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잘 풀리지 않던 어느 날, <사기열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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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선 기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던 어느 날, 문득 책장 한켠의 <사기열전>(2020년 8월 개정판 출간)이 눈에 들어왔다. 중학생 때 삼국지 게임으로 중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삼국지는 물론 수호지, 초한지, 열국지 같은 중국 고전을 탐독하며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갔다. 지금도 가끔 삼국지 인물을 통한 인생지침서를 읽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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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기열전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 ⓒ 민음사 |
"착한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정의롭게 살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와, 도적질을 하며 천수를 누린 도척. 사마천은 "하늘은 과연 선한 자를 보살피는가?"라는 질문으로, 인간사 전체를 꿰뚫는 문제를 제시한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야 천 리 길을 갈 수 있다."
공자의 입을 통해 백이와 숙제의 의로움이 세상에 퍼졌듯, 덕을 실천하는 이도 그 뜻을 이어줄 '천리마' 같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덕행을 쌓아도 참된 인연(책에서는 군자, 선비라 칭한다)을 만나지 못하면 이름조차 남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성인이 나타나야 만물도 다 뚜렷해진다."(80쪽)
<백이열전>은 "착하면 복을 받는다"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교훈을 뒤집는다. 어쩌면 사마천은 덕을 지키는 삶이 반드시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사실을 드러내며,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려 했던 듯하다.
사기열전은 모두 7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법가의 상앙과 한비자,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굴원의 <어부사(漁父詞)>를 상당히 좋아한다. 곳곳에 공자·노자·장자의 사상이 이어져, 유가와 도가가 교차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내게 가장 깊이 남은 편은 시작의 <백이열전>과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제69편 <화식열전(貨殖列傳)>이다(70편은 '태사공자서'로, 사마천 자신의 이야기다). <화식열전>은 오늘날에도 통할 '부(富)'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재물과 인간의 품성에 대한 사마천의 철학이 또렷이 드러난다.
"군자가 부유하면 덕을 즐겨 실천하고, 소인이 부유하면 자기 능력에 닿는 일을 한다. 못은 깊어야 고기가 있고, 산은 깊어야 짐승이 오가며, 사람은 부유해야만 인의를 따른다. 창고가 가득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사기열전2 802쪽)
사마천은 재물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으며, 부를 얻는 길에도 '고정된 직업'이 없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능력을 발휘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재화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도리라 제시한다. 놀라운 것은, 이 2천 년 전의 통찰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점이다.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동양고전을 찾는다. 고전을 읽는다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않는다. 다만 잠시 숨을 고르고,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수천 년 전 인물들의 기록 속에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인간의 욕망과 고뇌가 담겨 있다.
사기열전은 두껍다. 읽는 데 시간이 걸린다. 70개의 열전을 읽으며 종종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안에는 인생의 해답이 아니라, '수천 년 전에도 같은 고민과 어둠을 지나간 이들이 있었다'는 위안이 있었다. 그 사실이 지금의 막막함과 조바심을 조금은 덜어준다.
사기열전의 오래된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시대의 기록이지만, 그 속에는 오랜 세월을 건너도 변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나는 그 물음 속에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퍼즐을 천천히 맞춰본다.
아마 10년 뒤 다시 이 책을 펼친다면, 그때의 나는 또 다른 감정으로, 또 다른 대답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긴 동양고전을 덮는다.
"재앙은 알 수 있지만 복은 알 수 없다." (5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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