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면제' 문구만 뗐다...충남·대전 통합법, '속도전' 위험하다

심규상 2026. 2. 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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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국회 행안위 대안 뜯어보니... 이름만 바꾼 '우회로'와 '권한 몰아주기' 여전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심규상 기자]

 민주당 주도로 충남·대전통합특별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 '대전충남 졸속통합 반대 범대전시민들'은 13일 오후 대전시의회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분권을 파괴한 민주당은 가짜 통합 졸속 법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충남과 대전의 통합을 바라보는 지역 민심이 심상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충남·대전통합특별법'을 발의한 이후인 지난 2월 5일부터 6일까지 <굿모닝충청>이 (주)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실시한 대전·충남 지역 여론조사에 따르면, 충남도의 경우 응답자 중 찬성은 56.1%, 반대는 32.9%였다(충남도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10명 대상, ARS 전화조사 무선 10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4%p).

반면 대전의 경우 통합 응답자 중 찬성은 36.5%에 그쳤지만, 반대는 55.2%에 달했다(대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3명 대상, ARS 전화조사 무선 10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정치권이 '4년간 20조 원 지원' 등 각종 당근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대전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예타 면제'는 사라졌나? 이름만 바꾼 '하이패스'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안(대안)
ⓒ 국회
'충남·대전통합특별법'의 골자는 단순하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덩치를 키워 지역의 권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수도권 일극 체제 대응'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20조 원 지원 보따리를 풀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법안의 원안(더불어민주당 제출법안, 대표발의 한병도 의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난개발'과 '속도 지상주의'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지난 12일 자정 무렵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한 대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개발'과 '검증 생략'이라는 우려가 '수정'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법안 원안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및 기간 단축' 특례(제22조)였다. '통합특별시장은 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업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예타 면제를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장관은 '예타 조사를 최대한 단축시켜 처리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국회 행안위가 대안으로 만든 특별법안 제153조는 '인·허가 등의 의제'에 관한 조항으로, 통합특별시장이 개발사업의 시행을 승인하면 관련된 다른 법령에 따른 인허가를 한꺼번에 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행정 절차를 파격적으로 단축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국회
예타는 시민의 피땀 어린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검증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브레이크'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예타 면제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남용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22조 원 규모의 4대강 사업을 위해 브레이크를 뺐고, 문재인 정부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수십조 원 규모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예타 면제로 통과시켰다. 윤석열 정부 또한 대구·경북 신공항의 예타를 면제하며 논란을 빚었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 동안 예타를 면제받은 사업만 수백여 건에 이르고, 1조 원 이상 사업도 35건(2025년 기준)에 달한다.

이처럼 예타를 건너뛴 사업들은 당장 '속도'는 얻었을지 모르나, 대개 그 대가로 '내실'을 잃었다. 경제성(B/C)이 부족한 사업을 정치적 논리로 밀어붙인 결과, 완공 후 운영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돈 먹는 하마'들이 늘어가고 있다. 실제로 예타 면제로 추진된 새만금 신공항은 생태계 훼손 검토 미비로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린 상태다. 검증을 대충하거나 생략하자는 통합특별법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오후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통합 시 매년 지원되는 5조 원에 대해서는 예타를 면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질의했다. 이에 대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행정 절차가 최단기에 마칠 수 있도록 협조하고 뒷받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다.

행안위 대안에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도로·철도 건설, 복합환승센터 구축 등 각종 사업에 대해 국가의 재정 지원과 계획 반영 의무를 명시했다. 국가도로망 종합계획이나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립 시 통합특별시의 사업을 '우선 반영'하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대안 법안은 충남·대전 통합특별시의 지향점을 '경제과학국방중심도시'로 정의하며, 이를 위해 규제 완화와 기업 활동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규제자유구역(제2조)'임을 명시하고 있다. 예타라는 브레이크를 아예 떼버리겠다는 원안의 무모함은 피했지만, 국가 계획에 미리 자리를 깔아줌으로써 사실상 검증 절차를 무력화하려는 '우회로'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시민의 혈세를 감시하는 안전장치를 '신속 추진'이라는 미명 아래 느슨하게 만든 셈이다.

원안 44개에서 대안은 41개로... 인허가 간소화

민주당 원안은 통합특별시장의 '시행 승인'만으로 수십 개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제78조 및 제79조)했다. 건축법, 도로법, 산지관리법 등 총 44개의 관련 법률에 따른 허가·인가·협의 등이 통합시장과 협의만으로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고 돼 있었다.
 국회행안위가 대안으로 만든 특별법안 제373조는 '산림이용진흥지구의 지정'에 관한 조항으로, 통합특별시장이 산림 자원을 활용해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직접 특정 구역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과 그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 국회
행안위 대안은 이 숫자만 41개로 소폭 줄였다(제152조). 시민환경단체는 "부처 간 협의나 환경영향평가 등 까다로운 검증 절차가 시장의 판단 아래 무력화되거나 형식적인 '장식품'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한다. 시장 한 명의 결단으로 복잡한 절차를 단숨에 통과시키는 '원스톱 하이패스' 권한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안에도 '산림이용진흥지구 지정(제373조)'을 통해 산허리를 자를 수 있는 권한을 시장의 손에 쥐어주었다. 환경단체들은 벌써부터 전망대와 케이블카, 모노레일이 산허리를 자르고 나무들을 베어내는 풍경을 걱정하고 있다. 개발의 전권이 시장 한 명에게 집중될 때, 국토의 지속가능성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사라진 광역의원 정수 '80명', 그러나 살아남은 '백지수표'

광역의원 정수를 현재보다 10명 늘려 '최대 80명'으로 못 박았던 원안의 조항은 대안에서 자취를 감췄다. 구체적인 숫자를 명시했을 때 쏟아질 '자리 늘리기' 비판을 피하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였다. 대신 대안은 '부칙 제3조(지역구 시·도 의원 정수 산정 및 선거구획정 기준에 관한 특례)'라는 장치를 남겼다. '공직선거법'의 일반적 기준을 따르지 않고, 통합의 취지와 지역적 대표성을 고려해 의원 정수를 '별도로 산정'할 수 있는 특례를 부여한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숫자를 숨겼으나, 실제 선거구 획정 단계에서 언제든 의원 수를 늘릴 수 있는 '백지수표'를 챙겨둔 것과 다름없다.

의원 1인당 1명의 정책지원 전문인력까지 배치하겠다던 원안은 '의원 정수의 2분의 1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로 수정됐다.

반면 주민투표 청구 요건은 '청구권자 총수의 30분의 1 이상 5분의 1 이하' 범위 내(인구 350만 명 기준 하한선 약 11만 명, 상한선 약 70만 명)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하여, 현행법(20분의 1 이상 5분의 1 이하)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장벽이 여전하다. 거대해진 집행부를 견제할 주민 직접민주주의 보완책에는 소홀했던 셈이다. 실제 민주당은 최근 대전시의회(국민의 힘 의원 다수)가 통합 여부에 대해 '주민투표'를 의결하자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에 대한 사안은 중앙정부의 권한이라는 점을 들며 주민투표를 실시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통합 과정에서 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소속 정당의 '거수기'에 불과했다. 의원 수 증원에 앞서 함량 미달 후보를 걸러낼 수 있는 공천 심의 강화와 직접민주주의 제고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의원 숫자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거대해진 통합시장의 권한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다.

주민 없는 '그들만의 통합', 처음부터 다시 물어야
 김민석 국무총리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결국 대안은 원안의 '예타 면제'라는 용어 대신 '국가계획 우선 반영'이라는 우회로를 택했고, 통합시장의 승인만으로 수십 개의 인허가를 해결하는 '하이패스 조항'을 유지했다. 의원 정수의 구체적 숫자는 숨겼지만 별도 산정의 근거는 단단히 챙겼다. 산림이용진흥지구 지정을 통해 산허리를 자를 수 있는 권한도 여전히 시장의 몫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통합 논의의 중심에 '주민'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치분권의 핵심은 주민 스스로 삶의 터전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는 시장의 권한을 비대하게 만드는 것을 마치 주민의 권한이 커지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정치권이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정부가 주민을 강제로 끌고 가는 형국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성별·연령·권역을 막론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히 논의하자'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대정부질문에서 "통합특별법안이 통과하지 못하면 그 영향은 주민들이 받게 된다"며 엄포를 놓았다.

정부와 민주당은 폭주를 멈추고 주민들과 마주 앉아 어떤 지역 공동체를 만들 것인지 기초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길 주민의 삶이다. 브레이크 없는 통합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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