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대리·탁송 중 이게 최고" 월 500 버는 前삼성맨의 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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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기대수명은 83.6세로 일본·스위스 이어 OECD 3위입니다. 통상적 은퇴연령(60세) 이후에도 20년 이상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죠. 흔히 은퇴를 외로움 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환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꼼꼼히 설계하면 진짜 ‘골든 라이프 ’의 문을 열 수도 있습니다. 더중앙플러스 ‘은퇴 Who’에선 은퇴 시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 해결법, 벤치마킹할 만한 새로운 취미 등 은퇴 세대를 위한 맞춤형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60
」
2006년,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나는 재직 중이던 삼성전자로지텍에 사표를 던졌다. 부장은 내가 내민 사직서를 빤히 쳐다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 넌 참 용기가 대단하구나. "

비꼬는 말이든, 진심이든 상관없었다. 흔히 퇴사에 용기가 필요하다지만, 난 회사를 더 다닐 용기가 없었다. 회사는 악몽 같았다.
왕복 4시간의 지옥철 출퇴근, 새벽별 보고 나가 밤별 보며 귀가하며 주말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 ‘까라면 까’ 식의 경직된 조직 문화 역시 내 자유로운 성정과 어울리지 않았다. 통장에 찍히는 월 300만원의 급여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눈뜬 얼굴이 더 보고 싶었다.
‘내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
내 인생 2막은 이런 오기(傲氣)로 시작됐다. 이른바 ‘강남 8학군’에서 자라 미국 유학을 가 아칸소대 경영학 석사(MBA)까지 취득해 남부러울 것 없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나였다. 아무리 대기업이라지만, 여기서 그만둔다고 내 삶이 무너질 리 없다. 내 앞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퇴사 후 나는 회사 코앞에 골목에 작은 술집을 차렸다. 테이블 6개가 전부인 8.7평짜리 공간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얼마나 가겠어?’라며 비아냥댔지만 난 보란 듯이 성공했다. 3년 만에 연 수익 1억원을 찍었다. 10년 정도 지나니 한 골목에 내 가게는 세 곳으로 늘었고, 내 별명은 ‘수원 백종원’이 됐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쳤다. 무리하며 확장했던 가게는 고스란히 빚더미가 돼 쫄딱 망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내에게 차마 망했단 말은 못했다. 낮에는 배달 라이더로,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가져다줬다.

‘삼성맨’도 성에 안 차 과감하게 사표를 썼던 미국 석사 출신 김도현(58)은 결국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났다. 3번의 창업과 3번의 폐업을 겪은 뒤 지금 내 직업은 ‘프로 N잡러’다. 이 과정에서 ‘절대 망하지 않는 생존 기술’까지 체화했다. 그렇게 매달 땀에 젖은 돈 500만원을 벌어오는 가장으로 당당히 살고 있다. 20년여간 취업·창업·프리랜서까지 전업에 전업을 거듭하며 인생 2막·3막을 열어낸 나의 생존 기술을 모두 공개한다.
■ 은퇴Who 37회 〈목차〉
「 📌초보 장사꾼이 연 수익 1억 찍은 비결
📌‘프로 N잡러’가 뽑은 최고의 부업은?
📌‘위기를 기회로’ 이 국가 자격증 꼭 따라
📌가장의 무게, 아들이 간직한 명함 한장
」
「 초보 장사꾼이 연 수익 1억 찍은 비결 」
실패가 쌓일 때마다 난 아내에게 비밀이 많아졌다. 식당을 폐업했을 때는 물론, 회사에 사표를 던졌을 때도 한동안 아내에겐 말을 못 했다. 매일 아침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척 집을 나섰다. 신용대출 2500만원을 받아 매달 월급날이면 아내의 통장에 자동이체로 입금했다.
그리고, 대낮 벤치에 멍하니 앉아 나에게 물었다.
‘이제 뭐 해 먹고 살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답은 장사였다.
" 어릴 때부터 식당에 가면 메뉴와 서비스, 가격 분석하는 게 재밌었거든요.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었기에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시험 준비하듯이 한 달간 도서관에 틀어박혀 외식업·창업 관련 도서 50권 이상을 독파했습니다. "

일단 책으로 이론을 다진 뒤, ‘장사 선배’를 무작정 찾아다녔다. 각종 창업박람회, 프랜차이즈 사업설명회 등을 빠짐없이 참석했다.
" 잘나가는 가게는 물론, 망해가는 가게 사장님들도 붙잡고 물었어요. 일본에서 유명한 꼬치 집에 가서 레시피를 배우려고 사정사정한 적도 있고, 남대문 30년 전통 포장마차엔 손님인 척 들어가서 음식 비법을 캐물었다니까요. 하하 "
상권을 분석하려고 온종일 한자리에서 시간대별·연령별 유동인구를 파악하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이 과정이 즐거웠다. 그렇게 사표 쓴 지 1년 만인 2007년, 경기도 수원에 어묵 전문 주점을 차렸다. 이전 직장이 코앞에 있었다.
" 겁도 없이 부모님 집을 담보로 대출받고 동창에게, 돈 1억원을 빌려 시작했어요.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손님=왕’으로 모셨죠. 혼자서 요리에 서빙까지 아무리 바빠도 늘 손님 나가시면 문 앞까지 가서 배웅했어요. 손님 취향에 따라 음악, 조명 등 분위기까지 섬세하게 조절했죠. "

내 가게인 줄 모르는 회사 선후배들도 종종 들이닥쳤다. 나보다 한참 아래 회사 후배를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할 땐 “배알도 없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어쨌든 우리 가게는 맛과 서비스로 입소문을 타 창업 3년 만에 연 수익 1억원을 찍었다. 기세를 몰아 나는 2012년, 2014년 같은 골목에 꼬치 전문 주점과 포장마차 주점을 연달아 열었다. 2018년엔 성공 창업기를 담은 책(『삼성 때려치우고 인생 가게로 먹고살기』)을 냈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모든 게 순조롭다 생각했던 그때 갑자기 불운이 닥쳤다. 코로나19가 창궐하자 정부는 집합금지와 영업제한 조치를 내놨다. 직장인들의 ‘2차 회식’ 장소인 우리 가게는 직격탄을 맞았다. 어떻게든 가게를 살려 보려고 혼자 배달까지 뛰며 몸부림을 쳤지만 매달 1000만원 이상 마이너스가 났다. 가게가 세 곳이었으니 고통도 세 배였다. 2020년, 2021년 그리고 2024년 8월, 나는 가게 세 곳을 차례로 폐업해야 했다.
「 배달 vs 대리운전 vs 탁송, 최고의 부업은? 」
" 코로나로 우리 집만 망한 게 아니었어요. 당시 온라인 자영업자 카페에 들어가 보면 그야말로 ‘누가누가 더 불행한가’ 배틀을 벌이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전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아직 10대인 두 형제의 학원비, 생활비를 대야 하는 아빠니까요. "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N잡러가 됐다. 낮엔 배달 라이더로 달리고, 새벽엔 대리운전을 했다. 종종 탁송(차량 배송) 서비스도 뛰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처절했던 건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였다.
(계속)
밤낮없이 몸을 갈아넣던 프로 N잡러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최고의 부업은 배달·대리·탁송·물류 중 무엇이었을까.
절대 망하지 않으면서 매달 500만원을 버는 비결, 아래 링크에서 공개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6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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