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청춘에게 필요한 '유해진의 밥상'

이인혜 2026. 2. 13. 13:4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영화는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배지에서 찬밥 한 덩이조차 목구멍으로 넘기기 힘든 어린 단종을 위해, 엄흥도가 건네는 투박한 위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상 장면으로 이어진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인혜 기자]

- <왕과 사는 남자>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이다. 경제 한파까지 겹쳐 마음의 온도마저 영하로 떨어진 2026년, 명절을 앞둔 설렘보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비장함마저 감돈다. 승자만이 기억되는 이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실패한 이들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 그 실패를 다루는 방식이 사뭇 다른 영화가 있다. 바로 <왕과 사는 남자>다. 영화는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단종의 숨겨진 이야기를 최초로 그린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장항준 감독은 다수의 매체 인터뷰에서 작품의 연출 의도를 "실현되지 못한 정의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자 "실패한 의(義)에 대한 진정한 추모"라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그 쓸쓸해야 할 '정의의 뒷모습'이 영화 속에서는 의외로 따뜻하고 든든하게 그려진다는 사실이다. 그 등 뒤에 엄흥도라는 '진짜 어른'이 서 있기 때문이다.

촌장 엄흥도(유해진)가 유배된 단종(박지훈)을 바라보는 시선은 충심을 넘어선다. 유해진은 디지틀조선TV 인터뷰에서 이 시선을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자,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어른의 마음"으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유배지에서 찬밥 한 덩이조차 목구멍으로 넘기기 힘든 어린 단종을 위해, 엄흥도가 건네는 투박한 위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상 장면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그가 아이디어를 냈다는 물놀이 장면 속, 아이처럼 웃는 단종을 바라보는 엄흥도의 눈빛 또한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극이 아닌, 세대를 뛰어넘는 '연대'의 드라마임을 증명한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엄흥도는 신변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단종을 먼저 걱정하며 시신을 수습한다. 그것은 '폐위된 군주'에 대한 맹목적 예우가 아니라, '미처 피지 못하고 꺾인 젊음'에 대한 기성세대의 위로였다. 끝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고 만 그를 마지막까지 책임지려 했던 그의 태도는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인간의 품격'으로 남는다.

영화는 묻는다. 과연 우리 시대에 '상처 받은 청춘'의 뒷모습을 안아줄 어른은 존재하는가. 이번 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에게 성취를 묻는 날 선 질문 대신, 조용히 따뜻한 밥 한 끼를 돌려주는 건 어떨까. 비극을 막을 힘은 없을지라도, 그 추운 겨울 속에 홀로 남겨진 이들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것. 역사가 충신이라 기록한 그 자리에, 영화는 '따뜻한 밥상' 같은 위로를 새겨 넣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12년 차 대중문화 에디터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