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두고, 보험들기 전 유언장부터 준비하는 사람들

김주원 2026. 2. 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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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배우고 갑시다 ① ] 성소수자 삶의 주기 반영, 주기적인 점검 필요해

코스피 5천 시대라고 합니다. 설 연휴, 밥상머리에서 재테크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죠. 주식부터 경제상식까지, 기사로 '돈 이야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편집자말>

[김주원 기자]

설날 아침, 누군가는 떡국을 앞에 두고 가족끼리 덕담을 나눌지도 모르겠다. 법적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 있거나 원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탈가정한 성소수자들은 다르다. 우리의 명절은 공기 같은 차별과 배제, 그리고 비가시화된 정체성을 확인하는 연례행사에 가깝다.

"너도 이제 결혼 해야지, 애는 언제 낳을 거니. 평생 혼자 살다가 나이 들면 돌 봐줄 사람도 없이 어떡한다니."

부모와 친척들은 퀴어 당사자를 미완의 존재로 여기거나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생애주기 절차를 역행하는 이들로 규정한 채 묻는다. 아플 때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는 보호자, 내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자산을 온전히 이어받을 사람, 그리고 일상의 돌봄과 의료 결정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 일.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고민 없는 일들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이 질문이 더 선명하게 와닿는다.

퀴어 당사자이자 보험 설계사로 일하기 전, 유네스코 국제이해교육원, 사단법인 피스모모, 크리킨디 청소년 진로센터 등 평화활동가로 7년을 살았다. 활동가로 일하는 동안 배움의 기쁨과 보람도 컸지만 사회적 불안과 폭력적인 구조 앞에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이후 회복을 위한 시간과 지난한 탐색의 과정을 지나 보험설계사라는 새로운 직업에 정착한 지 어느새 3년차다.

이제는 퀴어 당사자이자 전문금융인으로 보험을 통해 필요한 이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퀴어 당사자에게 노후 준비는 결핍의 과정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겠다는 자립의 의지가 담겨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설 연휴가 다가왔다. 꼼꼼하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퀴어의 생애주기에 맞는 보험을 준비하려면 먼저 무엇을 살펴야 할까?

퀴어의 삶 반영한 보험
 신입 보험설계사를 위한 교육을 하는 필자.
ⓒ 김주원
1인 가구 혹은 동성부부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공동체에서 저축과 투자, 보험과 같은 3대 금융자산 포트폴리오의 균형은 존엄하게 나이 들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핵심적인 수단이다. 최근에는 출산과 양육을 계획하고 선택하는 퀴어 부부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개개인의 삶이 다채로워질수록 생의주기에 맞는 금융계획이 필요하다.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삶을 꾸리는 이들의 고민은 더욱 구체적이다. 십 수 년을 함께해온 연인 혹은 배우자를 위해, 혹시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상대방이 경제적으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보험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본래 보험은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해 서로 돕는다'는 공동체적 상호부조 정신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적 혈연이나 친족이 아니면 수익자 지정이 아예 불가능한 생명보험사가 여전히 많다. 그런 현실 앞에도 제도의 틈을 발견할 수도 있다. 혹시 모를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협력 변호사와 함께 법적 효력을 갖춘 유언장을 같이 준비하기도 한다. 이는 국가와 제도가 '아직' 승인하지 않은 관계를 당사자 스스로 실존적 삶을 통해 입증해 내는 여정이다.

퀴어 당사자와 파트너의 고민 외에도 시스템이 규정하는 성별의 문턱도 넘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성별 이분법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트랜스젠더(태어났을 때 의사 혹은 부모에게 지정 받은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 - 기자 말)와 논바이너리(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이분법 구분을 벗어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규정하는 사람 – 기자 말) 고객을 위한 상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가의 모든 행정 서류와 금융 계약서가 단 두 개의 성별 중 하나만을 지정하도록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을 때, 이분법의 경계를 넘는 퀴어 당사자들은 제도적 공백 사이로 미끄러지는 경험을 반복한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숫자를 변경하는 성별정정 절차를 마치고 보험계약 정보 변경을 신청할 때도 보험사는 이를 개인의 정체성과 청약 서류를 정렬하는 과정으로 보기보다 까다로운 심사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성별정정에 따른 수년 간의 보험료 추징 문제나 의료 기록, 성별확정 수술(Gender Affirming Surgery, GAS) 및 호르몬 처방 이력이 차별과 배제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고심한다.

성소수자 고객들은 나의 어려움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 퀴어 프렌들리한 병원이나 심리상담사, 변호사, 노무사를 수소문하고 알음알음 정보를 공유하고는 한다. 그러한 정보와 자원이 쉽게 닿지 않는 지역이나 개인은 필요한 서비스가 있어도 문의 단계부터 일찍이 포기하기 때문이다.

금융계약을 살펴볼 때 염두에 두면 좋을 다섯 가지를 담았다. 약관의 낡은 언어가 다채로운 삶의 조각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더라도, 그 행간에 숨겨진 삶의 맥락을 읽어낼 줄 아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가 살아갈 미래도 조금 더 든든하고 다정해질 수 있다. 소수자 친화적인 공간과 직업인을 굳이 찾아 헤매지 않아도, 언제 어디에서나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정리했다.

금융 안전망 체크리스트
 퀴어 당사자를 위한 보험을 설계하는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 김주원
불확실한 미래일수록 위험에 대비하고 안전한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주기적인 점검을 권장하는 5가지 가이드 항목이다.

1. [기초] 목적별 자산 분리와 주체적 노후 설계
- 예기치 못한 소득 공백이나 건강상의 위기에 취약할 수 있는 1인 가구 및 대안적 생활공동체일수록 자산을 용도별로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 비상금, 노후 연금, 보장 자산, 투자금의 비중을 점검하여 제도의 공백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재정적 기초를 쌓는 것이 첫 번째 출발점이다.

2. [관계] 보험 수익자 지정 및 관리
사망보험금 등의 수익자가 '법정상속인'으로만 되어 있다면, 내가 실제 삶을 공유하는 사람(파트너, 친구, 활동가 동료 등)에게 자산이 전달되도록 특정인을 지정해야 한다. 개인이 혼자 파악하기 어려운 규정과 절차가 있다면 금융전문가의 조력을 통해 관계를 입증하고 특정인을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수 있다.

3. [돌봄] 보험 지정대리청구인 제도 활용
사고나 질병으로 본인이 직접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비상 상황을 대비해 대리인을 미리 지정하는 보험계약 내 제도다. 퀴어 당사자뿐만 아니라 연로한 부모님을 둔 자녀, 스스로를 책임지는 1인 가구 내에서도 반드시 '의사 결정권'을 확보해야 한다.

4. [계약관리] 개인정보 변경 시 불이익 방지
성별정정이나 개명뿐만 아니라, 주소, 직업(직무)과 같은 개인정보가 달라졌을 때 보험계약의 효력을 유지하려면 정보를 갱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특히 정보 변경 전후의 보험료 산정 방식 차이나 과거 의료 기록이 변경 심사 과정에서 부당한 거절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소수자의 삶과 보험약관을 깊이 이해하는 금융전문가와 법적 알릴 의무와 고지 내용을 미리 상의하여 최신 기준의 고객정보를 반영하고 소중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안전장치] 법적 보완 장치와 보호
사회구조의 한계와 제도적 인정 여부와 별개로, 나의 자산을 지키고 법적인 보호를 더 하는 주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금융계약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후 자산 이전이나 상속 문제는 법적 유언장 공증과 신탁 상품을 병행하여 보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전문가와 법률전문가가 동행하여 복잡한 법적 절차를 함께 해결하며, 소중한 이에게 자산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조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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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stram on Unsplash
보험의 본질은 결국 삶이 가장 힘들 때 '곁'을 지키는 일이다. 생활동반자법이나 차별금지법, 혹은 또 다른 방향의 제도와 지붕을 짓는 동안에도,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촘촘하고 세밀하게 삶의 기둥을 세우고 기반을 다져야 한다. 이번 설,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가 정상성과 성별이분법이라는 낡은 질문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은 삶, 내가 선택한 동반자와 세계를 오롯이 지킬 수 있는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건 어떨까.

제도가 우리를 가족으로 부르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고 연대하며 일상을 지켜내는 공동체가 있다. 퀴어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들의 삶을 응원하는 친구, 가족, 동료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안전망 속에서 우리는 이미 더 큰 "가좍(온라인상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친근하게 지칭하는 표현)"을 꾸려가고 있다.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의 단순한 구분 대신, 변화를 꿈꾸는 주체 모두가 역할과 책임을 나누는 당사자가 된다.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고단함을 넘어, 이렇게 남기는 작은 투쟁과 일상의 기록들이 누군가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응원이자 이정표가 되리라 믿는다. 보험약관과 증권에는 다 담을 수 없는 고유하고 선명한 우리 존재의 안녕을 빌며 올 한 해, 모두 새해 복 듬뿍 받고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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