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5병 사들고 고시원 숨었다…매 맞던 아내 '마지막 12일'

김새별, 김현정 2026. 2.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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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왜 쓸쓸한 결말을 맞았을까요. 유품정리사 김새별 작가가 삶과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중앙일보 유료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가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0)
을 소개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새벽에 출발한 길은 퍼렇게 밝아지고 있었다.
밤새 쌓인 눈에 길이 미끄러울까 봐 천천히 달렸다.
짐칸이 빈 트럭은 눈길에 되레 취약하다.
엉금엉금 2시간 반이 넘는 거북이 운전이었다.

빛이 스민 거리는 밤새 내가 다른 나라로 왔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을 만큼 타국 언어로 된 간판들이 잔뜩 있었다.
아마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동네인 모양이다.
4층짜리 건물도 이질적일 만큼 낮은 지붕의 낡은 건물들….
그 사이 비좁은 골목들.

1층 문을 여니 문에 매달린 종이 시끄럽다.
이른 아침, 골목을 온통 깨우는 듯해 내 가슴이 쾅 내려앉는 듯했다.
종소리를 듣고 나온 사람은 40대 후반의 남성.

“안녕하세요. 청소업체에서 왔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 유튜브 구독자예요. 제가 저희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연락하셨을 거예요.”

현장은 고시원 건물이었다.
2층이 여성 전용, 3~4층이 남성 전용.
나를 맞은 사내는 고시원에서 살면서 입주자들 관리도 하는 듯했다.

“사장님은 서울에서 다른 고시원도 하시고 바쁘세요.
저에게 맡기셨으니 저와 상의하시면 됩니다.”

현장은 2층이었다.
여성의 죽음이다.
사내가 공동현관처럼 된 2층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입실한 지 얼마 안 되는 분이 돌아가셨다고….”
다른 입주자들이 아직 출근하기 전 시간이라 소곤소곤 물었다.
“네, 딱 12일 만에 그렇게. 들어오고 2주도 안 됐죠.”

꼼꼼한 관리인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이 좀 더 극적이었다.

이지우 디자이너

여성이 입주하고 2주가 되기 전 일부러 마주쳤다고 한다.
전입신고 여부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14일 안에 안 하시면 과태료니 뭐니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또 이런(?) 지역이라 누릴 수 있는 이런저런 혜택도 있으니
전입신고를 꼭 하시라.”

“여긴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선불이에요.”
그런 동네였다.
얼마간의 현금만 쥔 알 수 없는 사연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먼 나라까지 험한 일로 돈 벌러 온 외국인도 있고,
이 나라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이들도 있다.
다들 정처 없는, 정체 모를 이들이 머물다 떠나곤 한다.

관리인이 방문을 열고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갑자기 환해진 탓에 시야가 새하얘졌다.
눈을 몇 번 깜박이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죽은 자의 공간이 서서히 색을 띠고 떠올랐다.
방은 깨끗했다.

“바로 발견되셨다고요?”
“제가 대표님 유튜브 영상을 많이 봤잖아요….”

친절한 만큼 다소 말이 많았다.
그가 털어놓은 그날의 상황은 이랬다.
이틀도 안 지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내 유튜브에서 사례로 들었던 어떤 ‘상황들’을 자신이 주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자랑이었다.

전입신고를 했는지 물었던 날,
여인은 술을 여러 병 사 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가던 참이었다.
약간의 술 냄새가 감도는 건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추측도 가능했던 것이 그녀가 대뜸 묻지도 않은 내밀한 사연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남편 피해 도망 나온 거예요.
그런 판에 전입신고를 한다는 게, 좀….”

말을 건 게 미안했다.
“아, 네….”
‘툭하면 의심하고, 때리고….’
혼잣말인지 대답인지 모를 말을 뱉으며 그녀는 무시하듯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소주 5병을 들고 사오던 그날 밤 사고가 터진 것이다.

(계속)

“그날은 ‘그 소리’가 안 들렸습니다”

관리인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입주 후 12일 동안, 얇은 고시원 벽을 타고 밤마다 흘러나온 그 소리.

관리인이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그 이상 징후는 무엇이었을까.

소주 5병을 들고 방으로 사라진 여인, 그리고 그날의 정적.
또 그녀의 죽음 직후, “물건은 다 버리라”며 고시원에 연락한 그는 누구였을까.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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