 편 11명이 서로 도와서 공을 상대방 골대 안으로 운반하는 경기죠. 그러려면 사람이, 즉 동료가 상대보다 빠르게 좋은 위치에 가 있어야 돼요. 그래야 원활하게 축구가 돌아가거든요." 그러다 일본 팀들은 하부리그나 대학팀일지라도 이런 원칙을 잘 수행하고 있다며 한국축구 전반적인 전술 수준에 대한 아쉬움을 밝혔다.
"제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계속 보는데, 그 템포가 너무 빨라요. 근데 일본 팀들은 프리미어리그의 터치와 선택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어요. 패스를 하나 주더라도 말이죠. 예를 들어서 제가 선수들에게 '패스에 마음을 담아라'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패스를 오른발로 주는지 왼발로 주는지에 따라 수비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고, 패스의 강도를 보면 흘릴지 받을지를 알 수 있어요. 이런 원칙을 일본은 실천하고 있어요. 일본은 유럽을 이미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일본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유럽을 목표로 했으면 좋겠어요. 일본이 목표라면 우리는 아시아 수준에서 못 벗어나요."
▲ 팬들은 너희들 서 있는 거 구경하러 오는 거 아니다
이 감독의 축구를 소화하려면 평소에나 경기 중에나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수원 선수들은 기존에 배웠던 축구보다 더 많은 전술적 디테일을 소화하느라 매일 머리가 아프다. 경기 중에도 마찬가지다. 선수가 90분 내내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눈치껏 쉬는 경우도 많다. 반면 이 감독은 포지셔널 플레이(positional play)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에 공의 위치와 경기 상황에 따라 11명의 위치선정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선수들이 공 없다고 방심하면? 광주 시절에도 그랬던 것처럼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다.
"선수들에게 숨 쉴 시간 없다고 해요. 숨을 쉬는 건 공이 나갔을 때, 그리고 전반전 끝나고 해라. 경기장 안에 공이 있을 때는 숨 쉴 생각도 하지 마라. 팬들은 너희들이 서 있는 걸 구경하려고 오는 것 아니다. 물론 쉽지 않아요. 그런데 끌고 가 보려고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려고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쉽게 가려면 공을 가져야 돼요. 공을 갖고 숨을 안 쉴래, 안 갖고 숨을 안 쉴래? 이렇게 묻는다면 공을 가질 때가 좀 편하겠죠."
▲ 아스널 축구에 가장 감탄한 이유, 모든 선수가 살아있기 때문에
숨 쉴 틈 없는 축구를 실천하는 팀이 현재 아스널이다. 이 감독은 겨울 휴가를 활용해 프리미어리그 3경기를 본 뒤, 원래 좋아하던 아스널의 현장 분위기에 더욱 압도당했다. 선수들에게도 축구를 보는 시야를 넓히려면 영국에 가서 아스널 축구를 한 번 보라고 권할 정도다.
"미켈 아르테타라는 감독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렇게 에너지 높은 문화를 만들었잖아요. 경기만 봐도 보여요. 팬들과 동료를 위해 또 우리 구단 직원들을 위해서 이렇게 뛰어야만 한다는 분위기가 딱 보여요. 예를 들어서 한쪽 측면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잖아요? 그때 반대쪽에서는 벌써 살아 있어요. 뭘 할지 알고 있어요. 몰입의 강도가 우리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라요."
▲ 국민학생 때부터 후배를 가르쳤다
지도자 이정효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감독에게 계기를 물어보면, 첫 번째는 타고난 탐구 성향을 이야기한다. 이 감독이 어렸을 때는 초등학생 선수에 대한 개인레슨 따위가 없었기 때문에 축구부 신입생을 선배가 가르쳐야만 했다. 감독이 "일주일 뒤까지 쟤 리프팅 100개 하게 만들어 놔"라고 지시했는데 신입생이 못해내면 선배가 맞는 식이었다. 그때 후배를 가르쳐야 하는 선배가 늘 이정효였다. 그때부터 후배를 잘 가르칠 방법을 줄곧 고민했다. 이는 첫 감독 경험이었던 아주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아주대를 이끌던 시절 축구부 새벽운동이라는 건 산을 막 뛰는 거였어요. 아니면 계단. 전 축구선수가 그걸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디서 배운 것도 없는데 열심히 구상해서 20가지 넘는 훈련 패턴을 만들었죠. 수비에서 공격까지 풀어 나오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제가 미국 농구(NBA) 시카고불스 팬이었는데, 농구에서 보면 마크맨을 끌고 나와서 동료를 자유롭게 해 주는 전술이 있잖아요. 그걸 참고해서 축구에 적용할 수 있도록 훈련패턴을 만드는 식이었죠. 농구를 참고하는 감독이 유럽엔 이미 많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 '비선출' 코치와의 만남을 통해 훌쩍 업그레이드
이 감독이 지도자 인생에서 두 번째 중요한 시점으로 꼽는 게 '동반자' 박원교 분석코치와의 만남이다. 제주SK 수석코치로서 P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던 즈음, 분석관으로 온 축구 마니아 출신 박 코치를 만났다. 당시 남기일 제주 감독도 박 코치의 신선한 시각과 분석 능력을 인정하고 적극 활용하며 이득을 본 바 있다. 그런데 이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박 코치와의 대화를 통해 아예 감독으로서 시각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광주부터 수원까지 동행하며 그가 깊이 신뢰하는 이유다.
"축구에 대해 열정은 있는데, 뭔가 막힌 느낌이었어요. 더 뭘 탐구해야 할지 몰라서 지루한 느낌이요. 이제 내 안에서 더이상 뭐가 안 나오나, 싶던 시기였죠. 그때 박원교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축구인이 축구를 이렇게 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수비 조련은 제가 세계를 상대로도 자신 있는데 공격 조련에 대한 생각은 크지 않았거든요. 그때 박 코치와 이야기하면서 흥미를 찾았어요. 축구를 보는 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갔죠."
이 감독은 전술적으로 발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이겨야 하는 건 축구인이 아닌 비축구인'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평소에 프리미어리그 시청하는 축구팬들의 눈높이가 K리그보다 너무 높다고 볼멘소리만 하지 말고,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경기력을 만들어야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그러기 위해 선수 출신이 아닌 코칭 스태프와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이 감독은 역대 K리그에서 손꼽히는 전술가로 만든 원동력은 그의 열린 사고였다. 명문 수원의 부활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도 열린 사고의 힘에 달려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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