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여자를 얻다 써?"... 막말 듣던 여자들이 서로를 지키는 법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 봅니다. 그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송주연 상담심리사·작가]
증권가의 비리를 파헤치는 여성 감독관의 활약을 다룬 첩보 드라마 tvN <언더커버 미쓰홍>. 이 드라마의 시대 배경은 1990년대 후반이다. 드라마의 첫 회부터 이 점이 참 의아했다. 굳이 드라마의 배경을 '옛날'로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스러워서다. 첩보원의 활약을 그리려면 아무래도 과거보다는 현재 혹은 미래 배경의 첨단 기술이 극에 생동감을 더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회가 거듭될수록 알 것 같았다. 이 드라마는 단지 코믹한 '첩보'드라마가 아니었다. 1990년대. 여성의 인권이 지금보다도 존중받지 못한 시대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매일 막말을 들으면서, 도구처럼 쓰다 버려지는 드라마 속 한민증권의 여사원들은 '미쓰홍' 홍금보(박신혜)와 함께 스스로를 지켜간다. 이 여자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내고 사회의 부정의에 대항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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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증권의 여직원들은 모두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
| ⓒ tvN |
이 여직원들의 역할은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을 '돌보는' 것이다. 식사 메뉴를 챙기고, 커피를 타 주고, 잔심부름하는 게 이들의 일이다. 회사에서는 가장 하찮은 존재 취급을 받는다. 2회 신임사장 취임식 장면에서 차중일 부장(임철수)이 너무나 당연하게 "고졸 여사원은 맨 뒷줄로 빠져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여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여우회' 조차 여직원들을 도구로 이용하는 통로가 된다. 여우회는 매년 우수 여직원을 선발하는 등 여직원들을 독려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우수 여직원의 계좌를 비자금 조성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심지어 이를 눈치챈 해당 여직원은 무참히 살해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여성은 '도구'로 다뤄지고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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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보와 복희는 서로 티격대면서도 필요할 때 힘을 합치고 돕는다. |
| ⓒ tvN |
스무 살 여상 졸업생으로 위장한 금보는 다른 여직원들처럼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근무 시간 내내 수시로 이런 말을 듣는다.
"커피 좀 타와."
"거기가 어디라고 앉아?"
"똑똑하고 노안인 여자애를 어디다 써?"
드라마 속 대부분의 여직원들은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이런 모욕을 참아내며 지낸다. 금보는 다르다. 작전상 필요할 때는 전략적으로 이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하다가도 선을 넘으면 돌직구를 날린다. 3회의 "여자들은 참 살기 편해. 미인계, 육탄전 이런 거 부릴 시대가 아닌데 그치?"라고 비아냥거리는 중일에게 "차중일 부장님. 그 입 좀 다무세요. 이제 그런 시대 아니니까"라고 응수하는 모습은 2026년을 살아가는 내게도 속 시원한 장면이었다.
금보는 어떻게 다른 여사원과 다르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금보가 나는 '증권감독관'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태도 아니었을까. 독립되고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금보는 자신의 가치를 가부장 조직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는다. 때문에 '막말'에도 주눅이 들지 않고 대응할 수 있었을 거다.
게다가 금보 곁에는 기숙사 룸메이트 3인방 복희(하윤경), 미숙(강채영), 노라(최지수)가 있었다. 고졸 출신으로 유일하게 사장 비서 자리까지 올라간 복희는 가정폭력 생존자다. 복희는 친오빠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를 자주 바꿔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미숙은 미혼모지만, 생계를 위해 딸 봄(김세아)을 보육원에 맡기고 기숙사 생활을 한다. 봄의 아빠는 임신 소식을 듣고 연락이 끊겼다. 둘은 모두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고생하는 처지다.
노라는 스스로는 원하지 않지만, 필범과 이혼한 엄마 인자(변정수)가 원해서 회사에 입사하고 후계자 구도 속으로 떠밀린다. 하지만 또 다른 후계자 후보인 필범의 손자 알벗(조한결)과는 처지가 다르다. 알벗 역시 스스로가 기업을 이어받길 원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본부장'이다. 하지만, 노라는 고졸 신입사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노라는 복희와 미숙과는 달리 기득권 세력에 속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도구'로 쓰인다는 면에서 역시 가부장 사회의 폭력에 노출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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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쓰 홍과 기숙사 룸메이트들은 비리의 온상 한민증권에 균열을 낸다. |
| ⓒ tvN |
연민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는 이들은 누군가가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는 연대해 힘을 모은다. 6회 가정 폭력범인 복희의 오빠가 출소해 복희가 두려워할 때 이들은 함께 대응하면서 서로를 돕는다. 때론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힘든 순간에 함께 해주는 이들의 자매애는 자기 자신과 서로를 지켜가는 힘이 되어 준다.
물론, 모든 여성이 이들과 같은 건 아니다. '명예 남성'으로 여성들을 더욱 도구로 대하는 송주란 실장(박미현), 그리고 오직 남성의 눈에 들어 딸을 이용해 부를 누리고자 하는 노라 엄마 인자도 있다. 이들은 어쩌면 가부장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도구화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일 테다. 하지만 6회 인자는 주란에게 "자기야 내가 남자한테 기대서 한심하게 사는 여자로 보여? 그럼 넌 나와 뭐가 다른데?"라고 말하듯, 이들 역시 남성 의존적인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앞으로 극이 진행되면서 이들이 자신을 세워가는 과정도 그려지면 좋겠다.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금보의 첩보전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갖고 당당히 대응하는 금보는 여성들을 '수동적'으로만 봤던 한민증권의 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처지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필요에 따라 힘을 모으는 여성 4인방의 연대는 한민증권 비리의 온상들에게 조금씩 타격을 주고 있다.
현실에서도 이런 여성들의 당당함과 연대가 있었기에 1990년대보다는 조금 더 평등한 오늘을 살게 된 것 아닐까. 이들처럼,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고, 타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면서 연대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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