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조 치매머니, 국민연금이 관리…공공후견인 1600명 증원
80대 A씨는 10여 년 전부터 치매를 앓게 됐다.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온 A씨는 치매가 악화하자 가사도우미 B씨에게 일상생활을 의지했다. B씨는 종종 A씨 대신 은행 일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계좌 비밀번호를 알게 됐고, 은행 카드도 자유롭게 손댈 수 있었다. B씨는 A씨가 사망할 때까지 약 14억원을 빼돌렸다. A씨 주변에 그의 재산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치매 환자의 재산을 공공신탁을 통해 국가가 위탁받아 안전하게 관리하는 제도가 올해 처음 시작된다. A씨처럼 치매를 앓는 이들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12일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제5차 치매관리 종합계획(2026~2030)’을 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공공신탁 제도인 ‘치매안심재산 관리지원 서비스’를 오는 4월 시범 사업으로 도입하고, 2028년 본사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치매 환자 본인 또는 환자의 의사를 반영한 후견인이 국민연금공단과 신탁 계약을 체결하고, 공단이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서비스 이용에 재산이 지출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특별 지출, 계약 철회 등 계약과 관련한 중요 사항은 치매재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된다.

치매 환자와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진단자 등 재산 관리에 위험이 있거나 위험이 예상되는 기초연금 수급권자가 대상이다. 신탁 계약 체결 당시 본인이 의사 결정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고위험군을 우선으로 올해 750명을 지원하고 2030년까지 1만1000명 이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시범 사업은 지원 범위를 현금·지명채권·주택연금 등으로 한정하되, 향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지난해 국내 치매 환자는 97만명,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는 298만명으로 추정된다. 2030년이면 각각 121만명, 368만명으로 급증하고, 2050년엔 226만명, 569만명으로 뛴다. 2050년이면 총인구(4736만명)의 16%가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를 앓는다는 얘기다.
치매 환자가 늘면서 이들이 보유한 자산(‘치매 머니’)도 2023년 154조원에서 2050년 488조원으로 불어난다. 치매 머니는 돌봄 인력이나 가족 등에 의한 경제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민간 금융사에도 신탁제도가 있지만, 치매 환자의 신탁은 받지 않아 공공신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치매 발병 전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민간 신탁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신탁 재산 범위의 확대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치매 환자의 법적 의사 결정을 돕는 공공 후견인을 확대하기 위해, 지원 규모를 올해 300명에서 2030년까지 19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치매 검진 체계도 개편한다. 치매안심센터에서 검사가 가능하도록 진단검사법을 개발해 2028년부터 적용한다. 지역사회 의원을 중심으로 지속 관리하는 치매 관리 주치의 시범 사업은 2028년 전국으로 확대한다. 치매안심병원(현재 25곳)도 2030년 5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치매 장기요양 등급자 지원도 강화하기 위해 주야간 보호시설 월 이용 한도를 높이고, 주야간 보호기관과 치매환자쉼터의 중복 이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치매 의심 운전자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운전 능력 진단 시스템도 도입한다. 내년부터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현재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년마다 치매 선별 검사를 받지만 실제 운전 능력 판단에는 한계가 있어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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