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입틀막'에도 차분했던 앵커, 왜 장동혁에게 '목소리' 높였나
[이정환 기자]
"방송을 마치고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보니 고인은 영정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계셨다. 시사 프로그램의 특성상 시청자들에게 욕만 듣지 않아도 본전은 하는 것이다. 나와 내 부족한 방송이 고인에게 인생의 한순간 밝은 미소를 선물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헌화를 하는 순간 묵직하고 뜨거운 눈물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CBS 박재홍 앵커가 쓴 <뉴스의 눈물>(메디치미디어)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그가 진행하는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평소 좋아했던 애청자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소회, 저 역시 애청자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시에, 2024년 12월 4일 뉴스 특보 생방송 도중 헬기가 국회에 착륙하는 장면을 전하면서 저자가 흘렸던 눈물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평소 저자의 방송 이미지와 어울리는 에피소드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친절한 편입니다.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른 언론이 받아쓰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출연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나오도록 밀어붙이는 경우와도 그의 진행은 거리가 멉니다. 시청자의 이해를 돕거나 당연히 제기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연결'이 주로 이뤄집니다. 책을 통해 박 앵커는 자신의 좌우명을 "최선을 다해 일하고 친절하게 사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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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12월 4일 뉴스 특보 생방송 도중 헬기가 국회에 착륙하는 장면을 전하면서 박재홍 앵커는 울먹였고, 이 모습은 당시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
| ⓒ CBS유튜브갈무리 |
'기록의 열매', 즉 12.3 내란 사태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과정을 저자는 담담하게 전합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유명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후일담들이 분명 있을 텐데도, 저자는 일련의 과정을 친절하고 건조하게 전달하는데 충실합니다. 그 사이 사이에 느꼈던 소회를 전할 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2024년 12월 6일, 윤석열 퇴진 요구 시국 선언을 한 과정을 전할 때도 그러합니다. 그의 시국 선언문은 "윤석열은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하면 안 됩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윤석열은 퇴진해야 합니다"는 문장으로 끝납니다. 개별 언론인으로서는 처음이었던 시국 선언이었음에도 저자는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그마한 벽돌이라도 되길 바랐다"고 전하는 정도입니다.
그보다 앞서 윤석열 정부에서 서슬 퍼렇던 법무부로부터 '협박성' 공문을 받았을 때(2024년 3월 말) 상황을 전하는 분량은 다섯 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섬찟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텐데, 그런 소회나 감정을 전하는 것과는 '거리 두기'를 확실히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더 정교하게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시도했다... (중략) <한판승부>는 MBC 주요 시사프로그램과 더불어 방송통신심위원회의 제재와 경고를 가장 많이 받은 방송이었고, 심지어 윤석열 정부 법무부는 앵커인 내게도 <한판승부>가 다뤘던 법무부 관련 방송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는 엄포성 공문도 직접 송달했다. 소위 '입틀막(입을 틀어막는다)'의 시절이었다."
"장동혁의 윤석열 면회가 심각했던 지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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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BS 박재홍 앵커가 내놓은 책 '뉴스의 눈물'. |
| ⓒ 메디치미디어 |
다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나직했던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느낀 적이 한 차례 있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할 때입니다. "2025년 2월 22일 대전 남문 광장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란 장 대표의 발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저자는 "신도들이 많은 집회에서 나온 정치인의 일회성 연설 정도로 이해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 대표의 이같은 발언이 그 후 집회에서도 나타난 것에 대해 저자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 공직자의 헌법적 책임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초월적 신앙의 영역으로 덮어버리는 위험한 시도"라고 규정합니다. 특히 2025년 10월 17일, 장 대표가 윤석열을 면회하고 자신의 SNS에 "윤 전 대통령이 힘든 상황에도 성경 말씀과 기도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고 남긴 글에 대한 비판 강도는 높습니다.
"이 면회가 심각했던 지점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단순한 위로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법적 문제를 신앙적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영적 전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을 성경으로 무장한 영적 투사로 묘사함으로써, 법치주의에 입각한 내란 재판 과정을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고난'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하나님의 계획' 등 종교적 언어를 사용한 정치 세력의 단일 대오 강조는 브라질 복음주의 세력이 극우 포퓰리즘을 동원하는 방식과 완전히 궤를 같이 한다"면서 "<열대의 묵시록>(브라질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 - 기자 말)이 던지는 경고를 한국 정치 현실에서도 목도했다"고 전합니다. CBS 입사 면접에서 CCM을 불렀던 기억을 갖고 있는 저자 입장에서는 종교인으로서의 분노까지 숨기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지금이 왜 '분노와 불안의 시대'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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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12월 5일, 당시 한덕수 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리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며 한 기자의 현안관련 질문에 웃는 표정으로 "수고하십니다"라고 한 뒤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 ⓒ 권우성 |
"이 사건은 나에게 '올바른 보도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사실 앞에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다."
저자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분노와 불안의 시대', 언론계 전체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12.3 계엄의 밤 '평온했던 국무회의'를 돌아보며 저자가 강조한 '악의 평범성'이 더 의미심장하게 와 닿았습니다. 유대인 학살을 수행한 나치 전범이 일상적으로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저자는 이렇게 전합니다.
"악의 평범성은 악행이 특별한 증오나 잔인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복종과 책임 회피, 그리고 도덕적 무감각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악의 평범성, 그 구조적인 악을 인지하지 못한 무지 역시 민주주의의 적이요, 무지 자체가 죄인 것이다."
언론이 도덕적 무감각에 마비되면 악은 더 구조화되고 더 평범한 듯 보입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뉴스의 눈물'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극단의 진영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분노와 불안의 정서가 가득한 사회"에서 뉴스의 쓸모를 더 높이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퇴행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고 '박재홍 앵커의 눈물'은 또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저자가 '진영을 넘어' 던지는 이 질문이 나지막하지만 서늘하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당신은 민주주의자입니까?"
지극히 주관적인 추천 평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을 봤다면 ★★★★★
갈라치기 지긋지긋 ★★★★
손석희에 너무 꽂힌 앵커 지망생 ★★★☆
'당신은 민주주의자입니까?"란 질문에... '뭐? 어쩌라고?' ★☆
공공장소에서 신념을 확성기로 강요하는 방식에... '그래서,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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