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박제된 판사 얼굴… "재판서 할 말도 못 한다"

지난달 유튜브에 “판사 눈알이 불안해 보인다. 판사가 피고인의 눈치를 봤다”는 내용의 숏폼 동영상이 다수 올라왔다. 지난달 1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체포 방해 사건 선고 장면 중 일부를 편집한 것들로,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 백대현 부장판사가 피고인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선고문을 번갈아 쳐다보는 모습이었다. 법원에서는 재판에서 피고인과 눈을 맞추기를 권장한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사형 구형 확인 후 목소리가 작아졌다”고 주장하는 영상도 나타났다.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가 진행한 윤 전 대통령 내란우두머리 결심공판 장면 중 일부를 활용했다. 재판장인 지 부장판사는 ‘사형’ ‘무기징역’ 등 구형량을 큰 목소리로 되풀이해 확인한 후 “알겠습니다”라고 덧붙였는데, 이 목소리가 작다는 지적이었다. 이 영상에는 개그 프로그램의 영상과 우스꽝스러운 배경음악이 붙었다. 조회수 370만회에 5000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7시간 재판 중 1분 잘라 쇼츠 제작…맥락은 거세

문제는 7~8시간에 달하는 재판 가운데 일부 장면만 잘라내면서 재판의 맥락이 사라진 채 문구만 남는다는 점이다. 이에 법원 안팎에서는 내란특검법이 도입한 ‘1심 재판 중계’의 명암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정이 숏폼의 소재가 되면서 법관의 재판권과 피고인의 방어권이 동시에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에서는 제기된다.
하급심 중계, 1년 전까지 3건…지난달 기준 104건

1·2심 재판 중계는 제한적으로 허용됐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기일이 첫 사례다. 2018년에 박 전 대통령 선고 2건과 이명박 전 대통령 선고 1건이 중계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순실씨 선고에 대한 언론사 중계 신청이 있었지만 재판부가 불허했다. 2024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1심 선고 생중계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내란특검법 시행으로 재판중계가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9월 2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수처 체포 방해 사건 1차 공판을 시작으로 4개월간 104건의 재판 중계가 있었다. 개정 내란특검법은 내란 재판 1심 중계를 강제하는 조항을 뒀고, 상급심에서도 특검이나 피고인 신청이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허가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판사의 질문이 사라질 것"…맥락 없이 문구만 남아

특히 중계 영상이 쇼츠로 재생산되며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 고법판사는 “법정에서 질문이 사라질 것”이라며 “판사의 질책성 질문이 실제로는 피고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일 수 있고, 반대로 부드럽게 질문하지만 유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판사 발언이 ‘쇼츠’화되며 의도와 맥락이 빠진 채 문구만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우려는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표한 바 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2일 시무식사에서 “중계방송까지 도입돼 지금처럼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국민들의 모든 눈과 귀가 집중되었던 적은 드물다”며 “작은 언행 하나에도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재판중계가 법원의 고질적인 문제인 ‘형사 기피’를 가속화시켰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누가 형사부를 하려고 하겠나. 나서서 가겠다는 사람을 오히려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구속한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와 구속을 취소한 지귀연 부장판사 모두 ‘신상털기’ 피해로 신변보호 조치를 받았다. 서부지법 폭동과 같은 폭력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주요 형사사건을 맡은 법관들이 마스크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경우도 흔한 풍경이다.
반대로 중계로 재판에서 돌출적인 발언이 등장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가 중계를 염두에 두고 지나치게 말을 조심하는 것도, 반대로 중계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말을 하게 되는 것도 모두 일종의 위축”이라고 지적했다. 법관들 사이에서는 “재판중계에 대비해 ‘법정 언행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할 말도 못할 가능성" 피고인 방어권 위축

중계 환경에서 피고인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고법판사는 “재판에서는 별의별 주장이 제기된다. 피고인으로서는 다소 무리한 주장이라도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며 제기하는 것”이라며 “중계가 되면 주장을 제대로 펴기 어려울 수 있다. 정치인이나 교수, 성직자 등 명예를 중시하는 피고인의 경우 특히 그렇다”고 했다.
변호인의 변론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아무리 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는데, 범죄자를 변호하는 것과 그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오는 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중계에 대한 부담으로 변호인이 주장을 충분히 펴지 못하거나, 중계를 이유로 수임을 기피하고 그에 따라 소송비용이 상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인 진술이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법원에서 공인이 아닌 증인은 얼굴 모자이크·성명 음소거 처리 등 후처리를 거치고 있지만, 중계하지 않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윤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 방첩사 군인은 “중계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첩사 내부 조직을 말씀드리는 건 제한사항이 있다”며 증언을 일부 거부했다.
온라인에서 증인이 피고인과 다른 증인들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증언이 오염될 수 있다는 걱정어린 시각도 나온다. 앞서 재판장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진술 전 윤 전 대통령이 발언에 나서자 “증인이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며 증인을 잠시 퇴정시키기도 했지만, 재판 영상이 범람하는 환경에서는 이런 차단 조치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최서인ㆍ김보름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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