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아파트' 때문에 이렇게까지... 부동산 광기가 불러온 비극
[김성호 평론가]
지난해 11월 홍콩서 있었던 웡 푹 코트 아파트 화재 참사를 기억한다. 노후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던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 8개 동 중 7개 동이 화재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입주민 무려 168명이 사망했을 만큼 대규모 참사였다. 홍콩 특유의 밀집형 건축물로, 50제곱미터 내외의 소형 세대가 다닥다닥 붙은 구조라 인명피해가 더욱 컸다. 당시 기준 5000명 가까운 입주민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된 여러 보도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한 여성 입주민이 다 타버린 아파트 앞에서 오열하며 '저 집을 사기 위해 평생이 걸렸다'고 인터뷰하던 모습이다. 수많은 이웃들의 죽음 가운데서도 불타버린 제 집부터 떠올리는 비정함이, 또 충분히 그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이 그 장면 가운데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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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홈 스틸컷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홍콩의 살인적 부동산 가격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소위 벌집 형태로 작은 집 하나를 여러 개 비좁은 공간으로 구분해 각 50만 원 내외의 월세를 받는 모습이 한국서도 수시로 보도됐을 정도다. 한국과 소득규모는 엇비슷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훨씬 비싸니 서민들의 삶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임금의 7할 이상을 월세로 지출한다는 사회초년생들의 이야기가 흔하다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펑하오샹의 공포영화 <드림 홈>이 제작된 지 15년의 시차를 두고 이달 한국에 개봉한 건 이 같은 현실에 기댄 것일 테다. 영화는 바다를 바라보는 홍콩 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극이다. 공포, 그중에서도 피가 튀고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서슴없이 연출하는 슬래셔 장르물인 영화는 제가 기대고 있는 것이 그저 그와 같은 폭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검은 화면 위에 떠오르는 하얀 글씨로 관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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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홈 스틸컷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영화는 더없이 충격적이다. 시작은 어느 아파트 경비실이다. 아파트 곳곳을 녹화하고 있는 CCTV 화면을 통제하는 공간, 그곳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여성의 실루엣을 한 침입자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경비원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영화는 이 아파트에서 연달아 벌어진 일련의 살인사건을 보여준다. 살인행위 그 자체를 자극적으로 연출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슬래셔, 또 바디호러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현 시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행위와 교차해 여러 과거 시점의 이야기를 관객 앞에 펼친다. 그 모두가 부동산, 그리고 아파트에 얽힌 행복과 불행의 조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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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홈 스틸컷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라이는 홍콩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맏딸이다. 부모님과 남동생이 있는 그녀의 삶은 오로지 홍콩 섬과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침사추이 지역의 아파트를 향해 있다. 홍콩의 상징이라고들 하는 빅토리아 항만에 솟은 번듯한 아파트는 성공의 상징이다. 살인적인 부동산 가격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에게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것이지만, 라이의 의지는 남다르다. 악착같이 벌고 다른 지출은 거의 하지 않으며 잔뜩 빚까지 당겨서 아파트 계약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수년 전 경제호황기에 거의 유행하다시피 했던 부동산 영끌족이랄까.
그녀의 꿈은 그러나 목표에 거의 다가선 상황에서 좌절된다. 라이에게 큰 빚을 내는 게 허용됐던 시기, 그 부동산 호황의 절정기는 오로지 그녀에게만 대단한 돈을 허락한 게 아닌 것이다. 세상엔 돈이 잔뜩 풀리고 고급 아파트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집주인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유리한 상황에 놓인다. 그런 상황을 악용한 집주인들은 가계약까지 체결한 상황에서 갑자기 집 가격을 50%나 올려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미 무리한 라이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요구다.
'미친 도시에서 살길 원하는 사람은 도시보다 더 미쳐야 한다'. 영화가 시작부터 선포한 그 말은 정말로 현실화된다. 라이는 물러설 수 없다. 아파트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게 곧 그녀의 삶이고 희망이며 욕구이자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인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무장을 한 채로 아파트로 돌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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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홈 포스터 |
| ⓒ 오싹엔터테인먼트 |
장르적 연출만 따져보자면 그리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건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범죄자로서의 제약점이자 그 자체로 파격적 시도일 수 있었을 테다. 안타깝게도 <드림홈>에선 파격보다는 제약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조시 호의 둔한 몸놀림으로 인해 흔히 홍콩영화에 기대하는 수준급 액션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살인자가 신체적으로 취약한 여성이란 점에서 남성 입주자들과의 격전을 더 긴박하게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부족한 액션소화력과 연출력은 도리어 장르적 쾌감을 해친다.
그럼에도 <드림홈>이 실패한 영화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일다. 영화의 두 기둥 중 다른 하나, 비현실적 부동산 가격과 짓눌린 인간들의 삶은 이 영화 가운데 제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있는 때문이다. 홍콩의 부동산은 가히 악마적이다. 그 악마성을 영화는 장르적 연출로써 관객 앞에 내보인다. 미친 세상에 당하기만 하는 비참한 삶과 그보다 더 미쳐버린 광기 어린 삶을 드러냄으로써 소실되는 인간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두 기둥 가운데서 이 기둥 만큼은 제법 굳건히 제 역할을 감당한다.
<드림홈>이 15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개봉에 이른 건 그래서 의미가 없지 않다. 영화가 담고 있는 홍콩의 현실이 그저 홍콩만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관객은 안다. 영화는 아파트를 손에 넣은 주인공의 모습 앞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러올 또 다른 참혹함을 덧씌워 이 비극이 결코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건 그저 홍콩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일생을 벌어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의 좌절감은 사회적 고민이 되어야 마땅하다. 살인적 자산가격 폭등에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다른 누구는 피해를 보는 일은 결코 마땅한 것이 아니다. 작게 보면 제도와 정책이, 크게 보면 체제와 구조가 모두 인간적 상상력의 결과다. 그렇다면 오늘의 현실을 바꿔내는 시도 또한 시민, 또 사회의 역할일 수 있다. 내 집을 꿈꾸는 일조차 공포가 되는 사회, 그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라서 나는 <드림홈>이 2026년 한국에 한 줌 유효함을 가졌다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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